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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서 영부인으로.. 미셸 오바마를 회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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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썩 좋아하지도 않고, 미국인이 아닌 토종 한국인인 나에게, 저 태평양 넘어 존재하는 미 대통령의 이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 합중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그의 이름은 지난 수개월간 신문기사의 탑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고, 그의 이름이 담긴 오만가지 책들은 서점 한 켠을 장악하며 어느새 나의 머릿속에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을 새겨넣게 되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을 기억하는 이들도 '미셸 오바마(Michelle LaVaughn Obama)'란 이름 앞에선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 거릴지 모르겠다. 특히나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 살거나 현재 미국의 정치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내이자,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인 그녀의 이름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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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의 경험이 없는 내가 흑인 운운하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미국내 뿌리깊은 흑인에 대한 편견과 갈등을 불행히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순수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흑인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은 버락 오바마를 구해낸 이는 바로 '노예와 노예소유주의의 혈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녀였으며, 그녀가 있었기에 오늘날 최초의 흑인 대통령 역사가 쓰여질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특별함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갈대밭에 널린 갈대 중 하나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억대 재산을 가진 명문가의 후손이 아니라, 시카고시에서 상수도 펌프 운영기사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홈쇼핑 잡지사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 또래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셸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녀 스스로 무척 노력광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마침내 마침내 프린스턴 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법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수 있었다. 평범한 흑인 가정의 아이가 하버드 대학의 박사 학위를 받는 일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졸업 이후 그녀는 로펌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은 그녀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의 흑인만이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미래의 남편과 처음으로 대면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남편은 정계에 진출하고, 그녀 역시 버락이 연설하는 진정으로 바라는 미국의 정신에 빠져들게 되었다. 시작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보수주의자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연설장을 가득메운 사람들을 보며, 감격의 목소리로 외친 '어른이 된 후 생애처음으로 내 나라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은 이틀날 보수 언론지에 의해 '저는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겁니다'라는 말로 반박을 받았다.

'비중있는 최초 흑인 대통령 후보의 부인으로서 그녀가 최근 선거운동에서 풍내를 감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긍심과 당혹감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애국심이 없다는 말을 듣고, 20년도 더 전에 쓴 글 때문에 급진적이라는 수식어를 얻어 듣는 것도 모자라, 고정관념의 최고봉인 '성난 흑인 여성'이라는 별명까지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적 '개조' 전략을 따라 이미지를 누그러 뜨리고 미국 주류 사회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ibid

당시 개재되었던 한 평론가의 대화중 일부이다. 그녀는 다니던 교회의 목사에서부터 수십년전 졸업 논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분석당하였고,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의 공세를 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녀는 현명함을 잃지않았다. 어릴적부터 노력해온 일상들은 결코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으며, 서투른 풋내기 광대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불과 몇 주사이에 사람들을 이끄는 스타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음 번 대선 후보로 그녀의 이름을 올리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평범한 소녀에서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기 전까지.. 그녀는 수많은 편견과 싸웠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에게 존중의 찬사를 보낼 것이다.

노력하는 이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비록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 수많은 독자중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삶과 노력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인생을 승리로 이끈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자. 미셸 오바마. 이제 나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