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2009. 8. 24. 23:56ㆍIssue/Book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어제,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이 많은 이들의 슬픔 속에 열렸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공안정국, 독재정권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터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저의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런 흔들리는 마음에 위안을 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자서전조차 남기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버린 노 전 대통령의 역사가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나마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합니다. 서적은 정권 이양을 얼마 앞두고, 3일간에 걸쳐 노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오마이 뉴스의 오연호 대표 기자의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이 슬프지만, 동시에 그분이 남긴 마지막 희망을 이제는 들어보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오고, 바랬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연히 대통령이 되다.
'대통령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노 전 대통령의 너무나도 솔직한 답변은 그 의미를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심지어 자신의 승리가 우연이었다고 치부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같은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그럴듯한 답변을 기대한 저에게 실망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솔직한 대통령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적어도 국민을 속이려 들지 않는 모습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의 솔직함은 때론 바보처럼 비추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정치인의 길을 택했던 그는 지역구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선거를 진행하지만, 매번 낙선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낙선을 당하고도 출마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라는 첫 번째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바보 노무현은 비겁하고 자기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을 혐오하였습니다.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인제에 반대하여, 그가 대선후보로 나온 첫 번째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연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처럼, 우연인지 몰라도 바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됩니다. 대권의 야욕이 없었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요? 저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고 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기에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노무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패를 인정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은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패배라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패배라는 말은 정치적 오점으로 남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한 것이라도 그들의 입에서 '실수하였다.', '패배를 인정한다.'라는 말을 듣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대연정을 비롯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기는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남아있었을 때인데, 그럼에도 패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처음에는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대연정 당시 많은 국민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유도 바로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한 인상 때문이었는데, 정권 마지막에도 바뀌지 않은 그의 모습은 분노를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에 이렇게 답합니다. '패배와 패배주의는 다르다. 정치인은 누구나 패배를 할 수 있고, 문제는 그러한 패배라는 상황을 앞두었을 때, 얼마나 현실을 직시하는가.' 이다.
대통령의 답변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패배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패배에 대한 조건이 성립되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더군요. 현실은 나를 배제하고도 존재할 수 있기에 현실입니다. 즉 현실적으로 패배하였다면 그 현실은 바뀌지 않는 진실이며, 이러한 진실을 대하였을 때, 어떻게 대비하는가는 그 사람의 능력입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며...
그간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일종의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고 출신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홀로 독학하며 마침내 대통령이 된 최고의 엘리트. 하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대통령이었을 때나, 그 이전이나 전혀 변함없이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서민 노무현, 바보 노무현의 모습이었습니다. 죽어서야 그 분의 본심을 알게 되다니 정말 저는 바보인가 봅니다. 예, 저는 바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보이기에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존경합니다.
'Issue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지식들... 통장관리 어떻게 하시나요? (0) | 2009.10.30 |
---|---|
노무현, 오바마, 링컨 그리고 이명박. (0) | 2009.08.31 |
꿈꾸는 인형이 현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꿈꾸는 인형의 집' (0) | 2009.07.14 |
해리포터와 드래곤 라자, 그 성공에 대한 이야기 (10) | 2009.06.24 |
현대를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탐욕스런 이야기,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 (2) | 2009.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