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전쟁엔 조선의 마음이 없다.
2011. 11. 12. 23:31ㆍIssue/Society
이르면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에 임진전쟁이란 단어가 등장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5.18 민주화 운동도 삭제하더니, 갈수록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닌 일본 교과서가 되는 느낌에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때 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투표했어야 했는데.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꾸자.'는 말에 한마디로 답하자면 반대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온전히 그 역사를 계승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기술되어야만 한다.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꾸어야 된다는 주장은 과거에도 몇 차례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친일파는 살아있다'의 저자인 정운현 학자는 당시 임진왜란은 7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양측의 피해가 막심한 전쟁으로 '명량해전(海戰)', '노량해전'과 같은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 임진조일전쟁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주장하였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할 국민들의 합의 없이 임의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개명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고 본다. 아울러 하나의 단어에는 그 단어를 정의하는 정량적인 평가(요컨대 명량해전이 사용되었으니 임진전쟁이라 호칭해야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정성적인 평가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당시 조선 정부의 인식은 일본을 조선과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았으며, 해적질을 하는 왜구를 마치 산적처럼 국내에서 해결해야할 하나의 내부문제로 보았다. 그리고 왜구들의 규모에 따라 란(亂, 어지러울 란)과 변(變, 움직일 변)을 사용하여 침략사실을 보고하였다. 삼포왜란(1510년), 사량진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592년 발생한 임진왜란도 이와 같은 맥락을 이어간다. 당시 조선 왕실은 이것을 외부와의 전쟁이 아닌 내부적인 국내 문제로 보고 있었고, 그것은 조선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보면 왜구를 환영하였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이는 왜구를 외국의 침략세력이 아니라 국내에 영향력을 가지는 내부세력이라 인식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임진왜란이란 명칭은 이번 분쟁이 '전쟁이 아닌 단순한 내부적인 국내문제일 뿐이며, 이전 왜란과 같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라는 관점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비록 그 피해는 막심했을지라도 말이다.
만약 내 추측이 옳다면, 비록 동아시아사 교과서라 할지라도 임진왜란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단순히 하나의 사건만 보자면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임진왜란은 오랜 세월을 거쳐 당시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에 대한 인식과 사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인식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사건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꼴이다. 진정한 아시아 역사에 대한 교류는 자국의 역사를 먼저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차이점을 알아가는 것은 그 이후에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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