지난 한 달간의 논쟁을 정리하며.
2008. 8. 27. 18:24ㆍ하루 일기/2008 Diary
본 글은 지난 한달간 블로거 리카르도와 필자와의 논쟁에 대해 적어놓은 글입니다. 본 글을 작성한 이유는 원문 자체가 다수의 링크글로 연결되어 있어 읽기가 난해한 바, 그동안의 주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본 글은 필자의 입장에서 작성하였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이 정확하게 담겨 있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댓글을 토대로 모든 주장에 있어 최대한 정확성을 유지하였습니다.
글을 풀어나가기에 앞서 해당 글에 쓰인 용어를 정의합니다.
주제1. '좀비'의 정의와 본문에서의 인용상에 대해.
원문에서 필자는 '촛불좀비'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한차례 언급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눈, 기괴한 움직임"으로 묘사되는 좀비에 대한 인상을 언급한 필자는 세 번째 단락에서 과연 현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좀비라는 객체에 대한 인상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지 또 해당 단어가 촛불집회자에게 적절한 단어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필자가 답을 찾은 것은 좀비영화의 시초라고 불리는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저항의 매개체로 좀비를 선택한 로메오 감독은 매 작품마다 사회현상을 비판하고 이를 저항하는 상징으로 좀비를 등장시켰으며 그의 기조는 최근 저항을 통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다는 설정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좀비는 이지를 갖추게 되었다는 각성과 약자들의 저항면에서 오늘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필자는 그중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저항정신을 해석하여 현재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대비시켰다.
이에 대해 블로거 리카르도는 좀비라는 단어가 혐오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혐오적인 단어를 취급함에 있어 해당 단어에 대한 사용을 자제하기 보다는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성향의 사람에게 그 단어를 사용하라고 주문하고 있으며, 직접 자신이 그 단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또한 영화를 해석함에 있어, 로메오 감독은 현실에 대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또 저항하는 매체로 좀비를 등장시켰으며 작품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좀비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작품 전체를 무시하는 행동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블로거 리카르도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좀비로 해석한 것을 비난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 영화속 좀비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반응인지를 먼저 해석하는 방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주제2.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필자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중효과 이론을 토대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사회와 분리될 수도 없고, 영향력이 사라질수도 없다고 정의한 바 있으며, 매스미디어의 범위에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MBC, KBS를 비롯한 방송국들과 경향, 한겨례 신문과 같은 진보계열 신문들 역시 이 범주안에 포함된다고 말한바 있다.
아울러 블로그, 다음 아고라와 같은 뉴미디어(혹은 그에 근접한) 매체들의 영향력 역시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규정한 바 있다.
반면 블로거 리카르도씨는 이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는 경향, 한겨례등의 좌파적 성향의 신문과 조선, 중앙, 동아등의 우파적 신문들은 이전부터 같은 논조의 글을 내보냈으며, 그것 자체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매스미디어가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며, 신문, 방송사들로부터 전파된 정보가 뉴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내부 커뮤니케이션 구성원들끼리 합의를 통해 오늘날의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방송, 신문사들의 기사가 게시판에 올려지고 읽혀진 현 시점에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건재한 것이며, 단순한 플랫폼의 이동이 기사의 논조를 변형시키고 아울러 원천 정보의 영향력을 차단시킨다고 주장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필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중효과 이론에 보이는 능동적인 수용자의 모습과 동일하며,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서브주제1. 아고라와 매스미디어
필자의 댓글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범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신력과 영향력을 갖춘 미디어에 대해 이를 매스미디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부정해야 되는지 상대방에게 묻는 글이다. 리카르도씨는 여기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해석함에 있어 조중동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다음 아고라를 매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 조중동이라는 단어는 바로 윗 댓글인 7월 8일자 리카르도의 댓글에서 차용한 단어에 불과하며, 협동성과 치밀성을 설명하는데 쓰인 단어이지 다른 의미로 문단을 해석하는 일은 본말전도에 해당된다. "아고라가 조중동 처럼 매스미디어 같은 역할을 한다는겁니다."라는 말은 '뉴미디어가 치밀성과 협동성을 토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서브주제2. 소금이의 매스미디어, 그것은 pd수첩 뿐인가?
8월 10일자 블로거 리카르도의 포스팅 '소금이의 매스미디어, 그것은 pd수첩 뿐인가?'에 대한 반론이다.
