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6.04.22 8년의 시간, 그리고 촛불.
  2. 2009.05.02 촛불 1주년, 나는 무엇이 달라졌나.
  3. 2009.01.02 새해 첫 촛불,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3)
  4. 2008.08.10 아고라 권력, 매스미디어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7)
  5. 2008.07.07 내멋대로 해석하기, 촛불좀비를 예견한 영화가 있다면? (35)
  6. 2008.06.25 초등학생도 연행되는 이명박 정권 (40)
  7. 2008.06.20 제품 안 산다고 말해도 잡혀가는 세상 (2)
  8. 2008.06.11 누구를 위한 촛불시위인가 (15)
  9. 2008.06.09 우리들이 떠난 자리,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4)
  10. 2008.06.08 예비군, 그 아낌없이 베푸는 자들은 위하여. (2)
  11. 2008.06.07 청와대 진입만이 능사가 아니다. (16)
  12. 2008.06.02 시민정신의 횃불, 자원봉사자. (8)
  13. 2008.06.01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14시간의 사투 (57)
  14. 2008.05.30 댓글 알바에 이어 택시 알바까지.. 드러나는 검은 통제의 손 (5)
  15. 2008.05.29 현행범은 시민이 아니라 바로 경찰입니다. (2)
  16. 2008.05.27 촛불집회가 앞당긴 매스 미디어의 종말 (23)
  17. 2008.05.25 전국으로 확산되는 촛불집회, 늘어가는 수입반대 서명들. (2)

8년의 시간, 그리고 촛불.

민변에서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두 번째 백서를 출간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벌써 8년인가. 새삼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의 풍경은 칼라 사진처럼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난 광우병 쇠고기 보도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였고, 뉴스에서는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어떤 이는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촛불을 나누어 주었으며,  또 어떤 이는 분말소화기와 물대포를 맞아가며 으싸으싸하기도 하였다. 풍경은 그날 그날 달랐다. 하지만, 그 날 함께했던 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하나이지 않았을까.

시간은 흐르고, 20대의 나는 30대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겁쟁이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현실에 숨죽이고 외면한다. 어쩌면 노무현 버프가 끝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땐 힘을 내면, 어찌되었든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확신하였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8년전에도 오늘에도...그리고 8년 뒤에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겠지. 후회하는 사람보다는 존중받는 사람,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기억하자. 2008년의 촛불을. 그리고 마음 속 촛불에 다시금 불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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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 나는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 해 촛불을 들었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촛불시위 1주년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네요. 촛불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어떤 이들은 촛불을 부인하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있어 촛불은 하나의 삶이었고, 목표였습니다. 촛불, 여러분들은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냉소에서 참여로... 촛불이 이끈 미학.

불과 1년전까지만 하여도 정치는 저와는 상관없는 딴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군복무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지만, 그 이후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뽑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거부하여 왔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하곤 상관없다는 생각, 그 철없는 생각이 이명박을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촛불은 '누가 되어도 상관없어.'라고 정치를 불신하던 저에게 진실을 배울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들려왔던 소문들이 진실이 되고나니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학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선 학생들을 폭도로 규정하던 동아일보의 헛소리엔, 그동안 동아일보를 열심히 읽던 제 눈을 정말 뽑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지난 10여년간 한나라당과 보수세력들이 주장하던 거짓과 진실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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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 날이 5월 31일, 제가 처음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날이기에,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합니다. 거리에서 이름모를 시민들을 위해 우비와 김밥을 나누어주던 학생들, 숨이 막혀오는 분말가루와 차가운 물대포를 맞고, 추위를 녹이기위해 서로 껴안고 있었던 연인의 모습... 힘들면서도 서로에게 무언가 더 해주기위해 노력하던 당시 시민들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 그 자리에 서서, 저는 처음으로 '고시 철회'를 외쳤고 '이명박 탄핵'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아침이 오리라 믿었던 저의 마음은 아직도 제가 철부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졌습니다. 피, 붉고 붉은 사람의 피... 사람의 팔다리가 그처럼 쉽게 부러지고, 피가 그렇게 날 수 있는지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전투화 소리에 묻혀진 시민들의 비명소리와 불과 몇 분만에 현장이 정리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량이 통행되던 거리의 모습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굳혀주었습니다. 바뀌어야 한다! 설사 울먹이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바꾸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이후로 수차례 촛불시위에 나갔고, 많은 분들이 이에 호응을 해 주셨습니다. 시위가 격렬하게 진행된 적도 있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도 있었습니다. 또 반대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힌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촛불은 1년이라는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 1년간 촛불은 무엇을 바꾸었을까? 불행히도 겉모습만 보자면 그리 바뀐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광우병 쇠고기는 오늘도 허술한 관리 아래 전국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고,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 단체들의 오만함은 여전합니다. 지난해 소통을 들먹이던 정부가 1주년 행사에 시민들을 연행하고, 심지어 언론사 기자조차 병원에 후송보낼 정도로 강력한 공안정치를 유지하는 것을 보니,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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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채 끌려가는 67세의 할아버지(우)와 광장을 가득메운 경찰들(좌) / 2009. 5. 2]

그렇다고해서 겁먹었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있고, 촛불이 진실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설사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촛불에 대한 저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할 것입니다. 촛불은 아직 시대를 바꾸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 하나를 바꾸었고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바꾸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힌 뒤에도 끌려가지 않고 당당히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사회, 촛불은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촛불 1주년, 어룸든 결코 빛을 이길수 없습니다.



[촛불집회를 기약하며 : 손에 손잡고]

P.S.] 병원에 후송되신 커널뉴스 기자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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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촛불,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소금이입니다. 2009년 새해도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벌써 1월 2일인데요, 조금 늦었지만 새해 인사드립니다. 새해 연휴 다들 어떻게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2008년 12월 31일, 저는 보신각의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답니다. 여의도와 보신각에서 방송 민영화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이 실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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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밤은 무척이나 매서웠습니다. 콧물을 훌쩍이게 하는 찬 바람은 길거리에서 산 털실장갑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매서운 눈초리와 방패로 무장한 경찰들의 얼어버린 마음은 시민들의 촛불로 녹일수 없었습니다.

종각역 곳곳에선 경찰들이 입구를 막아 시민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있었고, 질서유지라는 말과는 달리 그들의 주 목적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색출하고 격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팜플랫을 뺏기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보니, 가슴이 매어집니다.

