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조금은 아쉬었던 역사교육

2013. 5. 12. 01:21하루 일기/2013 Diary

이번 주 무한도전은 역사교육의 장이었다. '역시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나 보수단체에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데, 정말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을사조약이란 명칭과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바로 그것인데, 생각나는 사안을 몇 자 적어본다.

 

1. 을사조약이 아닌 늑약으로 불러야.

어린 시절 나는 을사조약으로 배웠고, 지금의 학생들 또한 을사조약이란 명칭으로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을사조약이란 말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1905년 일본은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은 문서 한 장을 내밀며 서명을 요구한다. 일본인 도츠카 에쓰로의 저서인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일본 헌병이 외부(外部)에 가서 공인(公印)을 꺼내 왔고, 1905년 11월 17일 일본인의 손에 의해 날인되었다'

이름이 없는 이 문서는 고종의 퇴위와 한일강점에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을사조약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다시말해 을사조약이란 명칭은 후세에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문서가 조약의 조건에 충족되지 않은 문서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조약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위임, 조인, 비준의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고종은 외무대신에게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기는 권한을 준 적이 없으며, 문서에 찍힌 도장은 탈취당해 억지로 찍힌 것이고, 아울러 이 문서는 명칭조차 붙여지지 않은 비공식 문서로 비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조약이란 명칭은 쓰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닐까? 말에는 힘이 있는 법. 합의에 의한 협약이 아닌 강압에 의한 부당한 계약이란 뜻에서 을사늑약을 지지한다.

 

2. 유관순 열사의 영정에 대해.

두 번째 부분은 우리나라 독립열사분들을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사진에서 김구, 안중근, 윤봉길, 그리고 유관순 열사가 사진과 함께 나란히 소개되었는데, 유독 유관순 열사만이 달랐다. 다른 분들은 생전의 고운 모습이 그대로 담긴 반면,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고문을 당해 형태마저 달라진 수감소의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왼쪽부터 이화여당 졸업사진, 수감소 사진, 표준영정]

안타깝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유관순 열사의 수감 전 모습을 찾아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 잘 알고있다.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사진은 이화여당 졸업당시 친우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과 몇 년 전 윤여환 교수님이 새로 제작하신 표준 영정 정도가 희미하게나마 수감 전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아닐까! 한창 꿈많은 시절에 살아가고 싶었던 18세 소녀의 모습을 가장 비참했던 모습으로 공개하는 일은 열사를 다시 한 번 슬픔에 빠트리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