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님에 대해..
2005. 11. 24. 14:47ㆍ하루 일기/2005 Dirary
내일이면 그동안 힘든 일을 겪으셨던 황우석 박사님의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발표내용은 모르지만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연구원들의 난자기증등 갖가지 문제에 대해 모두 이야기 하신다고 한다.
후..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 글을 보는 사람중에는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허나 조금만 생각을 더 깊게 해 보면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연구원의 기증여부가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옛부터 서양 즉 유럽지역의 국가들은 계약관계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사는 영주에서 충성을 계약하고 영토를 얻었으며 장인은 공방이라는 길드(gulid)의 틀안에서 계약에 의해 제자를 받고 기술을 전수해왔다. 그리고 이런한 계약조건은 근대화가 될수록 더욱더 엄밀하게 즉 완전한 "give and take"가 가능해지도록 거듭되어 쇄신되었다.
반면에 동양의 문화는 서양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정신적인 사상. 즉 유가나 도가 혹은 불교사상등에 의해, 무언가의 댓가로 충성을 파는 행위는 무척 수치스러운 행위로 낙인찍혔으며 계약보다는 신의와 마음에 의해 뜻을 합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기술의 전수에 있어서도 대부분 혈연관계를, 즉 가문에 의해 대를 이어 계승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다시말해 동양인에 있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이란, 단순한 계약자와 피계약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한 집안의 어른과 막내아이와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와 같이 뗄레야 뗄수없는 피로 엮어진 깊은 관계였던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와 같은 속담은 이러한 시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게 동양에서의 계약자와 피계약자와의 관계는 단순히 문서상의 계약을 뛰어넘어 여러 종교적인 사상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성장해왔다. 예를들어 일본에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사무라이 정신은 19세기 재창조된 산물이지만 이러한 사무라이 정신이 일반인에게 쉽게 파고들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사무라이 정신이 동양인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윤에 눈이 멀어 주군을 배반하지 말고, 목숨으로 섬기라는 말은 비단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뿐만이 아니라 신라의 화랑도등 동양의 여러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세계대전중 카미카제나 만세돌격과 같은 다소 광기에 휩싸인 부작용도 나타났지만, 전후 일본은 이 사무라이 정신을 다시 활용하여 토요타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을 세계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을수 있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안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였을까?
여기에는 바로 회사에 충성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매일 2~3시간씩 잔업을 하라고 한다면 서양인의 경우 불평등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클레임을 걸지만 동양인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충분히 감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30년뒤 다시 한국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2005년. 아직도 이러한 문화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애초 연구원들의 난자기증 뉴스는 연구원에게서부터 흘러나왔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일이 미담일뿐 문제가 되지 않았기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꼬이고 꼬여, 황우석 교수를 압박하고 있다. 연구원은 연구의 완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교수는 이러한 연구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보다는 거짓을 선택하는 것. 비록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동양이라면 어쩔수없이 일어날수 밖에 없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분명 결론적으로 약속과 신의를 어겼으니 이는 사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것이 모든 부분에 있어 잘못이었다라고 확대해석하는 오류는 범해서는 안된다. 비록 계약자간의 사이라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않고 무언가의 희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이 것이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동양적인 문화를 서구인에게 어떻게 인식시킬지 그것이 과제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더욱더 이러한 마찰은 심해지는바, 이에대한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후..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 글을 보는 사람중에는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허나 조금만 생각을 더 깊게 해 보면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연구원의 기증여부가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옛부터 서양 즉 유럽지역의 국가들은 계약관계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사는 영주에서 충성을 계약하고 영토를 얻었으며 장인은 공방이라는 길드(gulid)의 틀안에서 계약에 의해 제자를 받고 기술을 전수해왔다. 그리고 이런한 계약조건은 근대화가 될수록 더욱더 엄밀하게 즉 완전한 "give and take"가 가능해지도록 거듭되어 쇄신되었다.
반면에 동양의 문화는 서양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정신적인 사상. 즉 유가나 도가 혹은 불교사상등에 의해, 무언가의 댓가로 충성을 파는 행위는 무척 수치스러운 행위로 낙인찍혔으며 계약보다는 신의와 마음에 의해 뜻을 합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기술의 전수에 있어서도 대부분 혈연관계를, 즉 가문에 의해 대를 이어 계승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다시말해 동양인에 있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이란, 단순한 계약자와 피계약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한 집안의 어른과 막내아이와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와 같이 뗄레야 뗄수없는 피로 엮어진 깊은 관계였던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와 같은 속담은 이러한 시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게 동양에서의 계약자와 피계약자와의 관계는 단순히 문서상의 계약을 뛰어넘어 여러 종교적인 사상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성장해왔다. 예를들어 일본에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사무라이 정신은 19세기 재창조된 산물이지만 이러한 사무라이 정신이 일반인에게 쉽게 파고들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사무라이 정신이 동양인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윤에 눈이 멀어 주군을 배반하지 말고, 목숨으로 섬기라는 말은 비단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뿐만이 아니라 신라의 화랑도등 동양의 여러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세계대전중 카미카제나 만세돌격과 같은 다소 광기에 휩싸인 부작용도 나타났지만, 전후 일본은 이 사무라이 정신을 다시 활용하여 토요타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을 세계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을수 있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안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였을까?
여기에는 바로 회사에 충성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매일 2~3시간씩 잔업을 하라고 한다면 서양인의 경우 불평등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클레임을 걸지만 동양인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충분히 감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30년뒤 다시 한국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2005년. 아직도 이러한 문화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애초 연구원들의 난자기증 뉴스는 연구원에게서부터 흘러나왔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일이 미담일뿐 문제가 되지 않았기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꼬이고 꼬여, 황우석 교수를 압박하고 있다. 연구원은 연구의 완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교수는 이러한 연구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보다는 거짓을 선택하는 것. 비록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동양이라면 어쩔수없이 일어날수 밖에 없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분명 결론적으로 약속과 신의를 어겼으니 이는 사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것이 모든 부분에 있어 잘못이었다라고 확대해석하는 오류는 범해서는 안된다. 비록 계약자간의 사이라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않고 무언가의 희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이 것이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동양적인 문화를 서구인에게 어떻게 인식시킬지 그것이 과제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더욱더 이러한 마찰은 심해지는바, 이에대한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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