거리는 '시민들의 축제'가 아닌 '경찰들의 축제'라고 불릴만큼 시민들 숫자보다 경찰들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보신각 주변에는 3중으로 경찰들이 진을 치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입장을 봉쇄하고 있었고, 확성기를 단 지휘차량과 방패를 든 무장경찰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시민들은 노란풍선을 들며, 입을 꾹 담은채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거리 한 켠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목소리에 호응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까지.. 모두들 하나가 되어 '이명박 탄핵'을 외쳤고, 그 날 밤 종각의 마지막 촛불 집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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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게 살자' 누구에게 필요한 말일까? ]

촛불집회에 맞서는 경찰들의 반응도 대단하였습니다. 다수의 외국인들과 방송사의 카메라가 집중된 이 현장에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핀잔을 주고, 이로인해 시민들의 반응이 격화되는 사태들이 현장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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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민들을 흥미롭게 촬영하던 외국인 남성. 아무리 막아도 누군가는 찍는다.]

특히 일부 경찰들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에 무척 경계하면서, '찍지 말라.'고 경고하는가 하면,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다음에 자랑스럽게 말하라.'등의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아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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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들만의 축제와 우리들의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신각 옆에 설치된 대형화면을 보니, 방송사들은 'MB 아웃'이 담긴 전단지와 깃발들을 숨길려고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더군요.

우리들은 우리식대로 노래가 끝날 때마나 '이명박은 물러가라', '한나라당 해체하라'를 외치며 마찬가지로 필사적인 함성을 질렀습니다. 방송에 얼마만큼 노출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날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단 한가지 소원은 바로 '이명박 퇴출'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2009년 첫 해를 광장에서 맞이하였습니다. 광장에서 여전히 꺼지지 않는 촛불들을 보니 안타까움과 희망이 교차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때론 숙여야 될 때가 있는거라고.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라고. 확실히 가족이나 직장, 돈을 따지다보면 잘못된 것을 맞는 것이라고 거짓말해야 되는 경우가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분명 누군가 지적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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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보지않아도, 우리는 촛불을 든다 ]

2009년 새해, 올해에는 과연 몇 번이나 촛불을 들어야 될까요. 아직 망설임과 두려움이 남아있지만, 올해에는 이 촛불처럼 이 땅을 비추는 한 줌의 용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올해 저의 새해 첫 소망은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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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권력, 매스미디어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난 뒤, 영화를 보다 느낀 점이 있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블로그에 기재한 적이 있다. 당시 본 영화는 조지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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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후속작으로 좀비들이 이성을 얻어 권력자들에게 대항한다는 설정의 '랜드 오브 데드'도 좋았지만, 다소 정적이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가득찬 원조 시체 3부작 시리즈는 왜 로메오 감독을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부르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글을 올린지 얼마되지않아 한 블로거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리카르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 블로거는 어떤 식으로든 시민들과 좀비를 연관시키는 것을 반대하며, 특히 매스미디어에 대해 통제를 받는다는 부분은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는 시민들은 PD 수첩과 같은 기존 미디어로부터 그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아니하며, '아고라'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정보를 교류한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깨어나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시민들은 더이상 그 어떠한 매스미디어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아고라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개진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주장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매스미디어는 당대 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매개체로서 기술적 발달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 19세기 서적에서 20세기에는 텔레비젼으로 그리고 오늘날 웹과 모바일을 통해 새롭게 진화를 모색하고 있는 매스미디어가 촛불집회라는 하나의 정치적 행사로 인해 지금 당장 그 영향력이 사라진다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의 주장에서 보여지는 '아고라 권력'에 대한 위험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고라 권력'이라는 말이 적절한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고라'를 절대선으로 인식하고 이를 추종하는 이가 존재하는 이상, 이 것을 하나의 권력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기존 매스미디어의 모든 정보는 아고라를 비롯한 뉴미디어로 집결되며 이러한 공론의 장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거리로 나가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확실히 처음 촛불집회를 열자고 다음 카페에서 건의된 내용이 아고라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이로인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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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의 집회에서까지 이러한 영향력이 계승되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다음 아고라는 1800만 다음 사용자중에 약 3백만 명만이 사용하는 서비스중 하나에 불과하며, 블로그와 같은 타 미디어를 합친다 할지라도 여전히 웹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사회 여러 계층들을 포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뉴미디어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장기적으로 다룰수 있는 연속성은 강하지만 그러한 이슈를 확장시키는 부분에는 여전히 미진한 점이 있다.

따라서 뉴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계층들이 어떻게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선 기존의 전통적인 미디어(올드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1947년 언론자유위원회(The Commission on Freedom of the Press)가 보고한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A Free and Responsible Press)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언론의 역활은 정확하고 진실된 보도외에 다양한 비판이 제안되고 교류되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올드 미디어라 할지라도 제공된 정보에 대한 교류의 장이 막혀있는 것이 아니며, 지인이나 가족 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교류할 수 있다. PD 수첩이후 아이들의 먹거리를 걱정한 유모차 부대가 등장한 점이나 언론보도이후 강기갑 의원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주요 원로들이 참석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이러한 올드 미디어에 있어서의 의견 교류의 장이 여전히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촛불집회는 뉴미디어로 인해 촉발된 촛불집회가 신문, 방송사와 같은 기존 올드 미디어에 의해 확장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올드 미디어들은 영향력을 갖춘 매스미디어로서 경찰들의 과잉진압과 같은 각종 민감한 이슈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으며, 특정한 사건이 발생되지 않은 날이라도 아프리카, 블로그를 통한 보도자료를 통해 정보의 연속성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리카르도와 같이 네티즌을 경계한다. 매스미디어를 접한 사람은 통제된 인간이고 뉴미디어를 본 사람만이 깨우친 사람이다라는 그의 이분법적 사고는 언제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아고라를 비겁한 정치권력으로 변질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혹은 매스미디어)는 모두 사회에 현존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로서 서로 상호보완하는데 발전해가고 있다. 아고라 유저들이라고 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며, 텔레비젼만 본다고해서 죄인이 될 필요는 없다. 뉴미디어든 올드미디어든 그것은 하나의 플랫폼에 불과하지 그 안에 담긴 메세지는 언제 어디서든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4일 촛불집회때의 일이다. 우연히 아고라 사람들과 함께 행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자유토론장에서 자주 활동한다고 말한 한 네티즌은 '우리는 순수하게 촛불집회의 한 명으로서 참석하였으며 그 어떠한 정치적 이용이나 왜곡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주변 네티즌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아고라는 늘 옳은 말만 하는 절대선이 아니며, 모든 이들을 대표하고 리드하는 정치 권력도 아니다. 아고라의 본질을 왜곡하고 또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이 땅의 유감 세대들이 이 사실을 꼭 알아두기를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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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해석하기, 촛불좀비를 예견한 영화가 있다면?

