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는 어떻게 흥행에 실패하였을까. - 1
2007. 7. 23. 21:51ㆍAnimation/Ani-Review
1997년 고질라가 처음 개봉된다고 하였을때 많은 이들은 이 작품이 블록버스터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1년뒤 영화가 개봉되었을때, 이 영화는 불과 2주만에 세간에서 잊혀진 영화가 되어버렸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최근 D-WAR의 개봉과 더불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고질라'에 대해 알아보자.
1997년 여름, 헐리우드.
1997년의 헐리우드는 블록버스터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96년 '인디펜던스데이'가 10억달러의 흥행실적을 처음으로 갱신한 이래, 헐리우드는 화려한 CG로 무장한 작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 영화사들은 '쥬라기공원', '스피드', '배트맨'등 화려한 CG로 무장한 속편들을 개봉하며 흥행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 믿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은 역대 배트맨 시리즈중 최악의 흥행실적을 기록하였고, '스피드2' 역시 1억4천만 달러를 들여 영화를 제작하였지만 흥행실적은 북미 4860만달러, 세계적으로는 1억 250만달러를 벌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제 관객은 더이상 화려한 CG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을에 접어들며 소니의 '맨인블랙',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등이 흥행에 성공하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타이타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긴 하였지만 모든 영화사들이 그 혜택을 본 것은 아니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늘어나는 마케팅비용은 영화계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였고 그 누구도 다음해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이 다가왔다.
1998년 소니.
소니는 전년도 시즌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전년도 흥행작들은 모두 불신임을 받고 물러난 전 경영진들이 채택한 영화들이었다는 점에서 새로 부임한 '존 캘리'와 그 참모진들은 여전히 그 능력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까탈스러울 정도로 작품 선정에 민감하였다. '소니는 모든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도 될 일까지 너무 열심히 검토하고 정말 유식하게 혹은 너무다 까다롭게 따진다'라는 어느 감독의 말은 당시 소니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
그리하여 마침내 소니는 두가지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고질라'와 '마스크 오브 조로'이다. 고질라는 이미 93년 '캘리 우즈'에 의해 판권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아직 평사원에 불과했던 우즈는 당시 토호 영화사에 있던 고질라의 판권을 가져오기 위해 플로리다로 날아가 당시 최고 경영진이었던 구버에게 고질라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인가를 열렬하게 주장하였고, 그의 주장은 곧 받아들여졌다. 그의 행동은 내부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긴 하였지만 우즈는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당시 그가 영입한 인물은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시나리오를 작업하기도 한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였다. 그들은 원작에 충실하게 고질라가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 괴수를 물리치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시나리오를 제작하였는데 이 시나리오는 곧 악당괴수는 사실 고질라였다라는 설정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한동안 잊혀지다, 캘리의 부임이후 다시금 제작에 착수되기 시작하였다.
감독은 '인디펜던스데이'로 성공을 거둔 데들리 에머리히팀에게 맡겨졌다. 데들리는 이 영화를 '유니버셜 솔져'나 '스타 게이트'와 같은 B급 영화로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경영진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1998년 5월 헐리우드.
시간은 적어도 소니의 편이 아니었다. 개봉일자는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영화의 제작 진행도는 무척이나 더딘 상태였다. 모든 스탭들이 편집에 매달리고 있지만 결코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경영자인 캘리에게 무척이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는 언제나 고질라가 성공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지만, 개봉전날에야 시사회가 가능할 것같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미주법의 60%가 사전 상영계약을 금지한 상태에서 극장주들은 개봉전까지 반드시 영화를 보아야만 했고, 개봉을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내부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소니는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괴수의 발과 무너지는 빌딩, 도망치는 사람들.. 극히 일부분만이 보여진 영상이었지만 영화팬들은 이 작품을 올해 주목할만한 영화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소니의 이러한 신비주의적 전략은 먹혀들어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7년 여름, 헐리우드.
1997년의 헐리우드는 블록버스터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96년 '인디펜던스데이'가 10억달러의 흥행실적을 처음으로 갱신한 이래, 헐리우드는 화려한 CG로 무장한 작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 영화사들은 '쥬라기공원', '스피드', '배트맨'등 화려한 CG로 무장한 속편들을 개봉하며 흥행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 믿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은 역대 배트맨 시리즈중 최악의 흥행실적을 기록하였고, '스피드2' 역시 1억4천만 달러를 들여 영화를 제작하였지만 흥행실적은 북미 4860만달러, 세계적으로는 1억 250만달러를 벌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제 관객은 더이상 화려한 CG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을에 접어들며 소니의 '맨인블랙',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등이 흥행에 성공하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타이타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긴 하였지만 모든 영화사들이 그 혜택을 본 것은 아니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늘어나는 마케팅비용은 영화계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였고 그 누구도 다음해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이 다가왔다.
1998년 소니.
소니는 전년도 시즌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전년도 흥행작들은 모두 불신임을 받고 물러난 전 경영진들이 채택한 영화들이었다는 점에서 새로 부임한 '존 캘리'와 그 참모진들은 여전히 그 능력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까탈스러울 정도로 작품 선정에 민감하였다. '소니는 모든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도 될 일까지 너무 열심히 검토하고 정말 유식하게 혹은 너무다 까다롭게 따진다'라는 어느 감독의 말은 당시 소니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
그리하여 마침내 소니는 두가지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고질라'와 '마스크 오브 조로'이다. 고질라는 이미 93년 '캘리 우즈'에 의해 판권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아직 평사원에 불과했던 우즈는 당시 토호 영화사에 있던 고질라의 판권을 가져오기 위해 플로리다로 날아가 당시 최고 경영진이었던 구버에게 고질라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인가를 열렬하게 주장하였고, 그의 주장은 곧 받아들여졌다. 그의 행동은 내부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긴 하였지만 우즈는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당시 그가 영입한 인물은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시나리오를 작업하기도 한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였다. 그들은 원작에 충실하게 고질라가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 괴수를 물리치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시나리오를 제작하였는데 이 시나리오는 곧 악당괴수는 사실 고질라였다라는 설정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한동안 잊혀지다, 캘리의 부임이후 다시금 제작에 착수되기 시작하였다.
감독은 '인디펜던스데이'로 성공을 거둔 데들리 에머리히팀에게 맡겨졌다. 데들리는 이 영화를 '유니버셜 솔져'나 '스타 게이트'와 같은 B급 영화로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경영진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1998년 5월 헐리우드.
시간은 적어도 소니의 편이 아니었다. 개봉일자는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영화의 제작 진행도는 무척이나 더딘 상태였다. 모든 스탭들이 편집에 매달리고 있지만 결코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경영자인 캘리에게 무척이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는 언제나 고질라가 성공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지만, 개봉전날에야 시사회가 가능할 것같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미주법의 60%가 사전 상영계약을 금지한 상태에서 극장주들은 개봉전까지 반드시 영화를 보아야만 했고, 개봉을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내부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소니는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괴수의 발과 무너지는 빌딩, 도망치는 사람들.. 극히 일부분만이 보여진 영상이었지만 영화팬들은 이 작품을 올해 주목할만한 영화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소니의 이러한 신비주의적 전략은 먹혀들어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2로 계속
- 헐리우드의 영화전략, 2001. 을유문화사, 피터바트 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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