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관리자를 위한 이상적인 등산법

2009. 2. 26. 17:13하루 일기/2009 Diary

B : A군, 만약 자네에게 누군가 산에 올라가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A : 산.. 말입니까?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 올라가라면 올라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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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그런데 이 산은 말이야, 정상은 있는데 그 정상까지 올라가는 등산로가 없는 산일세. 그리고 시간 제한도 있지. 그럼, 자네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하겠나.


A : 음... 등산로가 없어도, 일단 올라가야 되니까, 대충 산을 1/n 정도로 나누고 시간을 정해서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요.

B : 물론 그런 방법도 있지. 하지만 나라면 이렇게 할 걸세. 내가 먼저 산에 올라가야 된다면 일단 산 정상을 한동안 쭉 바라볼걸세. 그리고 상상을 하는거지. 내가 이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쾌감을 말이야. 그리고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음 입구에 있는 게시판을 볼 걸세.

A : 게시판을 말입니까?

B : 그래, 게시판일세. 아무리 등산로가 없는 산이라도, 이 산의 해발고도가 몇 미터인지, 위험한 산짐승이 있는지 없는지 꽤 많은 데이터가 게시판에 기록되어 있지. 몇 줄 안되는 내용이라도 정말 중요한 것들이거든.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간혹 저 산을 올라갔거나 혹은 바로 옆에 봉우리를 정복하려고 준비하는 등산객들이 보일걸세.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A : 뭐,,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거니까 일단은 물어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B : 그 말이 정답일세. 하지만 등산객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된다네. 가끔 등산로를 물어보는데, '저 산에는 100년전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전설이 어쩌구저쩌구..'하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지. 그럴땐 '아, 예 감사합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음에 빠져나오는게 상책일세.

그리고 등산객들은 허풍을 떨기 좋아한다는 사실 알고는 있나? 말을 할 때, 그들의 얼굴을 주목하게. 그들이 말하고 있는 산과 길에 대한 정보가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도 바로 자네의 몫일세.

A : 얼굴말입니까.. 관상에는 통 관심이 없는데 이거, 주의해야 겠군요.

B : 그래, 반드시 주의해야 된다네. 그들의 말만 믿고 산에 오르다간 잘못해서 실종처리 신고를 내가 해야될지도 모른단 말일세. 그건 정말 귀찮은 일이지. 아, 물론 운이 좋다면 관리인을 만날수도 있겠군.

A : 관리인 말입니까? 그 산을 관리하는 관리인?

B : 산에 관리인이 그 사람말고 또 있나. 아무튼 관리인은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하지. 그들은 항상 묻는말에 '게시판에 다 나와있으니 읽어보세요, '라는 말밖에 모르거든. 산에 대해선 전문가이면서 하루종일 TV앞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답을 구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세.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A : 음... 올라가는 등산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어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해볼수도 있고, 정 안되면 그 선임자를 불러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B : 틀렸네, 틀렸어. 그들은 눈 하나도 꼼짝하지 않을걸세. 다른 방법은 없나?

A : 이거 정말 생각이 안나는데.. 아, 역시 그들과 친해지면 정보를 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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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농담을 따먹으며 그들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우린 오늘 꼭 산에 올라가야 된단 말일세. 언제까지 농담을 따먹으며, 기다려야 된단 말인가. 답은 초콜릿일세.


A : 초... 초콜릿이요?

B : 그래, 검고 딱딱하며 약간은 단맛이 나는 바로 그 것 말일세. 관리인들은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거든. 그러니 은근슬쩍 초콜릿을 내밀며 묻고싶은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A :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데이터와 정보를 구분하고, 필요한 정보에 댓가를 지불하는 것. 꼭 명심해 두겠습니다.

B : 자넨 생각이 너무 딱딱해서 탈이야. 자. 이젠 대충 정보를 모았으니 계획을 짤 시간일세. 오늘 우리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9시간이 주어졌다네. 6시 이후엔 모두 퇴근해야되니, 시간이 없단 말이지. 자네라면 계획을 짜는데 몇 분이나 걸리겠는가?

A : 뭐, 들은 내용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걸로 계획을 짠다면 한, 두시간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저라면 10시나 11시쯤이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 : 그런가, 썩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나라면 오후 1시나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을걸세.

A : 그렇게 늦게 말입니까? 너무 늦으면 올라가기 힘들텐데요.

B : 이보게, A군. 계획이란 단순히 글자 몇줄 쓰는 일이 전부가 아닐세. 난 이걸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고 있지.

A : 시뮬레이션이 무엇입니까?

B : 예를들어, 저기 툭 튀어나온 암벽 부분이 보이나. 나라면 저 암벽을 두고 우회해서 갈 것인지, 올라갈 것인지 미리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볼 것일세.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과 필요한 장비를 찾아내는 것이지. 만약 암벽에 오르기로 결정하면 밧줄이 필요한데, 그걸 암벽에 도착해서야 알아차린다면 너무 늦은 일이거든.

암벽 아래의 갈대밭이나, 위쪽의 넝쿨밭도 마찬가지일세. 미리 한 번 올라가며,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상상해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찾는 것, 그것을 난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고 있지.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갖추어져 있다면, 현실속의 등산은 오히려 쉬운 일이라네.

A : 군대에서의 제 선임병도 항상 두 수 앞을 먼저 보고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는데, 그 말이 그 뜻이었군요. 그렇다면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위해선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됩니까?

B : 그거야, 맡은 일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일이지. 자네같은 전산학도라면 코드 레벨에서의 시뮬레이션이 적합하지만, 모든 이가 다 동등한 기준을 가진 것은 아니라네. 이 부분은 자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될 걸세.

A : 그렇군요. 이제 산에 다 올라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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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아니지, 시뮬레이션을 했으면 이제 그에 맞추어 계획을 짜야 된다네. 아, 계획은 초등학생 시간표처럼 꼼꼼하게 짜지말고 넉넉하게 시간을 두게. 이 세상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거든.


A : 예외처리를 위한 시간을 두라는 뜻이군요. 확실히 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죠.

B : 자네도 이제 똑똑해 졌구만. 이제 남은 일은 계획에 맞추어 산에 오르고, 정상에 서면 내려오기위한 마무리 작업을 하면 끝일세. 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 일세. 이제 한 번 올라가 보게나.


프로젝트 진행에 관한 이야기의 한 토막. 선배의 말에 의하면 프로젝트는 '임무의 이해 - 정보의 습득( data와 information의 분류 ) - 시뮬레이션 - 계획 - 작업 - 마무리'로 구성된다고 한다. 즉 분류한 정보를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벽한 계획을 짠 다음, 마치 플로어 챠트처럼 예외처리가 구현된 계획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프로젝트 목표가 달성된다는 소리. 그동안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서는 막막하기만 하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감을 잡게 되었다. 이제 실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