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사, 선택할 권리는 소비자에게 없는 걸까요?
2009. 3. 23. 20:10ㆍIssue/Society
택배사, 선택의 자유는 없을까?
오늘 아침에 택배 문제로 좀 난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택배기사분께서 방문하여 물품을 옆방 교수님에게 맡기고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조금, 아니 정말 많이 곤란하였습니다. 같은 학과이긴 하지만, 계열이 틀린지라 수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교수님이고, 게다가 학과장을 맡고 계신 분이라서 만나기가 조금 껄끄러운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A형으로선 그야말로 재난 중에 재난이었습니다.
다행히 문제가 잘 해결되긴 하였지만, 택배 서비스에 실망한 마음은 한동안 회복하기 힘들듯 합니다. 가끔은 이런 푸념 어린 생각을 합니다. '옥션 같은 곳에서 물품을 고르는 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왜 유독 택배회사만은 선택할 수 없을까?'라고... 물론 업체 측에서는 택배회사와의 계약문제도 있고, 또 택배회사에서는 빠듯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지도 모르지만, 최종적으로 물건을 받는 소비자로서는 현재의 택배 서비스에 불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옥션이나 지마켓 같은 오픈마켓 시장에서 택배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현재 택배 서비스는 업체별로 개별 계약을 맺고 물품을 배송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옥션과 같은 대형 업체에서 일괄적으로 계약을 맺고, 업체 선택의 자유를 소비자에게 부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판매자의 관점에서..
소규모 판매상이라면 이런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택배 비용은 배송량에 비례하여 결정되는데, 오픈마켓 업체에서 일괄적으로 계약을 하게 되면 최저가로 택배를 배송할 수 있으니 비용면에서 부담이 덜어질 것입니다. 또 자율적 선택에 의해 택배 배송에 대한 고객들의 항의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니, 고객관리에 대한 업무도 좀 더 제품 분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대량으로 물품을 취급하는 판매업체에서는 소규모업체의 가격경쟁력 향상에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물품을 많이 파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이익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대형업체 역시 택배 배송으로 인한 고객들의 항의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서로 협의할 소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배송권이 오픈마켓으로 넘어가면서 그에 따라 판매자들의 오픈마켓에 대한 종속성 또한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듯합니다.
택배사의 관점에서...
택배사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수익이 줄어드니,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되었던 치킨게임의 여파로 택배비는 2,500원으로 곤두박질 쳤고, 하도급에 의한 열악한 택배 관리 시스템은 수익 면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결정은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업체의 선택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배송 업체가 결정된다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소비자들이 몰릴 것이고, 궁극적으로 저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퇴출하여 시장에서 갖는 파이의 몫은 더 커질 것입니다. 비용에 관한 문제도 몇 백 원 비용을 더 부담하고 완벽하게 고객에게 전달해주는 고급형 서비스와 일반 2,500원짜리 택배 서비스로 업체가 갈린다면, 소비자들도 여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픈마켓의 관점에서...
오픈마켓의 입장이라면 부담이 되더라도 당연히 고려해볼 만한 안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고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을 테니까 말이죠. '국내최초',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어감입니까.
수익 면에서도 그동안 수수료 부담이나 그 밖의 이유 때문에 오픈마켓을 떠났던 판매자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큰 점도 고무적입니다. 3,500원짜리 배송비가 2,500원으로 줄어든다면, 오픈마켓에 대해 판매자들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전해볼 프로젝트가 아닐까요?
소비자의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받는 이의 입장에서 배송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불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다면 단순히 항의 메일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택배사 선택이라는 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도 무척이나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정리해보니, 소비자가 택배사를 자율적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할 관문이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권리를 넘겨주어야 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업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업체들의 현명한 대응을 촉구해 봅니다.
P.S] 이 글에 흥미를 느낀 분이 있다면, LG경제연구소의 '침묵하는 독자들' 리포트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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