댓글 a, b, c는 서로 연장선에 있다. 블로거 리카르도는 필자가 시민들이 PD수첩이라는 매스미디어에 통제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아울러 현재 시민들은 조중동에 반대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해 준 '아고라'라는 매체는 인터넷을 접하지 못한 중년층이 왜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논조가 그대로인 PD수첩에 대한 시청률이 급증하고, 동일한 기사를 보낸 한겨례, 경향일보에 광고금을 모금하여 응원광고를 띄우는 현상 또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글에 대해 필자는 이슈를 통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위험성을 인지한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초기 촛불집회의 문구가 '조중동 반대'가 아닌 '고시 철회, 협상 무효'였다는 점. 그리고 촛불집회를 주도한 카폐명이 '안티이명박카페'였다는 점이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서브주제3. 뒷담화에 대해.
블로거 리카르도는 뒷담화를 내가 먼저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포스팅을 통해 내가 IP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대화를 중단한 것은 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리카르도는 자신이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필자는 리카르도의 주장대로 아고라가 정보를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해당 논쟁을 아고라 사람들에게 평가받아 보겠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아고라에 달린 댓글을 아고라에 글을 올린 다음날인 7월 23일 리카르도에게 통보하였다.
리카르도는 이것이 뒷담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뒷담화하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필자가 IP를 차단하고 도망갔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미 댓글을 중단하기 몇 일전부터 그는 아무런 주장이나 근거없이 '개지랄은 그만하시죠', ' '이번엔 병신인척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ㅋ', '지껄여보세요'와 같은 폭언을 비롯하여 모교를 비하하는 다수의 발언을 하였고, 댓글달기를 중단한 이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좀비가 사라졌으니 액땜을 해야겠다고 자축 포스팅까지 올렸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인양 주장하고 있지만, 상대방과 견해가 다르다고 욕설과 폭언을 일삼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대하는 그의 이중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필자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블로그(리카르도의 정보 꾸러미)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IP를 풀어줄 그 어떠한 필요성도 느끼고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블로거 리카르도는 신뢰성과 영향성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발언을 비롯하여, 미디어의 관계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지난 한 달간 필자의 댓글을 모두 무시하면서 오직 자신의 주장과 질문만을 주장하였다. 흑백논리로 이미 답을 결정하고 자기 주장만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 블로그상의 대화는 여기서 종결되었다고 본다.
필자는 이미 블로거 리카르도에게 휴대폰 연락처를 통보하였으며, 원한다면 여러 블로거들을 모아놓고 공개 토론회를 진행할 의사가 있음을 아울러 공지하였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논리를 갖추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글을 풀어나가기에 앞서 해당 글에 쓰인 용어를 정의합니다.
매스미디어 : 대중들을 상대로 정보를 전파하는 기술. 시대적, 기술적 발전에 따라 전달 매체는 변화하며 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들을 총칭하는 단어이기에 결코 소멸할 수 없다. 19세기에는 신문이 매스미디어의 역활을 맡았고, 20세기에는 텔레비젼 방송에 이어 인터넷을 통한 전파매체가 매스미디어의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뉴미디어 : 블로그와 같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몇가지 새로운 특성을 가진 미디어. 참고로 뉴미디어는 매싀디어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뉴미디어와 대칭되는 단어는 올드미디어이다. 현재 뉴미디어는 기존 올드미디어와 함께 상호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으며, 추후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 : 본 글에선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먼저 정의해 둔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현상으로 수용자가 정보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여러 이론으로 구분된다.
19세기 무렵에는 정보에 대한 전달이 수용자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미친다는 대효과이론(탄환이론)이 주를 이루었고, 이를 부정한 소효과이론에 이어 현재는 수용자가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발상의 중효과 이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로메오 : George A. Romero. 1968년 처음으로 좀비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살아난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를 제작하였음. 그는 현대사회의 여러 부조리를 좀비를 통해 비판하였는데, 본문에 인용된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서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통제된 군중을 그리고 그의 최신작 '랜드 오브 데드'에서는 이러한 통제에 저항하고 승리한 좀비상을 담았음.
뉴미디어 : 블로그와 같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몇가지 새로운 특성을 가진 미디어. 참고로 뉴미디어는 매싀디어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뉴미디어와 대칭되는 단어는 올드미디어이다. 현재 뉴미디어는 기존 올드미디어와 함께 상호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으며, 추후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 : 본 글에선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먼저 정의해 둔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현상으로 수용자가 정보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여러 이론으로 구분된다.
19세기 무렵에는 정보에 대한 전달이 수용자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미친다는 대효과이론(탄환이론)이 주를 이루었고, 이를 부정한 소효과이론에 이어 현재는 수용자가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발상의 중효과 이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로메오 : George A. Romero. 1968년 처음으로 좀비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살아난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를 제작하였음. 그는 현대사회의 여러 부조리를 좀비를 통해 비판하였는데, 본문에 인용된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서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통제된 군중을 그리고 그의 최신작 '랜드 오브 데드'에서는 이러한 통제에 저항하고 승리한 좀비상을 담았음.
