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미치다. 난생 처음 써 본 기계식 키보드 체험기.

2009. 10. 18. 00:26Issue/IT

몇 일전 키보드 하나를 덜컥 사 버렸습니다. 겨우 키보드 하나 가지고 무슨 소란인가 하실지 모르지만, 그 별것 아닌 키보드의 가격이 15만원 가까이 된다면 사정은 좀 달라지겠죠. 처음 산 기계식 키보드, 레오폴드 FC 200R 클릭입니다.

흔히 키보드는 CPU나 그래픽 카드를 사고 남은 돈으로 맞추는 가장 저렴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딱히 업그레이드하는 일도 없고, 고장만 안 난다면 폐기처분할 때까지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래서 1,2만원이면 충분한 것을 15만원이나 주고 키보드 샀다고 하면, 속된 말로 '미쳤구나!'라는 말을 듣기 딱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미친척하고 산 키보드가 써보니까 확실히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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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키보드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레오폴드 FC 200R 키보드입니다. 참고로 기능은 똑같고 이름만 다른 필코사 제품도 있지요. 빨간색 ESC 버튼이 돋보이긴 하지만, 겉모습 자체는 좀 투박해 보입니다. 요즘 웬만한 키보드는 다 갖추고 있는 손목 받침대도 없고, 104키로 구성된 외관은 빈곤해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하지만 겉모습에서 보이는 빈곤함에 방심한다면 곧 후회하실 겁니다. 이건 의외로 속이 알찬 친구니까요.

키보드로 처음 타자 칠 때의 느낌이라... 누군가는 이를 두고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손끝에서 전해지는 경쾌함은 일찍이 그 어떤 키보드에서도 맛보지 못하였던 즐거움입니다. 어린 시절 애수를 자극하는 자판 특유의 클릭음과 무언가 글을 쓰고 싶다는 감정이 동시에 떠오른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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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치다 보면 이전 키보드와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부분은 키의 각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멤브레인 방식 키보드는 키의 각도가 열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되어 있는데, FC 200R은 키의 각도는 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각도가 다른 이유는 손가락마다 키를 누를 때의 각도가 달라서 이를 돕기 위해서라는데, 그래서인지 손이 미끄러지거나 오타다는 일도 없이 아주 매끄럽게 글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타자도 한 50타 정도 더 늘어난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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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를 살펴보면, 특이하게 ALT 키와 한영키가 합쳐져 있고,  CTRL 키와 한자키도 같이 쓰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스페이스 바 좌우로 윈도우 키가 두 개인 것도 특징. 아마 영문 키보드의 레이아웃을 따르다 보니, 한영키 넣을 곳이 없어 이렇게 만든 모양인데 몇 번 치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됩니다. 정 불편하다면 레지스터리 변경을 통해 한/영키를 SHIFT+스페이스 바로 대체할 수 있는데,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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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무게감도 이전 키보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 중의 하나입니다. 약 1.2Kg의 무게에 밀리지 않도록 장착된 두꺼운 고무패킹은 키보드 위치를 변경하기 위해 들어서 옮겨야 할 정도로 확실한 마찰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타자를 치다 보면 종종 키보드가 뒤로 밀려 불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수고를 좀 덜 수 있겠네요.

또 후면을 보면 독특한 홈과 함께 작은 단자 하나가 보이는데, 이 단자가 바로 키보드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USB 포트입니다. FC 200R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기계식 키보드는 이런 식으로 선을 분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군요. 마치 고가의 이어폰이 선을 바꿀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죠. 집에서 쓰기 때문에 별 필요는 없지만, 자주 키보드를 들고 다니시는 분들에겐 정말 깔끔하고 편리한 기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레오폴드에서 공개한 FC 200R 클릭 키보드 타이핑 영상을 올려봅니다. 참고로 키보드 소리는 클릭 > 넌클릭 > 리니어 순이고, 키압은 클릭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칠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확실히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엔 무리일 듯하네요. 그래도 딱히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모든 걸 고려하더라도, 키보드는 역시 클릭이니까요. 오늘 기계식 키보드에 빠진 블로거 한 명이 더 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