검색어 순위권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최근 화자되고 있는 인기어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고르라면 단연코 '알바'와 '좀비'라는 말이 아닌듯 싶다. 전자는 촛불집회 찬성측에서 반대측을 비하하는 말로, 후자는 반대측에서 찬성측을 공격하는 말로 넷상에 자주 애용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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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역시 그동안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찬성측 입장을 대변해왔던 사람인지라 처음 '좀비'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눈, 기괴한 움직임, 식육.. 그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 어찌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해 애쓰는 시민들의 모습과 동일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다가 얼마전 조지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영화속 좀비들이 촛불집회 시민들이었다면? 다소 엉뚱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이 생각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좀비영화의 시초로 불리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그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느날 우연하게 좀비들의 습격을 받은 여러 주인공들이 외딴 집에 모여 구조를 기다리다가 결국 하나둘 죽어가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비해 좀비가 보여주는 상징성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좀비의 원조는 시민이었다?!
옛 부두교의 의식중에는 좀비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소개된 일부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산 사람을 잡아다 좀비로 만든뒤 농장의 노예로 부린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일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르고 일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로보아 좀비가 처음 등장했을 시기에는 괴물의 이미지보다 노예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한 듯 하다.

영화속 좀비는 혼자 있는 여성이 충분히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을정도로 허약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여러 좀비들이 모여 군중을 이루면 주인공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들은 발에 마치 쇠사슬을 달은 듯 항상 발을 끌고 다니며, 기본적인 언어조차 말하지 못한다.

이러한 좀비들의 모습은 오늘날 매스미디어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언론, 교육, 환경, 도덕등에 의해 제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 그들 하나하나는 연약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다수가 모이면 대통령도 두려워 할만한 촛불집회가 생겨나듯이 군중으로 비추어진 이들의 모습은 모두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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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식육 또한 주의해서 보아야할 장면이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육에 대한 습관은 세계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던 관습중에 하나였으며, 아직도 오지의 부족에선 이같은 관습이 지속되고 있다. 식육은 단순히 식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닌 엄격한 종교적인 주술중에 하나로서, 죽은 이들의 일부를 섭취하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의 힘과 지혜를 이어받을수 있다는 사상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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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좀비들이 주인공들을 먹어치우는 장면은 혐오스러운 감도 있지만, 동시에 군중의 일원으로 그들을 편입시킨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좀비에 의해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한 주인공들이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에서 좀더 구체화되는데, 이를 최근 촛불집회 현장과 비교해보면 무척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영화속 희생자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인텔리전트, 아이, 청년, 엄마에 이어 보수주의자인 아버지와 사회적 약자 계층인 흑인으로 이어진다.

한 편 첫 촛불집회의 시작은 지식과 열정으로 가득찬 학생들이었으며, 이어 보수주의의 상징인 예비군과 유모차 부대가 등장하였고, 최근에는 시각장애인등 사회적으로 약자계층인 이들의 참석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수십여년의 세월이 지나 마치 예언서처럼 펼쳐지는 로메오 감독의 마술을 보면 감탄사가 나올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들 좀비들에 대응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작품에서는 백인들이 그 역을 맡고있다. 사람들이 알수 없는 좀비로 변해가는데에도, 웃고 떠들며 마치 사냥을 즐기듯이 하나둘 좀비들을 죽이는 백인들의 모습.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백인들의 좀비 사냥은 촛불집회에 맞서 물타기와 배후설을 주장하는 오늘날 대한민국 수구세력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로메오 감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촛불집회가 열릴 것을 예상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한 번쯤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것은 내 자유이지 않은가. 노렸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오늘날 촛불좀비들의 모습을 잘 대변한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공포영화가 무섭다면 흑백영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보며 한 번쯤 좀비들이 펼치는 촛불집회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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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도 연행되는 이명박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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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4시, 경찰에 의한 충격적인 진압이 진행되었습니다. 연합뉴스 건물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은 경찰측의 '인도로 올라가라'는 요청에 의해 인도로 올라갔으나, 경찰측은 인도위에 있는 시민들을 비롯하여, 초등학생, 고등학생, 국회위원등 다수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불법 연행하였습니다.

현행법상 주거지가 명확한 시민의 경우 연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측은 미란다 고지를 비롯한 모든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 또한 속출하였습니다.

다행히 초등학생들은 기자들의 항의에 의해 간신히 풀려났으나, 만약 기자들의 항의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경찰청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될 뻔 하였습니다.

이번 추가협상이 협상이 아닌 '논의'로서 미국측의 일방적인 요구를 담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여전히 부정하고 나아가 강경진압을 통해 시민들을 우롱하는 비열한 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과연 초등학생조차 잡아가는 것이 국민들을 섬기는 정치일까요? 유신정권의 시대가 이제 막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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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안 산다고 말해도 잡혀가는 세상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시민저항운동에 대한 정부와 조중동의 대응이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극단에 치닫고 있다. 지난 19일 경제5단체가 조중동의 요청으로 신문광고에 대한 네티즌들의 요청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이어, 오는 20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법무부, 검찰을 추가적인 행동이 이어졌다.

특히 검찰은 검찰청별로 '신뢰저해 사범 전담수사팀'을 신설하여 필요시 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시민들이 벌이고 있는 '조중동 폐간 - 광고 불매 운동'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배제되는 언론사에 대한 항위시위의 연장으로 자신이 구매한 제품의 영업 이익이 조중동의 수익으로 편입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발적 시민운동이다.

정부는 이러한 시민 저항 운동을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업무방해죄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僞計)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라고 그 범위가 명확히 제한되어 있는바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위반되는 언론사를 지원하는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자발적으로 천명한 것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겠다는 검찰의 방침은 원칙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저항 운동을 강제로 제압하려는 정부의 강압적 폭력조치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표출 여부가 어찌 허위사실이 될 수 있으며, 고객의 소리를 듣겠다고 기업 스스로가 개설하고 관리하는 게시판에 자신의 입장을 올린 행위가 어찌 기업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행동인가. 기업, 주주, 그리고 시민 그 누구도 고소, 고발행위를 취하지 않은 상황속에서 검찰이 임의로 피해자와 피의자를 색출하겠다는 행위는 표적수사라는 국민의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인터넷을 부당하게 통제한다든가 하는 구시대적 발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바 있다. 불과 하루도 안되어 또다시 거짓을 일삼는 정부의 대응에 국민들의 촛불이 언제든지 청와대로 향할수 있음을 이명박 정부는 명심하길 바란다.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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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촛불시위인가

밤새 걱정이 많았던 6월 10일 촛불문화제가 다행히도 안전하게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십만명의 시민들과 수만명의 경찰이 대치한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안전하게 집회를 마친 시민들의 행동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새벽내내 아프리카를 통해 시위현장을 시청하면서 씁씁한 감을 감출수 없었다. '다함께'에 이어 '인권단체연석회의'라는 단체가 강경진압을 유도하는 폭력행위를 조장하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시민들은 동등하며,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자유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이가 피해볼 가능성이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문화시민의 자세 아닐까?