주제1. '좀비'의 정의와 본문에서의 인용상에 대해.
원문에서 필자는 '촛불좀비'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한차례 언급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눈, 기괴한 움직임"으로 묘사되는 좀비에 대한 인상을 언급한 필자는 세 번째 단락에서 과연 현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좀비라는 객체에 대한 인상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지 또 해당 단어가 촛불집회자에게 적절한 단어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필자가 답을 찾은 것은 좀비영화의 시초라고 불리는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저항의 매개체로 좀비를 선택한 로메오 감독은 매 작품마다 사회현상을 비판하고 이를 저항하는 상징으로 좀비를 등장시켰으며 그의 기조는 최근 저항을 통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다는 설정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좀비는 이지를 갖추게 되었다는 각성과 약자들의 저항면에서 오늘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필자는 그중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저항정신을 해석하여 현재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대비시켰다.
" 집회에 참여했던 저의 가족, 같이 일하시는분들을 좀비라고 부른 소금이님의 글을 생각하면 너무나 화가나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억울합니다." <리카르도, 8.26일자 댓글>
이에 대해 블로거 리카르도는 좀비라는 단어가 혐오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혐오적인 단어를 취급함에 있어 해당 단어에 대한 사용을 자제하기 보다는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성향의 사람에게 그 단어를 사용하라고 주문하고 있으며, 직접 자신이 그 단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좀비야 물러가라~ 워어어이~ <리카르도, 7.19일자 포스팅 제목> : 필자를 좀비라며 사라지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영화를 해석함에 있어, 로메오 감독은 현실에 대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또 저항하는 매체로 좀비를 등장시켰으며 작품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좀비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작품 전체를 무시하는 행동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블로거 리카르도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좀비로 해석한 것을 비난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 영화속 좀비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반응인지를 먼저 해석하는 방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주제2.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필자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중효과 이론을 토대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사회와 분리될 수도 없고, 영향력이 사라질수도 없다고 정의한 바 있으며, 매스미디어의 범위에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MBC, KBS를 비롯한 방송국들과 경향, 한겨례 신문과 같은 진보계열 신문들 역시 이 범주안에 포함된다고 말한바 있다.
아울러 블로그, 다음 아고라와 같은 뉴미디어(혹은 그에 근접한) 매체들의 영향력 역시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규정한 바 있다.
반면 블로거 리카르도씨는 이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는 경향, 한겨례등의 좌파적 성향의 신문과 조선, 중앙, 동아등의 우파적 신문들은 이전부터 같은 논조의 글을 내보냈으며, 그것 자체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는 언론에 대해서 오히려 역공을 취하는 지금의 국민들의 모습은, 미디어를 님처럼 믿고 안믿고가 아니라, 소통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해보고 거기에 반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것이라고 몇번을 말해야 님의 귓구멍을 뚫을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사실보도를 그대로 이어간것일 뿐인 pd수첩에게 계속 딴지를 거는 님의 행패는 조중동의 말과 너무나 흡사해서 소름이 끼칩니다. 오히려 문제를 삼아야 할것은 바로 조중동인데도 말이죠 마치 한겨레등의 언론들이 비정상적인 선동질을 한것인냥 특별하게 보려고 하는 그 시도 조차도 매우 불순한 행패인겁니다. <리카르도, 7.29>
그는 매스미디어가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며, 신문, 방송사들로부터 전파된 정보가 뉴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내부 커뮤니케이션 구성원들끼리 합의를 통해 오늘날의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방송, 신문사들의 기사가 게시판에 올려지고 읽혀진 현 시점에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건재한 것이며, 단순한 플랫폼의 이동이 기사의 논조를 변형시키고 아울러 원천 정보의 영향력을 차단시킨다고 주장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필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중효과 이론에 보이는 능동적인 수용자의 모습과 동일하며,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서브주제1. 아고라와 매스미디어
아고라가 조중동 처럼 매스미디어 같은 역할을 한다는겁니다. 저는 정말 아찔했고 분노할수 밖에 없었죠. 웹에 대해, 이사람이 생각하는 본심이 나온겁니다. <리카르도, 8.26>
또 최근 뉴스를 보면 다음 아고라같은 광장의 글들이 공신력을 얻으며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적인 역할을 조중동을 대신하여 수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매스미디어의 사전적인 해석으로 다음 아고라등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또한 매스미디어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디어의 범위를 한정하여 이를 부정해야 하는지 여전히 논란이 남습니다. <소금이, 7.8>
필자의 댓글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범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신력과 영향력을 갖춘 미디어에 대해 이를 매스미디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부정해야 되는지 상대방에게 묻는 글이다. 리카르도씨는 여기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해석함에 있어 조중동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다음 아고라를 매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 조중동이라는 단어는 바로 윗 댓글인 7월 8일자 리카르도의 댓글에서 차용한 단어에 불과하며, 협동성과 치밀성을 설명하는데 쓰인 단어이지 다른 의미로 문단을 해석하는 일은 본말전도에 해당된다. "아고라가 조중동 처럼 매스미디어 같은 역할을 한다는겁니다."라는 말은 '뉴미디어가 치밀성과 협동성을 토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서브주제2. 소금이의 매스미디어, 그것은 pd수첩 뿐인가?
