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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History

[독도논쟁] 조선과 일본의 독도 영토선언 비교

* 관보 제 41호

* 조선

- 1531년(중종 26년)에 간행한 조선왕조의 유권적 조선영토 해설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45 울진현조'에 명문기록 및 독도표기(팔도총도)

- 1808년 조선정부가 발행한 '만기요람군정편'에서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지이며, 우산도는 왜인(일본)이 말하는 송도이다"라고 기록.

[참고로 국제사법절차상 가장 현저한 특징은 변론 및 증거로서의 서면화된 증거가 기본법칙이며, 그 중에서도 정부의 공공문서가 최선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 Burward V. Sandifer.  Evidence Before International Tribunals(Revised Edition)

(Charlottesville : Virginia Univ. Press, 1957), p.208 : "Generally speaking, an official document of a public record is the best evidence of the fact or rights it purports to record and is always admissible in international as it generally is in municipal proceedings."]

-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 제2조 : 울릉도를 '울도'로 정부직제를 개편하고 도감을 군수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군수의 관할구역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사'라고 규정하였다.

(1906년 3월 29일 일본 도근현 은기도사 동문보(東文輪)급 사무관 신전유태랑((神獨由太郎) 일행이 독도를 시찰한 후 울릉도를 방문하여 '자운독도금위령지고시찰차래도'(自云獨島今爲領 地故視寮次來島)라고 심흥택 군수에게 말한 기록이 있으며, 일본 공문서상은 이보다 약 2년이나 앞서서 울릉도 사람들이 그 '독섬'을 '독도'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문으로 1904년 9월 25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독섬(석도)가 독도임은 부일할 수 없는 사실이다.)

- 1900년 10월 27일 토요일, 관보 제1716호를 통해 게재. (당시 서울주재 일본공사관에서는 동 칙령에 대해 어떠한 이의제기도 없었음.)

이상과 같이 조선의 독도는 국제법상 아무런 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린다.

참고로 한국의 독도 영토취득은 신라시대인 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함으로서 그 구성도서인 독도가 같이 포합된 것으로서 국제법상 '정복'에 해당되며 이후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였다.(SCAPIN 667)

* 일본

1905년 2월 22일 현고시 40호로 무주지에 의한 독도편입 고시

[무주지 선점의 경우에 국제법상 선점의 의사를 중앙정부가 대외적으로 표명함을 요한다.

Mark W. Jams, An introduction to Intrtnational Law, Boston : Little Brown & Co., 1993, p.184 : J. L. Brierly, The Law of Nations(Oxford: Clarendon Press, 1976), p.163 : Oppenheim Iternational Law, Edited by Robert Jennings, 9th Edition(Mallow. Essex : Longman, 1992), p.689 : Rebbecca M. M. Wlllace, International Law, Third Edition (London : Sweet & Maxwell Ltd., 1997), p.94. : Thomas Buergenthal, Harold G. Majer. public International Law. 2nd Edition(St. Paul, MN : WEST Group, 1990), p.2.]

그러나 지방정부나 현은 주권적 핵심요소중에 하나인 독자적 외교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제법상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이로인해 일본의 독도편입은 원점무효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