콘테이너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저희가 콘테이너 위에 올라감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사안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50만 시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 위에 올라가 승리를 선언하지 않으면 여기에 모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그들의 무책임한 발언은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여러 시민들을 위험속에 몰아넣는 또다른 폭력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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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서 승리선언한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촛불문화제는 몇몇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행사가 아니다. 또한 청와대에 가기위해 모인 자리도 아니다. 처음 우리가 촛불집회를 가졌을 때, '고시철회 협상무효'와 '조중동은 찌라시'라고 외친 이유가 무엇인지 과연 그들은 알고있을까.

그들은 말한다. 말로만 하면 뭐하냐고. 말로 안되면 주먹을 써야한다고. 그리고 시위를 놀러나왔냐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건데 그들은 틀렸다. 지난 10년간 바뀐 것은 정권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살아온 시민들 역시 10여년간의 세월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5만명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인쇄까지 다 된 장관고시가 연기되었고, 10만 시민들이 모였을 때 대통령이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하였다. 31일 청와대 행보로 얻은 것이 학생들의 집회 불참여였다면 10일 국민 대축제로 얻은 것은 50만에 이르는 대한민국 모든 계층의 시민들이었다. 이래도 우리의 방식을 부정할 셈인가?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아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 누군가가 보기엔 놀고있는 것처럼 무척 느린 발걸음이겠지만, 그 발거음은 결코 물러나지 않을 확고한 발거음이다.

축제에 참여하기 싫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축제에 흙탕물을 뿌리며 훼방을 놓는 일만은 하지말자. 타인의 존중하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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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떠난 자리,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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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새벽녘이었습니다. 밤새 시위대와 전경에게 시달리던 광화문은 아침무렵 차량 소통이 재개되면서 다시금 조용해졌고 시위대는 서울광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과는 달리 거리는 여전히 어수선하였습니다. 지난밤 극렬한 폭력시위 현장을 대변하듯 파손된 전경버스와 전경들의 모습이 바로 그 주역이었습니다.

파손 정도가 심하여 상부에 채증을 요청한 현장 지휘자 경찰분은 전화상으로 '당장 시민들이 이 거리를 지나가야 하는데 무슨 사진을 찍으러 오는데 30분이나 걸리냐'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현장은 시위대가 철수하면서 조용하였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생수병을 비롯하여 깨진 유리와 파손된 타이어등 당시의 극렬하였던 시위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위대가 밧줄로 끌면서 충돌시킨 두 대의 전경버스는 차량 키마저 가져가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채증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경의 친구들로 보이는 일부 시민들은 전경이름을 부르며 어디 다친데는 없냐고 안부를 묻고 있었고, 좁은 골목길로 사이로 전경들과 시민들이 돌아다니는 어수선한 가운데 현장 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장 정리는 채 10분도 되지않아 연행되어 온 시위자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기자들은 연행자의 모습을 한컷이라도 놓치지 않을려는 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고 구두를 갈아신지 못해 운동화 차림으로 나선 전경들은 입구를 막으며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을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버스 뒤 편으로는 다시 몰려온 시위대가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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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변의 소음도 수마를 이기지는 못한듯, 피곤한 모습에 자리에 앉아 조는 전경들의 모습은 왠지모르게 애처로왔습니다. 전경들 뒤편으로 늘어선 몇 대의 전경버스안에서는 전경들이 때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시위대와 대치중인 가운데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의 모습이 묘하게 대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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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 무심한 표정으로 시위대와 전경들 사이를 지나가는 시민들 앞에서 과연 우리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는가라는 생각에 피곤함이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은 버스를 사이에 두고 정반대편에서 바라본 전경들의 모습은 몇일전 인도까지 가로막으며 불법연행을 단행했던 전경들과는 또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후임병에게 어디 다친데는 없냐고 물어봐주고, 서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꾸벅꾸벅 졸던 전경들. 지난날 군시절을 보내던 저의 모습과 겹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더이상 서로 대치하는 적이 아닌 바로 나의 모습이기에 저는 더이상 그들을 싫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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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동안 쇠파이프를 비롯한 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청와대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지모를 그들을 단지 걸리적 거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짓밟으며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그것이 우리가 주장하던 비폭력일까요?

적어도 그 날 아침에 보아온 전경들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원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과연 이들을 때리고 버스를 부수어야 속이 시원한 것인지 더이상 시위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답함만이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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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그 아낌없이 베푸는 자들은 위하여.

촛불문화제 시작 초기부터 꾸준히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온 단체로는 예비군 자원봉사자들을 들 수 있습니다. 오직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그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 그 누구보다도 먼저 도착하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 예비군들의 모습은 언제나 든든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최근 시민과 전경들 사이에서 중립성을 지키려는 예비군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리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감정섞인 말을 섞어가며, 시민들의 편을 들지않는 예비군들을 비난하고 있고, 전경들 사이에서도 예비군은 시위대 진압을 방해하는 시위대와 똑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직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욕을 먹을 때면 속이 상한다는 예비군. 이번 포스트에서는 6월 7일 새벽녘에 있었던 시위현장과 예비군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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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10시, 새문안 교회 :
금일 시위는 세종문화회관과 새문안 교회 골목길에서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위에 상관없이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으나,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에 위급한 상황이 닥쳤다는 소식이 전파되면서 노래를 부르던 일부 시민들은 시위대의 곁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좁은 골목길에는 어느새 예비군이 등장하여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고, 안전상의 이유로 남성들만이 시위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닿을 정도로 무척 비좁은 골목길을 나서니 경사진 언덕위에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노출되었습니다.

약 50여명의 전경이 버스 앞에 위치한 가운데 언덕위에서부터 시위대가 내려오는 상황이었고 언뜻보기에도 압사당할 위험이 무척 높아보였습니다.

거리에서 어렵다고 선동하던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인원수에서 앞도적인 수를 자랑하던 시위대는 별다른 구호없이 오직 '으싸으싸'만을 외치며 전경들을 아래로 몰아붙였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광기였습니다. 전경버스를 부수면서도, 경찰방패를 빼앗고 경찰을 폭행하면서도 오직 내가 정의이기 때문에 나는 영웅이라고 착각하는 시위대의 모습. 다수의 힘으로 누르면서도 정작 불리할 땐 '비폭력'을 부르짖는 그들은 모습은 이전에 내가 알고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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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4시 : 지리한 골목길 시위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많은 시민들이 빠져나가는 가운데 본격적인 예비군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비군들은 교회 정문의 바리게이트를 이용하여 전경들이 시위대를 쫓아 거리로 난입할 경우를 대비하였고 시위대 맨앞에 서서 전경들의 움직임을 봉쇄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예비군의 차단작전에 시위대의 자유로운 출입을 가로막는 행위라며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오히려 빠져나가기도 힘들거니와 압사의 위험이 있다는 예비군의 말을 무시하고 시위대에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안전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비군을 프락치라고 욕하면서 이 곳은 시민들이 막을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시민들이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으며, 예비군들의 지원이 없다면 추가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한참 사람들을 선동하던 그들은 예비군을 방해하고 몇몇 사람을 시위현장에 들여보낸 뒤 은근슬쩍 사라져 버렸습니다.


