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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History

[독도논쟁] 팔도총도의 독도는 왜 서쪽에 있는가?


팔도총도(첩 '동람도')
목판본 1530년
조선조관찬
27.0x34.2cm
이찬 소장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일의 첫머리에 있는 우리나라 전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팔도전도'와 '도별도'가 있으며 판심에 '東覽圖'라고 있어서 <동람도>라고 불린다.

이 지도는 우리나라에서 인본으로 간행한 가장 오랜 조선전도이다.  <동국여지승람>의 제1교본은 성종12년(1530)에 간행된 것이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임진왜란 후에 복간한 것이 대부분이다.

<팔도총도>는 동서가 남북의 길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넓어 한반도 전체가 남북으로 압축된 느낌을 주며, 특히 북부 지방이 심하다.  이것은 당시에 우리나라의 지도윤곽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동국여지승람>의 책크기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팔도총도>는 우리나라의 진산과 주요 하천, 도명, 주요 섬만 표시한 간략한 지도이며 바다에는 파도무늬가 그려져 있다.  섬으로 울릉도와 우산도가 따로 표시되어 있으나 그 위치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지도는 조선 후기에 보급된 지도책에 널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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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본인들이 제시하는 자료중에 하나인 '동국여지승람'에 포함된 '팔도총도'이다. 이 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반대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를 보고 일본인들은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가 아닌 울릉도 바로 옆의 섬인 우서도(우 야마시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이 부분에 대해 논하기로 하겠다.

1. 독도는 울릉도보다 가깝다?

분명 내륙에서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약130km, 반면에 독도는 220km에 이른다. 이를 보면 분명 독도가 울릉도보다 가깝다는 사실에 의아심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의 선박은 석유등을 태워서 움직이는 동력선이 아니라 바람이나 해류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무동력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선박은 해류와 바람의 영향에 절대적일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동해의 해류는 무엇인가?

2. 쿠로시오 난류와 독도.

한국의 동해에 흐르는 대표적인 해류로는 바로 쿠로시오 난류에서 파생된 동한 난류가 있다.
이 난류는 남해안을 통과하여 일부는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다 남하하는 북한 한류를 영덕 부근 해역에서 만나 동해상으로 흩어지고, 주류는 일본 서해안을 따라 올라간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난류가 독도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독도의 수온이 25∼26℃이며, 이로인해 독도의 생태계에 자리돔과 같은 난류성 생물이 살아간다는 것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 그럼 독도를 항해 출항해보자.
당시 독도의 출발항은 울진항이었다. (이는 신동국여지승람 제 45 울진현조에 독도에 관한 기술이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우산도'라는 명칭은 바로 울진의 옛 고구려 이름인 우진야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도서명 전이관습론)
강원도 울진항에서 울릉도를 향해 출발할 경우, 쿠로시오 난류에 의하여 동쪽으로 이동, 독도쪽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은 발해 1300호를 통해 이미 증명된 바있다.



다음은 발해 1300호의 항해도이다. 이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17일의 항해도이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도
동쪽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이는 울릉도
근해에서 역류하는 해류때문이데, 이는 당시의 탐사일지에서도 나타난다.
1월 19일

뗏목은 계속 동쪽으로 밀려 독도 주변을 지나게 된다.

탐사대는 1월20일부터 부산 입항을 포기하고 독도 접안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21일 아침 울릉도 ·독도 해상에 다시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이마저 무산됐다.

비록 무산이 되긴 하였지만, 이는 얼마든지 항해중에 독도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로서, 옛사람들 역시 울릉도를 항해 항해 도중 독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이렇게 울릉도 주변의 해류로 인하여 울진 -> 독도 -> 울릉도에 이르는 항로는 충분히 독도가 울릉도보다 가깝다고 착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이러한 착각이 반영된 것이 바로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첩이다. 그러나 이는 150년후 정상기(1678~1752)의 지도에서 위치가 수정되어 나온다.

이상과 같이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 Thread에서는 팔도총도의 국제법상 증거의 지위 및 이 지도에 대한 세부사항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참고자료 : http://www.qsl.net/hl2wa/balhae1300.htm  - 발해 1300호에 대해


참고서적 : 나홍주의 "독도의 소유권에 대한 국제법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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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완 2012.08.22 23:07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가 잘못 그려졌는가?? (독도/울릉도)

    http://www.dokdo.go.kr/ImageSolution.do?command=detail&solutionCode=14256 ,
    이름 팔도총도
    작성자 관리자
    설명 팔도총도(八道總圖) 1530, 목판본, 26 x 34.6 cm 1530년(중종 25)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동람도(東覽圖)에 수록된 팔도총도이다. 전체 모양이 동서로는 부풀려져 있고 남북으로는 압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독도는 강원도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우산도(于山島)로 표기되어 있다. 현존하는 인쇄본 단독 지도 중에 독도(우산도)가 등장하는 최초의 지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일의 첫머리에 있는 우리나라 전도에서,
    독도/울릉도 명기가 뒤바뀐 것으로 보이는 이유.

    서울말 "지도"에 대한 경상도 방언이 "동국여지승람"이고,
    평안도 방언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입니다.

    "울릉도"에 대한 평안도 방언이 "우산도"
    "독도"에 대한 평안도 방언이 "울릉도"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련한 "이행(李荇)"은 평안도 사람으로, (지명 등의) 용어가 평안도 방언으로 가능할 때는, 그 평안도 방언을 사용한 것이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일의 첫머리에 있는 우리나라 전도에서, "우산도"와 "울릉도"의 위치는 (잘못된 것이 아닌) 올바른 위치로, 정확한 지도.


    http://thesaurus.itkc.or.kr/detail.jsp?keyword=13811&dbcheck=Y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조선 성종(成宗) 때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에 우리나라 문사(文士)들의 시문(詩文)을 첨가하여 편찬한 관찬 지리서(官撰地理書). 50권.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대성.

    http://thesaurus.itkc.or.kr/detail.jsp?keyword=13812&dbcheck=Y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조선 중종(中宗) 때 이행(李荇) 등이 왕명에 따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새로 증보하여 편찬한 조선 전기의 전국 지리지(全國地理志). 55권 25책. 목판본.


    http://voicespec.com/board.cgi?id=test3&action=view&gul=212&page=1&go_cnt=0
    http://voicespec.com/board.cgi?id=test3&action=view&gul=183&page=1&go_cnt=1
    http://voicespec.com/board.cgi?id=test3&action=view&gul=4&page=1&go_cnt=2

    http://voicespec.com/board.cgi?id=test3
    http://voicespec.com/

    • BlogIcon 소금이 2012.08.24 23:41 신고

      댓글의 내용은 출처가 확실하게 명기된 자료가 아니네요. 인터넷상에 증명되지 않은 자료는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삭제해야 되지만, 일단 글쓴이의 답변을 듣기위해 삭제를 유보합니다.

      참고로 독도연구센터의 2008년에 작성된 현황분석 '독도는 과연 일본 영토였는가?'에 따르면 당시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부정확한 것은 조선시대 울릉도 입항이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비슷하게 명칭에 대해서는 야마무라(山村淸助)의 대일본 분견 신도(大日本分見新圖) (1878) 등에서 보이듯, 일본측 문헌과 지도에서 명칭과 위치에 대한 혼란이 19세기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