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일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09. 5. 13. 13:57ㆍIssue/Book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기록은 일기장에 쓰인 하루의 일기'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쓰게 되는 나만의 일기. 그 알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일기는 하루의 진실을 담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일기를 쓰는 일은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 각자의 일기를 써 내려간다. 그중에는 평화로운 시대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있을 터이고, 반대로 전쟁과 기아 속에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얼마 전 내가 읽은 '빼앗긴 내일(한겨레아이들 출판)'은 후자에 속한 아이들의 일기집이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 채, 현실 속 전쟁에 휘말린 아이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실라는 번쩍번쩍 빛나는 군인들을 보며 한 때 자신도 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조국을 점령하고, 강제노동과 일본인의 잔혹한 탄압 속에 군인이 이제는 멋진 직업이 아님을 깨닫는다.
2차대전 시기 유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학살의 대상이 되었던 클라라.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 타야만 했다. 도망... 그리고 죽음.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 나치에게 붙들려 가면서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였고, 친한 친구들의 죽음에도 반응할 수 없었다. 죽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심정은 그녀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묻혀있다.
에드는 그 나이 또래가 다 그러하듯, 좀 멋진 놈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전에 지원하여 미군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꽤 훌륭한 병사이고, 조만간 베트콩을 때려잡고 멋진 훈장을 탈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지만, 그의 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전장에 버려진 이 철부지 소년은 곧 전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같이 놀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죽음의 손길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진다. 소년은 죽음을 보아가며 어른이 되었고, 훈장보다 이 빌어먹을 지옥을 하루빨리 탈출하기를 기도하였다. 그의 일기 속에 그려진 베트남은 그야말로 빌어먹을 곳이었다.
저명한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쟁에 의해 가장 많이 희생되는 사람들은 군인들이 아닌 민간인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이나 아이들의 사망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타의로 전쟁에 휘말린 아이들의 모습. 과연 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P.S ] 책이 마음에 드신다면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도 추천합니다. 이란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성장기인데 전쟁 혹은 정권에 의한 혁명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에 대한 소설도 나와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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