속칭 '꾼'이라 불리는 전문적인 선동자들의 모습은 이후에도 수차례 목격되었습니다. 경찰과 시민사이의 분쟁을 유도하는 이들은 시민들을 위험한 지역에 몰아넣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정보가 교류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인원수가 목적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에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7일 오전 5시 : 경찰의 점거방송 이후 현장을 빠져나오는 시민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오는 시민마다 진압조 투입이 임박해졌다고 말하고 있었고, 이에 예비군은 긴급히 1개 소대를 현장에 투입하는 한 편, 교회 정문에서 다시 한 번 스크램을 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동자들이 나와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예비군들의 해산을 종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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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한 예비군들을 도와준 이들은 다름아닌 다음 아고라에서 나온 네티즌들이었습니다. 여러번 경험을 통해 경찰들의 진압 분위기를 확인한 아고라인들은 연신 '들어가지 마세요'를 외치며 선동자들의 꾀임에 시민들이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7일 오전 7시 : 긴박했던 상황은 경찰측이 진압 명령을 취소하면서 소강 상태로 들어섰습니다. 거리는 시내버스를 비롯하여 차량이 도로를 메꾸면서 교통통제가 풀리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은 다시금 서울 광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와중에도 선동자들은 시민들을 시위현장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다 '학생들을 다치게 할 셈이냐'라는 호통을 듣고 물러났습니다.

아래 영상은 선동자가 시위현장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현장검증을 한 영상입니다. 선동자의 발언과는 달리 현장은 어린애와 여성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으며, 만약 이 곳에 밖에 있던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시위대로 가세하였다면 역으로 불안감이 조성되어 돌발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습니다.


7일 오전 8시 : 마지막 예비군이 빠져나오며 이 날의 시위는 일단락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비군을 말할 때 박쥐라는 표현을 자주 애용하곤 합니다. 이도저도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하지만 내가 본 예비군은 항상 서운한 대접을 받는 시민들에게 늘 배풀어주는 열린 마음을 가진 멋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전경들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적으로 보이십니까? 오늘은 박카스라도 하나 건네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전해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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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진입만이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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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시위를 마치고 시위현장을 다시 돌아보던중에 이상한 광경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예비군과 일반 시민들이 모두 다 시청앞 광장으로 모인 가운데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남아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통로는 이미 개통되어 현지주민들이 이동하고 있었고, 경찰과 이들은 서로간의 철수를 주장하며 의미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20여명의 시위대는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청와대로 가기위한 상징성의 발로이며, 경찰들이 먼저 철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는 계속 이 자리에 남아있겠다고 하였다. 한 편 경찰측에서는 양쪽에서 다 같이 철수를 하자며, 서로 같이 철수하자고 종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시위하는 이유가 청와대에 가기 위해서인가?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였지만, 머리속 생각이 정리되지 못하여 현장에서 설득하는 일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기에 이 자리를 빌어 남은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이슈가 퍼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언론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20여명의 사람들이 청와대에 가기위해 시위를 벌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생각은 존중하되, 이를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여명의 사람이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을 끌어내는 것과 100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명박을 끌어내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을까?

전자는 20분의 1로 줄어든 또다른 독재를 나을 뿐이지만, 후자는 민주주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청와대로 가서 '으싸으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사람들은 지난 한 달간 그렇게 외쳤는데도 이명박이 대답하지 않으니 청와대로 가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오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약 10만명. 5천만 대한민국 국민중 500분의 1에 불과한 수치이다. 결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의 조급증에는 그리 화를 내던 사람들이 왜 스스로 조급증에 파묻히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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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욱더 뭉쳐야만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수 있는 자리는 평화와 즐거움으로 가득찬 축제의 공간이지 피로 얼룩진 시위현장이 아니다. 지난 31일 강경진압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익히 체험한 바 있다.

청와대 진입은 경찰과 시위대를 물러설 수 없는 극한 대립의 상황으로 몰며,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어느 한 쪽을 폭력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존중받을수 없다. 폭력으로 얼룩진 시위현장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인권자들에 대한 참여 제한을 가져올 뿐이다. 지금 그들이 주저앉은 그 자리가 지난 밤 내내 여성들의 출입이 금지된 바로 그 자리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를 존중하며, 모든 이들의 참여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소수의 폭력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결코 존중받을수 없다. 어린아이들의, 학생들의, 그리고 장애인을 비롯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촛불 문화제를 위해 더이상 무의미한 청와대 만능주의를 버렸으면 한다. 양재역에 100만명이 모인다고 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하루속히 깨닫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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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신의 횃불, 자원봉사자.

지난 31일자 촛불집회에 참가한 여러 자원봉사자들의 사진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희를 보고 배후세력이 있다고 열심히 주장하지만, 사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그 누구의 지시도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모인 이들었습니다. 자기돈으로 촛불을 사고, 그 촛불을 나누어주면서 오히려 받아가시는 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이들. 과연 이들은 누구인지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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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이 눈에 띄이는 이들은 다음 아고라등을 통해 보인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주로 교통통제를 비롯하여 행사장 안내, 정리등 행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이들은 오늘도 유모차 부대를 선두에서 이끌며 행사장에 자리잡을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활동반경이 주로 청계천광장등에서 진행하는 행사 진행에 제한되는 관계로 가두시위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이 들이 있기에 수만명에 이르는 많은 시민들이 안심하고 한 자리에 모일수 있었습니다.

조끼는 붉은색과 녹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로 구분되는데 구체적인 차이점은 잘 모르겠군요. 나중에 행사장을 찾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고맙다는 인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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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셔터음이 연속적으로 들리기에 찾아가 보았더니 '시민 기자'라는 명찰을 가진 여러 분들이 구호를 외치며 의지를 다지고 계셨습니다.

DSLR클럽등 인터넷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다 이번에 오프라인상에서 처음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이들은 전문 기자 못지않게 다양한 장비를 가지고 행사 곳곳을 누비며 기존 언론사들이 보도하지 못한 여러 기사들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공개된 여러 집회 사진중에 상당히 잘 찍은 사진이 있다면 아마 이 분들의 손을 거쳐간 사진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최근에 보도되고 있는 경찰의 과잉진압 사진들은 바로 이러한 자원봉사자분들의 사진이 먼저 이슈가 되면서 점차 기존 언론사들이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렇게 한 명의 보도기자로서, 진실을 사회에 알리는 선구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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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라 하면 이미 잘 알려진 이 분들을 빼놓을수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분들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새벽까지 남아 집회 참가자분들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우리들의 동료입니다.