8월 10일자 블로거 리카르도의 포스팅 '소금이의 매스미디어, 그것은 pd수첩 뿐인가?'에 대한 반론이다.
a. 'PD 수첩은 영향력이 없다'<리카르도>
b. '또 pd수첩의 영향력은 전무하고 조중동의 변심이 이번 촛불집회의 원동력이라고 했는데, pd수첩 지키자고 mbc 앞에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들입니까. 촛불집회 초반에 조중동의 시각변화는 인터넷상에서만 논의되던 일이고, 실제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다수의 계층들이 나온 것은 tv에서 pd수첩을 보고 나온 겁니다. 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매스미디어를 보고 말이죠.' <소금이, 7.23>
c. 촛불집회자들은 pd수첩에 의해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pd 수첩은 매스미디어다. 그러므로 촛불집회자들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통제되는 사람이다. <리카르도, 8.10>
댓글 a, b, c는 서로 연장선에 있다. 블로거 리카르도는 필자가 시민들이 PD수첩이라는 매스미디어에 통제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아울러 현재 시민들은 조중동에 반대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해 준 '아고라'라는 매체는 인터넷을 접하지 못한 중년층이 왜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논조가 그대로인 PD수첩에 대한 시청률이 급증하고, 동일한 기사를 보낸 한겨례, 경향일보에 광고금을 모금하여 응원광고를 띄우는 현상 또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글에 대해 필자는 이슈를 통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위험성을 인지한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초기 촛불집회의 문구가 '조중동 반대'가 아닌 '고시 철회, 협상 무효'였다는 점. 그리고 촛불집회를 주도한 카폐명이 '안티이명박카페'였다는 점이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서브주제3. 뒷담화에 대해.
다만 http://infobox.tistory.com/512 여기 가보시면 그만큼 소금이 님이야 말로 먼저 저를 뒷담화 했다는걸 아실수 있을겁니다. <리카르도, 8.26>
블로거 리카르도는 뒷담화를 내가 먼저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포스팅을 통해 내가 IP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대화를 중단한 것은 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제 해석이 믿기 힘들다면 여기 글하고 댓글을 그대로 스크랩해다가 다음 아고라든 아니면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든지 올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소금이. 7.18>
"아고라에 글을 올렸더니 알바, '고도의 촛불까'라는 소리도 하더군요. 이게 바로 당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입니다." <소금이, 7.23>
리카르도는 자신이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필자는 리카르도의 주장대로 아고라가 정보를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해당 논쟁을 아고라 사람들에게 평가받아 보겠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아고라에 달린 댓글을 아고라에 글을 올린 다음날인 7월 23일 리카르도에게 통보하였다.
리카르도는 이것이 뒷담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뒷담화하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필자가 IP를 차단하고 도망갔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미 댓글을 중단하기 몇 일전부터 그는 아무런 주장이나 근거없이 '개지랄은 그만하시죠', ' '이번엔 병신인척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ㅋ', '지껄여보세요'와 같은 폭언을 비롯하여 모교를 비하하는 다수의 발언을 하였고, 댓글달기를 중단한 이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좀비가 사라졌으니 액땜을 해야겠다고 자축 포스팅까지 올렸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인양 주장하고 있지만, 상대방과 견해가 다르다고 욕설과 폭언을 일삼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대하는 그의 이중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필자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블로그(리카르도의 정보 꾸러미)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IP를 풀어줄 그 어떠한 필요성도 느끼고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블로거 리카르도는 신뢰성과 영향성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발언을 비롯하여, 미디어의 관계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지난 한 달간 필자의 댓글을 모두 무시하면서 오직 자신의 주장과 질문만을 주장하였다. 흑백논리로 이미 답을 결정하고 자기 주장만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 블로그상의 대화는 여기서 종결되었다고 본다.
필자는 이미 블로거 리카르도에게 휴대폰 연락처를 통보하였으며, 원한다면 여러 블로거들을 모아놓고 공개 토론회를 진행할 의사가 있음을 아울러 공지하였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논리를 갖추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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