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속 몬스터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2007. 5. 26. 22:32ㆍAnimation/Ani-Review
무더위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극장가에도 또다시 호러바람이 불고있습니다. 한국 귀신이야기의 원조격인 '전설의 고향'을 비롯하여 '데스워터', '메신저 : 죽은 자들의 경고'등 다양한 작품들이 벌써부터 속속 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과연 이 귀신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호러영화속 괴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름모를 살인자에서부터 좀비, 귀신, 에일리언, 돌연변이등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괴물에 맞서는 우리에 주인공들은 대체로 평범하고 소시민들입니다.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수 없는 이들에게 왜 이런 무시무시한 일이 닥치는 것일까요. 그것은 호러영화가 타자에 대한 시선을 가장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시간을 돌려, 어린시절 보았던 영화들을 회상해 봅니다. 제 기억속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라면 '13일밤의 금요일'과 '엑소시스트', 그리고 '오멘'이 기억에 남는군요. '13일밤의 금요일'엔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제이슨의 모습은 하얀 마스크에 진을 입고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괴인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그런 그의 모습은 사실 당대 노동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이미 1931년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그려진 바 있습니다. 제이슨이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노동자들이 이민 노동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제이슨의 음성은 알아들을수 없는 괴성으로 표현되지요. 또한 근육질에 전기톱과 같은 공구들은 당시 노동자들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수단들입니다. 당시 브루조아 계급은 다소 허약한 모습에 안경을 쓴 학자 스타일이 전형적이었고 노동자들은 빈티나는 옷에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청바지가 그들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13일밤의 금요일'은 단순한 호러영화가 아니라, 부르조아 계급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영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멘이나 엑소시스트에서도 다양한 금기가 등장합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맑아야 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여지없이 깨지고 신성시 해야만 하는 그들의 종교는 '데몬'이라는 이교도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이렇듯 호러영화는 기존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비주류의 시각을 몬스터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몬스터를 보는 주인공의 시각은?
영화속 주인공들은 몬스터들을 보았을때, 대체로 두가지 행동을 취합니다. 하나는 죽여 없애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나타나는 공간에서 탈출하여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일종의 '무시'입니다. 국내영화에서는 '한'을 풀어주며 그들을 이해한다는 식의 전개가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서양영화속에 그려지는 몬스터들과 주인공들의 행동이란 대체로 위 두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속 스토리는 현실사회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동성연애자나 장애인, 혹은 그외 사회적으로 융합되지 못한 이들, 즉 타자들을 보았을때 우리는 대체로 그들을 무시합니다. 뭐, 옛날에는 종교전쟁과 같이 죽여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긴 하지만요.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영화속 스토리는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바로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 대해서 말이지요.
해피엔딩은 정말로 해피엔딩일까?
호러영화의 마지막은 대체로 괴물들이 주인공에게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좋아하며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막을 내립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해피엔딩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엔딩이 정말로 행복한 결말일까요? 앞서말하였듯이 호러영화속 괴물들은 그 시대의 비주류들, 즉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타자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 기독교외 종교인, 여성, 어린아이등등.. 그리고 이들을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은 괴물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예를들어 13일밤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이 죽음으로서 브루조아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인들의 저항은 끝을 맺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속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이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속의 배드엔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만 보아왔던 호러영화속에 이런 사회적 메세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실 국내에서 호러영화는 그다지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르입니다. '여고괴담 두번째 시리즈'나 2000년대이후 사다코가 유일하게 안나오는 '알포인트'를 비롯하여 꽤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성공한 작품은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속에서도 호러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들 자체가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는 타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올 여름엔 호러영화 한 편 어떠세요? 1
호러영화속 괴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름모를 살인자에서부터 좀비, 귀신, 에일리언, 돌연변이등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괴물에 맞서는 우리에 주인공들은 대체로 평범하고 소시민들입니다.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수 없는 이들에게 왜 이런 무시무시한 일이 닥치는 것일까요. 그것은 호러영화가 타자에 대한 시선을 가장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시간을 돌려, 어린시절 보았던 영화들을 회상해 봅니다. 제 기억속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라면 '13일밤의 금요일'과 '엑소시스트', 그리고 '오멘'이 기억에 남는군요. '13일밤의 금요일'엔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제이슨의 모습은 하얀 마스크에 진을 입고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괴인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그런 그의 모습은 사실 당대 노동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이미 1931년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그려진 바 있습니다. 제이슨이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노동자들이 이민 노동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제이슨의 음성은 알아들을수 없는 괴성으로 표현되지요. 또한 근육질에 전기톱과 같은 공구들은 당시 노동자들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수단들입니다. 당시 브루조아 계급은 다소 허약한 모습에 안경을 쓴 학자 스타일이 전형적이었고 노동자들은 빈티나는 옷에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청바지가 그들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13일밤의 금요일'은 단순한 호러영화가 아니라, 부르조아 계급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영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멘이나 엑소시스트에서도 다양한 금기가 등장합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맑아야 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여지없이 깨지고 신성시 해야만 하는 그들의 종교는 '데몬'이라는 이교도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이렇듯 호러영화는 기존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비주류의 시각을 몬스터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몬스터를 보는 주인공의 시각은?
영화속 주인공들은 몬스터들을 보았을때, 대체로 두가지 행동을 취합니다. 하나는 죽여 없애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나타나는 공간에서 탈출하여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일종의 '무시'입니다. 국내영화에서는 '한'을 풀어주며 그들을 이해한다는 식의 전개가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서양영화속에 그려지는 몬스터들과 주인공들의 행동이란 대체로 위 두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속 스토리는 현실사회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동성연애자나 장애인, 혹은 그외 사회적으로 융합되지 못한 이들, 즉 타자들을 보았을때 우리는 대체로 그들을 무시합니다. 뭐, 옛날에는 종교전쟁과 같이 죽여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긴 하지만요.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영화속 스토리는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바로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 대해서 말이지요.
해피엔딩은 정말로 해피엔딩일까?
호러영화의 마지막은 대체로 괴물들이 주인공에게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좋아하며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막을 내립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해피엔딩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엔딩이 정말로 행복한 결말일까요? 앞서말하였듯이 호러영화속 괴물들은 그 시대의 비주류들, 즉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타자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 기독교외 종교인, 여성, 어린아이등등.. 그리고 이들을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은 괴물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예를들어 13일밤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이 죽음으로서 브루조아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인들의 저항은 끝을 맺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속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이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속의 배드엔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만 보아왔던 호러영화속에 이런 사회적 메세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실 국내에서 호러영화는 그다지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르입니다. '여고괴담 두번째 시리즈'나 2000년대이후 사다코가 유일하게 안나오는 '알포인트'를 비롯하여 꽤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성공한 작품은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속에서도 호러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들 자체가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는 타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올 여름엔 호러영화 한 편 어떠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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