시민들과 전경들이 충돌하는 과격한 상황속에서도 어느 한 쪽에 휘말리지않고 비폭력 중립을 유지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쉽지 않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여 중간에 예비군 군복을 벗어던지고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다고 하네요. 누구나 예비군 군복을 입을수는 있지만, 모두다 예비군 자원봉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든든한 존재, 오늘도 예비군 자원봉사자분들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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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자원봉사자 분들로는 의료 봉사단을 들 수 있습니다. 가벼운 붕대와 소독약으로 응급처지를 시작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의사, 간호사분들이 대거 자원봉사 활동으로 참여하면서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집회 참가자뿐만 아니라 전경들에게 까지 의술을 베풀며 이념을 초월한 진정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최근 속이 무척 쓰리다고 합시다. 시위에 대한 진압이 강경진압으로 바뀌면서 다치지 말았어야할 무고한 시민들이 매일같이 앰블런스에 실려 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서로간에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시위를 끝마치는 일이야말로 이 분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일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소속된 것은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해내는 우리들. 사람이 부족하면 대신해서 촛불을 나누어주는 역활을 하기도 하고, 때론 기부금을 모아 배고픔에 지친 시민들을 도와주기도 하며 언제 어디서나 내 옆에 함께 있어주는 든든한 친구들. 그 소중한 존재 하나하나가 모여 스스로에게 봉사함으로서 오늘날 촛불집회가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봉사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잠시 시간을 내어 도와주면 됩니다. 작은 친절 하나가 모여 큰 횃불이 되고, 큰 횃불은 세상을 밝히는 힘이 됩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시민정신, 그 주역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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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촛불 문화제때의 사진. 곁에 아저씨 일을 돕다보니 얼떨결에 입구에서 촛불을 나누어주는 역활까지 맡게되었네요. 하여 정작 사진은 하나도 못찍다 이거 한 장 찍었다는.. 옆에 계신 분도 구경하다 어느새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게된 남기훈님입니다. 1회 촛불문화제때부터 참석을 하였다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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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14시간의 사투

토요일 밤부터 시작되었던 시위를 마치고 조금전 돌아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뉴스란을 보니, 어제밤부터 시작된 밤샘 시위에 대해 여러 기사들이 올라와있어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존 언론사들, 심지어 경향이나 한겨례같은 신문사들도 현장의 분위기를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읽어내기엔 무리가 있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밤 7시부터 진압 시각인 다음날 8시까지 왜 시민들이 그 자리에 있었나, 한 번쯤 같이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31일 오후 8시 : 행진은 무척 평화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행사 참여자가 모두 지나가는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도로위에 있는 그 어떤 차량도 클랙션을 울리지 않았고, 일부 차량 운전자들은 광우병 수입 쇠고기 반대 피켓을 들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지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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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10시 :  안국 사거리를 향해 행진하던 참가자들은 전경들의 버스로 바리게이트가 쳐진 첫번째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전경들이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두고 깃발을 든 단체 참가자들이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응원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전경 버스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지붕위에 올라간 시민들은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안국 사거리까지 도착한 모습을 보고, 참가자들의 행진을 독촉하였으며 시민들은 환호성을 부르며 안국사거리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후에 그 자리에서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전경들에게 방패로 찍히며 진압된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부 통신을 통해 최류탄이 발포되었다는 소식이 나돌면서(다음 뉴스에는 사과탄으로 보도) 오늘 시위는 강경진압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분위기가 시작전부터 돌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분말 소화기 진압]

31일 오후 11시 :
약 50여명의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참가자 한 분이 전경버스위에 올라가 참가자들의 사기를 붓돋아 주었습니다. 이에 방송사 기자를 비롯한 참가자 수여명이 지붕위에 올라갔고,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말을 비롯한 다양한 구호가 선창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향한 것에 대해 배후 세력의 음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저희가 한나라당이 말하는 배후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고작 50여명의 전경을 두고 행진을 멈추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저도 1선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했는데 뒤에서 천여명에 가까운 분들이 밀어주니까 전경들이 맥을 못쓰고 밀려났습니다. 오히려 전경들 보호를 위해 뒤에서 밀지 말라고 요청해야 할 정도로 초반 참가자들의 사기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11시 10분경에 분말 소화기를 이용한 경찰들의 첫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말 소화기는 처음 맞아보는데, 분말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선두에 있던 많은 시민들이 '폭력경찰 물러나라'를 외쳤고, 약 3분간의 분말 소화기 진압은 일단 일단락되었습니다. 후방에서는 자비로 구입한 음료수와 식수가 보급되어 분말가루를 마신 시민들을 달래주었으며, 경찰의 진압에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광장에 있는 한나라당 사무소를 향해 달걀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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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12시 :
자정이 지났으나 주말이라 그런지 7,8세 가량의 아이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고 뒤편 광장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부 아기 엄마들도 뒤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위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의 살수차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의 살수차 진압 장면]

경찰들은 살수차 공격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입니다.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당시 저는 2선 중앙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약 1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살수차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한 여자분의 귀걸이는 스치기만 하였는데도 날아가버렸고, 살수차 공격이 끝난 자리에는 안경을 줍는 참가자를 비롯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10미터 거리에서도 그런데 바로 앞에서 맞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살수차 사격 장면 / 출처 : 우리예리님 블로그]

1일 오전 1시 :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시민이 전경버스 지붕위에 올라 살수펌프를 깃발로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살수차는 지붕위에 있는 시민을 조준하기 시작하였고, 아래에 있던 많은 참가자들이 '쏘지마'를 외쳤으나, 결국 그 시민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뒤에 기자분이 순간적으로 잡아주어서 버스에서 추락하는 것은 면했으나, 실신한 그 시민은 긴급히 후송되고 말았습니다.

