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가 립스틱을 바른 이유는?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둘리나 로보트 태권v가 순위권을 차지하겠지만, 작품을 떠나 가장 많이 인용된 주인공을 뽑으라면 그 중 하나는 분명 '구미호'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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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본, 한국을 거쳐 저 멀리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화가 존재하는 구미호는 그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중국 산해경을 보면 꼬리가 100년 마다 하나씩 늘어나 9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미오는 보통 나라를 근심케하는 요사스러운 존재로 알려졌으나, 반대로 동쪽을 수호하는 수호령이자 풍요를 가져다 주는 성스러운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였으며, 꼬리는 아홉개가 아니라 끝부분이 아홉 가닥으로 갈라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국내 설화를 보면, 구미호는 여우구슬을 가지고 있어, 그 구슬을 취하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취하는 선인이 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에서 처음으로 구미호가 등장한 작품은 1990년대 방영된 '배추도사 무도사' 시리즈인데, 작품은 80년대 유명한 호러 시리즈물인 '전설의 고향'의 영향을 받아 간을 빼가는 무서운 요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챈 남편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쓸쓸하게 사라져 간 애절한 사랑 이야기 역시 당시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한'과 '정'이 어울러진 애절한 러브 스토리는 '여우 구슬' 설화을 바탕으로 한 박헌수 감독의 1994년작 '구미호'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됩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취했으나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어 이별을 하게된다는 설정의 구미호는 당대 인기스타인 정우성, 고소영이 출연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천년에 걸친 구미호의 한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80년대 구미호는 얼마나 자신의 한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200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이 제 2의 부흥기를 맞이면서 구미호는 또다시 변신을 하게 됩니다. '나루토', '봉신연의'등의 통해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일본과는 달리 아동 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에서는 구미호를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로 재조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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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작된 서울무비의 '요랑아 요랑아'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작품에는 교활하고 사악한 역의 여우가 아닌 립스틱을 바른 예쁜 소녀이자 귀여운 여우의 모습으로 주인공 요랑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비록 구미호는 아니지만, 요술을 사용해 여우 요랑이에서 소녀 요린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 지상에서 999년을 머물렀으며 천계에 가기위해 전설의 책을 찾는다는 설정등은 기존 구미호 설화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은 방영당시 국내 애니메이션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였으며, '요랑아 노래하자'를 비롯한 여러 시리즈물이 제작되었고 게임등 다양한 멀티 소스로도 활용되었습니다.

2006년에 들어서는 이형곤 감독의 '구미호 가족'을 통해 구미호가 다시금 등장하게 됩니다. 비록 큰 흥행은 거두지 못하였으나, 전통적인 구미호 설화에 뮤지컬과 코메디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2월, 많은 팬들의 기대속에 '천년여우 여우비'가 공개되며 한국애니메이션사에서 구미호의 모습을 새롭게 쓰게 되었습니다.

기존 작품과는 달리 천년여우 여우비에서는 '한'이라는 설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여우비는 인간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소녀로 등장하나, 전통적인 구미호처럼 인간으로 동화하기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관자적인 자세로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춘기 소녀로 역대 구미호중 가장 구미호답지 않은 성격을 갖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구미호가 보여주는 모습은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초창기 한중일 삼국의 구미호 설화가 파괴적인 요괴상으로 시작하였다면, 일본은 소년만화의 인기아해 구미호를 새로운 적으로 등장시켰고, 중국은 구미호를 잊었으며, 한국은 귀여운 동반자이자 친구로서 구미호의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켰습니다.

새로운 구미호 상은 올해 개봉예정인 한현동 원작의 극장판 '신 구미호'에서도 그대로 계승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똑같은 것을 보아왔지만 어느새인가 한국 고유의 이미지로 새롭게 탄생하게된 구미호,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지 새로운 구미호의 탄생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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