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세상을 당당하게 살았던, 천방지축 하니.

2006. 9. 27. 18:39Animation/Ani-Review




80년대 한국은 '흑의 역사'라고 할만큼 암울한 시기였다. 군사 쿠테다의 빌미로 시작된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국을 혼란과 폭력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고, 이러한 혼란은 문화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70년대까지 한국의 주류였던 로봇애니, 즉 SF만화영화가 거짓된 환상으로 사회에 혼란을 준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퇴출되었으며, 대신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수많은 스포츠만화가 그 자리를 빠르게 차지하였다. 83년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를 시작으로 야구만화 붐이 일었으며 이어 87년 국내최초의 TV판 작품인 '떠돌이 까치'가 완성되어  이제 극장을 가지않고도 손쉽게 만화영화를 볼 수있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고, 그와 더불어 또하나의 수작이 발표된다. 바로 '달려라 하니(1988)'. 기존의 캐릭터와는 전혀 색다른 모습에 눈물 찡한 감동을 주는 이 작품은 1996년까지 3차례에 걸쳐 지상파 방송으로 재방송되었으며 이후 투니버스등 케이블 TV로도 소개되고 있다. 이후 달려라 하니는 후속작 '천방지축 하니'를 제작해 같은해 방영하였는데, 이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할 작품이다.

기존 달려라 하니보다 더 파격적인 구성, 그리고 국내애니로는 드물게 엔딩에 별도의 가수를 초빙하여 더빙하는등 천방지축 하니는 여러 면에서 타작품과 구별되는 매력이 있다. 과연 어떤점이 매력인지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파격적인 구성
천방지축 하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파격적인 구성이다. 기존 달려라 하니가 엄마를 잃고 계모와 아빠사이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데 반해 천방지축 하니는 아예 엄마와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다. 홍두깨는 엄마와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아저씨일뿐이고. 거기에 홀연히 나타난 하니의 할머니와 홍두깨와의 갈등이 바로 천방지축 하니의 주요 스토리중 하나이다.  이런 파격적인 구성은 84년 '내이름은 독고탁'에서 아버지가 사형수로 나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이미 시도된바 있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어린애는 어른말 잘 듣고,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존재해야하며, 심지어 도둑도 도망가다 경찰이 서라고 하면 서야했던 70년대말과 비교해볼때 상당히 파격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여성상
천방지축 하니의 두번째 특징으로는 기존의 여성상과는 다른 독특한 하니의 모습에 있다. 당시 남자는 씩씩하고 과묵하며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는 철칙(?)에 비해 하니는 남자보다 싸움도 더 잘하고, 축구도 더 잘한다. 숏다리에 공부도 못하며 덜렁거리길 잘하는 말광량이. 이러한 반항적인 하니의 모습은 당시 큰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애니메이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여성상은 기존의 사회에 많은 반발을 일으킨다. 그렇기때문에 하니는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가 될 수 없었고, 같이 싸움을 했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더 많이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이러한 차별은 후에 하니가 체조선수로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연기를 펼치기위한 각성제가 되지만, 동시에 기존의 사회적 관념에 의해 체조선수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시대상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만약 하니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축구선수로서 월드컵 무대에 나서지 않았을까?

숨겨진 스토리들..

하니의 원래 이름이 포니였다가 모자동차 회사의 모델과 겹치는 바람에 허니로, 그리고 다시 하니로 바뀐 사실은 아마 익히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천방지축 하니의 원래 이름이 오소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듯하다. 달려라 하니가 이진주 선생님의 1985년작 달려라 하니의 기반으로 제작된 것과는 달리, 천방지축 하니는 1986년작 천방지축 오소리를 원작으로 하고있다. 그러나 당시 하니의 인기가 많았던 관계로, 애니 제작시에도 하니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관행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기성작가들은 대부분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스토리를 바꾸어가며 연재하던 것이 대부분이었으니..(대본소의 폐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령 이진주 선생님의 하니를 보더라도 모두 27종류나 된다. 그러나 초창기 하니의 경우 전형적인 공주풍 순정만화인데반해, 84년작 하니 동그라미 사랑부터는 비순정만화의 노선을 걷는 등 순정과 비순정을 오가며 제작된 시리즈로는 아마 하니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하니는 어려웠던 시절, 이진주 선생님이 아내인 이보배씨를 본따 그린 인물이자, 두 딸인 이보배, 이진주에게 꾿꾿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담고있다. 그런 하니가 올해로 벌써 31살이 되었다. 이제 어린시절 꼬맹이였던 두 딸들은 어느덧 어여쁜 아가씨가되어 어린시절의 모습은 추억이 되었지만 하니는 영원히 지면상에 남아 그모습 그대로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던 하니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그리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당당했던 13살 어린 소녀는 또다른 희망이 되었다.

P.S] 이진주씨의 인터뷰를 보실려면 상당 갤러리 사이트의 관련기사 - 1998년 9월호 모션기사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