살수차의 공격에 시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살인경찰 물러나라', '살인무기 꺼저라'를 외치며 강경한 분위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경 차량은 유리창이 깨지고, 타이어가 펑크났으며 전경버스에는 곧 살인경찰이라는 낙서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부 물병이 전경들쪽으로 날라갔고, 전경들은 건전지등을 투척하며 반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직 이성을 가지고 있었고 곧 '비폭력' 구호를 외치며 참가자들 스스로 흥분을 진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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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3시 :
전경들의 추가 투입과 시위대간의 막연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계획을 두고 격론이 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4.19 혁명도 결국 폭력으로 이루어질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전경버스를 전복시키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하였으며, 20대 청년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위를 보고있다. 조중동이 왜곡하고 있는 가운데 불필요한 무력은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현상황을 유지시키기를 원하였습니다. 경찰들을 잡아 인질로 삼자는 과격한 논의까지 진행되었지만, 그 어떠한 것도 결정되지 못하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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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4시 :
4차례의 살수차 공격으로 인해 시민들은 흠뻑 젖은 상태였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광장 뒤 편에선 모닥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반에는 나무 장작을 구하여 젖은 옷을 말릴수 있었으나 곧 모닥불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 피켓, 촛농등 태울수 있는 모든 것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현장에선 디시인사이드, 다음아고라등 인터넷을 통해 참가하게된 시민들이 즉석에서 돈을 차출하여 김밥, 우비, 수건등 다양한 물품을 배포하기 시작하였고, 시민들은 비록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으나 아침이면 지금 소식을 듣고 많은 시민들이 더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위안하며 더 크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BBC 방송을 통해 시위현장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소식과 상암 운동장 및 다음 아고라에서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소식은 참석자들의 사기를 더욱 북돋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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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4시 44분 :
새벽녘이 밝아오고 있는 가운데 해화동 방면에서 시위를 하던 참여자들에 대한 진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오토바이 참가자를 통해 긴급 보고된 이번 사안을 두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다소 논란이 일었지만, 혜화동 방면에는 이 곳보다 더 많은 참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고, 이 곳을 두고 혜화동쪽으로 지원을 갔다가 자칫 포위될 수도 있기에 이곳에서 혜화동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시위를 계속한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아침에 한 차례 더 살수가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아침밥은 청와대'등 위트넘치는 구호를 외치며 하루빨리 아침이 오기를 고대하였습니다.

1일 오전 6시 : 살수차가 전진하며 혜화동 방면 참가자들을 몰아내어 결국 안국사거리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전경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오갔으며 새벽까지 버틴 시민들과 하루밤을 푹쉬고 진압에 들어간 전경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때, 살수차를 포위하며 시민들이 우세에 서기도 하였지만, 곧 시민들은 숫자에서 밀리며 뒤로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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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8시 : 사거리를 앞두고 마지막 대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을 비롯하여 인도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인권위단체가 항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위 마지막까지 경찰은 인도를 장악하였으며 이는 인권위에 모두 촬영되었습니다. 또한 방패를 끌며 가는 장면 역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기껏해야 1,2Kg정도의 플라스틱 방패를 무거워서 끌고다닌다고 합니다. 밑에 고무패킹은 다 벗겨진 것을 촬영할려고 하니 거부하기에 인권위 사람을 데려와 따로 찍어두었습니다.

오전 8시를 기점으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은 다리가 부러진 모양인지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었고, 한 아저씨는 가슴을 맞아 숨을 쉬지못한 상태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앰블런스를 부르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물에 젖은 신발을 벗기는데 전경들이 실실 웃으며 환자의 다리를 툭툭 치고 지나가더군요. 그 넒은 광장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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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곳에선 전경이 여성들을 향해 '이 씨발 호로년아, 밑구멍을 찢어버리기 전에 아가리 닥쳐'라고 욕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개새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어떠한 의료지원도 없었기에 참석자들은 자체 구성된 의료 지원팀을 통해 치료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나마 치료를 받을수 있는 자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었고, 상당수의 참석자들은 그 어떠한 치료도 지원받지 못하였습니다.

방패에 찍혀 머리에 피를 흘리던 학생은 손으로 피를 닦다가 곧 괜찮다며 사라져버렸고, 팔이 골절된 시민 한 분은 붕대를 구하지못해 비닐봉투를 말아 팔을 고정시켜야만 되었습니다.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던 경찰특공대는 부상당한 시민들에게 눈길하나 주지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곧 자리를 떳고, 안국역까지 시민들을 추격하던 전경들 역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과 10여분 사이에 그 날의 모습은 그 어떠한 흔적도 찾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운좋게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오늘 시위를 통해 더이상의 평화시위는 그 어떠한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경찰들의 강경진압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들 역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계천 광장으로 다시 시위를 하기위해 떠나는 우리들. 그러나 발걸음만은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얼굴이 참 무서우시네요.'

인도에서 홀로 대치중에 어느 중대장으로부터 들은 소리입니다. 친구에게 말 한마디 실수한 것을 가지고 몇시간을 끙끙거리던 이 소심한 남자가 무서운 얼굴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웃으면서 '내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건드리면 한 놈 때려죽이고 간다고 생각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 한 번, 딱 5분만이라고 이 날의 거리에 서 있으신 분이라면 결코 오늘의 일을 잊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또다시 더 큰 피를 흘려야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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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알바에 이어 택시 알바까지.. 드러나는 검은 통제의 손

지난 29일 한국농촌공사가 약 5천여명의 자사 직원을 동원하여 인터넷상에 댓글을 통한 언론 조작(알바)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된 데 이어 어제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경찰이 강제적으로 택시 기사들을 동원하여 야간 집회를 방해한다는 증거가 포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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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부터 야간 시위에 수십여대씩 등장하여 빈 차로 도로를 질주하는 택시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해당 택시는 현장에 있는 시민들에 의해 '양화운수' 소속의 택시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구체적인 의도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어, 추측만이 무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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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 시위현장에서 그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 한 시민기자분께서 일일히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 끝에 해당 택시들이 경찰들의 통제하에 해당 도로에 진입했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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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어떻게 이 곳에 오셨어요?

택시 : 나도 몰라.

기자 : 아니, 이 곳에 오셨잖아요.

택시 : 저 앞 사거리에서 경찰들이 차량들 다 이 곳으로 밀어넣고 있어.


그동안 경찰은 야간집회의 해산 사유로 도로 점거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택시 기사분의 증언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주장이 모두 거짓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댓글 알바에 이어 택시 기사까지 알바로 동원하는 이명박 정부, 이제는 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


ps] 민변에서 쇠고기 수입 고시에 대한 무효소송을 국민소송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연령 제한없이 누구나 소송단으로 참여가 가능하다고 하니, 관심있으신 분은 꼭 서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소 : http://minbyun.jinbo.net/minbyun/zbxe/popup/people_la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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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범은 시민이 아니라 바로 경찰입니다.

