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순위권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최근 화자되고 있는 인기어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고르라면 단연코 '알바'와 '좀비'라는 말이 아닌듯 싶다. 전자는 촛불집회 찬성측에서 반대측을 비하하는 말로, 후자는 반대측에서 찬성측을 공격하는 말로 넷상에 자주 애용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조지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영화속 좀비들이 촛불집회 시민들이었다면? 다소 엉뚱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이 생각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좀비영화의 시초로 불리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그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느날 우연하게 좀비들의 습격을 받은 여러 주인공들이 외딴 집에 모여 구조를 기다리다가 결국 하나둘 죽어가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비해 좀비가 보여주는 상징성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영화속 좀비는 혼자 있는 여성이 충분히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을정도로 허약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여러 좀비들이 모여 군중을 이루면 주인공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들은 발에 마치 쇠사슬을 달은 듯 항상 발을 끌고 다니며, 기본적인 언어조차 말하지 못한다.
이러한 좀비들의 모습은 오늘날 매스미디어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언론, 교육, 환경, 도덕등에 의해 제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 그들 하나하나는 연약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다수가 모이면 대통령도 두려워 할만한 촛불집회가 생겨나듯이 군중으로 비추어진 이들의 모습은 모두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식육 또한 주의해서 보아야할 장면이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육에 대한 습관은 세계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던 관습중에 하나였으며, 아직도 오지의 부족에선 이같은 관습이 지속되고 있다. 식육은 단순히 식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닌 엄격한 종교적인 주술중에 하나로서, 죽은 이들의 일부를 섭취하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의 힘과 지혜를 이어받을수 있다는 사상에 기초한다.

영화속 희생자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인텔리전트, 아이, 청년, 엄마에 이어 보수주의자인 아버지와 사회적 약자 계층인 흑인으로 이어진다.
한 편 첫 촛불집회의 시작은 지식과 열정으로 가득찬 학생들이었으며, 이어 보수주의의 상징인 예비군과 유모차 부대가 등장하였고, 최근에는 시각장애인등 사회적으로 약자계층인 이들의 참석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수십여년의 세월이 지나 마치 예언서처럼 펼쳐지는 로메오 감독의 마술을 보면 감탄사가 나올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들 좀비들에 대응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작품에서는 백인들이 그 역을 맡고있다. 사람들이 알수 없는 좀비로 변해가는데에도, 웃고 떠들며 마치 사냥을 즐기듯이 하나둘 좀비들을 죽이는 백인들의 모습.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백인들의 좀비 사냥은 촛불집회에 맞서 물타기와 배후설을 주장하는 오늘날 대한민국 수구세력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로메오 감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촛불집회가 열릴 것을 예상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한 번쯤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것은 내 자유이지 않은가. 노렸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오늘날 촛불좀비들의 모습을 잘 대변한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공포영화가 무섭다면 흑백영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보며 한 번쯤 좀비들이 펼치는 촛불집회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