제 21회 촛불문화제가 지금 막을 내렸습니다. 금일 촛불집회는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고시가 예상된 가운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분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직접 참가는 못하였지만 저녁내내 아프리카 방송을 들으며 시위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그 어느때보다 폭력성을 드러낸 경찰들의 무자비한 집압으로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겨례 29일자 5신 보도에 따르면 인도위에 있던 시민들이 경찰들에게 무릎꿇려지고 집단으로 폭행당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으로의 회귀를 연상시키는 경찰의 강압적인 대응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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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에 따르면 도로 위를 점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할수 있고, 야간 집회에 대해서는 단순 참가시 5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를 집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구류의 경우 거주지가 불분명한 사람에 한해 처분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위 사안을 위반했을 경우, 신분을 밝히고 추후에 벌금을 납부하면 끝나는 일인데, 경찰들은 불법적으로 폭행 및 연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엄연한 직권 남용입니다.

경찰의 직권 남용에 대해 법은 강력하게 제재를 하고 있습니다. 경찰관 직무직행법 제 12조에 의하면 경찰관의 의무를 위반하고 직권남용시에는 현행범으로 체포가능하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할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즉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 아닌 바로 경찰인 것입니다.

일부 경찰들은 직속상관의 명에 따랐다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위법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했다는 것은 엄연한 공모죄이며 결코 면죄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혹 다음 번에도 인도를 가로막고 시민들의 행진을 방해하는 경찰들이 있다면 이 사실을 꼭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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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 시위에는 일명 '프락치'라고 불리는 사법 경찰들이 등장하여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집회에 이어 오늘 집회에서도 어김없이 프락치가 등장하여 현장에서 시위자에게 둘러쌓이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왜 사복을 입고 촬영을 하는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발각된 사복경찰은 '경찰관이 사복을 입고 공무를 집행할 수도 있다.'고 궁색한 답변을 내놓으며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의 말과는 달리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집시법 제 19조에 의하면 경찰관이 집회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경찰제복(정복)을 입고 집회 주관자에게 통보해야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수호자이자 정직함의 대상이었던 경찰이 이제는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입니다. 평화로운 시민들을 향해 불법집회라고 강제해산을 종용했던 그들이 정작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행범이라니,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저는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는 모든 시민들이 당당해 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경찰들이지 여러분이 아닙니다. 어깨를 쭉 펴고 다음 집회에서도 당당하게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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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앞당긴 매스 미디어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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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3월, CNN, ABC, 뉴욕타임즈등 미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Media Summit New York'에서 충격적인 발언이 터져 나왔다. 블로그가 기존 미디어와의 관계를 역전시켰다는 것이다.

미 ABC 뉴스의 뉴스부분 책임자 데이빗(David Westin)씨는 '블로그는 거대 미디어가 가지지 못하는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도 협력하고 싶다.'고 호의적인 반응을 드러내었으며, CNN의 존 클라인씨는 '블로그등의 뉴미디어 증가로 기존 신문사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불과 1년전 까지만 하여도 기존 미디어에 종속된 대안매체라는 평가를 받던 블로그 저널리즘이 몇달 사이에 정보 흐름을 역전시킬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답은 지금 벌어지는 촛불집회에 있다.

전통적 미디어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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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적인 매스 미디어들은 1면에 어떤 기사를 싣는가에 따라 이슈를 독점할 수 있는 강력한 편집권을 소유하고 있었고, 독자들은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기존 종이신문에서 인터넷 뉴스로 독자층이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기존 언론매체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거대 커뮤니티 서비스나 1인 미디어 매체인 블로그의 등장은 이러한 감소세를 더욱 부추기기 시작하였다.

2007년 MS 라이브 스페이스의 조사에 의하면 전세계 2만 5천명의 조사자 중 85%가 블로그를 신뢰한다고 답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블로그와 기존 언론매체중 어느 것을 더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17%가 블로그를 그리고 21%가 기존 언론매체를 더 신뢰한다고 답하여 이미 신뢰성면에선 기존 매스 미디어와 동등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뉴미디어의 확산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며,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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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를 동원한 시위 방해 현장. 언론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사안이지만, 네티즌들은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 그리고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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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5일은 촛불집회가 처음으로 강제 해산된 하루였고, 뉴미디어가 기존 매스미디어를 앞지른 하루이기도 하였다. 경찰들의 강제진압을 처음으로 보도한 곳은 조중동, MBC와 같은 언론사가 아닌 블로그였으며 아프리카를 통해 실시간으로 당시의 상황이 그 어떠한 검열이나 편집도 가하지 않은채 생생하게 보도되고 있었다.

이제 더이상 독자들은 신문사나 TV 방송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하루 수십여건의 기사발행이 고작인 언론사에 비해 매일 수천건의 뉴스를 발행하는 블로그는 정보량면에서 이미 매스미디어를 앞도하고 있으며, 언론사 기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꾿꾿이 자리를 지키며 현장을 중계하는 아프리카 VJ들은 정보의 질적인 면에서 매스미디어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 역전 현상의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7,80년대는 정보의 제한으로 인해 국민들이 통제될 수 있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집단지성을 갖춘 오늘날의 시민들은 더이상 정보의 통제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속된 말로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전문가라고 할 만큼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피디아를 통해 다양한 지식이 축적되고 또 교류되고 있으며,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이미 기존 매스미디어가 발행하는 정보총량을 윗돌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이렇게 진화하는 시민들의 역량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 자리를 뉴미디어가 빠르게 매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진정한 시민정치를 위한 뉴미디어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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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확산되는 촛불집회, 늘어가는 수입반대 서명들.

지난 토요일 원주 롯데시네마 앞을 지나가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면을 써 얼굴을 가리긴 하였지만, 앳된 목소리만은 감추지 못하였던 학생들의 모습. 그들은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 앞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조금만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최근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 졌습니다.

학생들은 최근 시위현장마다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는 선생님들을 의식한 듯, 10여분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을 위한 서명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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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서명운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서명운동은 여타 다른 서명운동과는 달리 무척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 분은 앰프를 끈 마이크를 들고 조용하게 서명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고, 길가는 사람을 일일히 붙잡는 호객행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뒤편에 즉석으로 마련된 이 간이서명대는 반대편에서 보면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조촐한 크기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적극적이었습니다. 약 한 시간동안 100여명에 가까운 시민분들이 서명에 동참을 하였는데, 이 수치는 정말 대단한 수치입니다. 국내 가장 큰 이슈인 독도문제 조차도 하루이틀만 지나면 시들시들 거리기 일쑤인데, 한 달이나 지난 이슈에 대해 아직도 이처럼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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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은 주말을 맞아 영화관을 찾은 20대들이 많았고, 간간히 가족단위로 영화관을 찾았다 서명에 동참한 아저씨, 아주머니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들은 오후에 있을 촛불집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쇠고기 재협상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주 시내에서 촛불집회를 하겠다는 현수막을 본 적은 약 2주전인데, 서울뿐만이 아니라 지방에서의 촛불 시위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듯 합니다. 오늘 이명박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촛불집회를 해산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손바닥으로 가리지 못합니다. 전국의 모든 시민들이 지금 하나로 뭉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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