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스승님.
2008. 5. 15. 19:22ㆍ하루 일기/2008 Diary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에 선 오늘이지만, 여전히 스승의 날은 그리운 옛 스승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의 날입니다. 코흘리개 국민학교 시절을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였던 스승님들. 이제는 이름마저 잊고 희미한 추억만이 가슴속에 남아있지만 여전히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옵니다.
억속 가장 기억이 남는 스승님이 계시다면 중학교 2학년 시절 만난 김미현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엄숙한 분위기가 몸에 배인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학생들과 어울리며 늘 곁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셨던 선생님.
등산을 좋아하셔서 주말이면 함께 관악산에 놀러가기도 하고, 방학 중에는 지리산 등정을 하며 친구들과 계곡에서 놀았던 기억도 생각납니다. 선생님이기보다는 자상한 누나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반에서 논다하는 학생들도 선생님 앞에선 아기 고양이처럼 온순해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들어서도 멋진 선생님들의 모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수업시작 종과 함께 들어오셔서 숙제로 내준 한자를 다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를 드셨던 한자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버벅거리며 연극을 한다고 연극표 살 사람 없냐고 물었을 때에는 모두 다 웃음을 터트렸답니다. 그 때 제가 제일 먼저 손을 들어 표를 사 갔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 외에도 이상하게 수입시간이면 눈이 또랑또랑하게 집중이 잘 되는데 정작 시험만 보면 죽을 써서 얼굴 볼 낯이 없었던 화학 선생님, 공군 소령으로 전역하여 교단에 오른 박영철 수학 선생님등..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련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암웨이 사건은 스승님을 더욱 존경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처음으로 봉사활동 점수제가 도입되어 저희도 점수를 받기위해 구청에서 주관하는 한강 환경정화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해당 구에 있는 모든 중고등학교가 모인 자리였는데, 마지막으로 구청장의 연설만이 남아있었습니다. 한낮에 다소 무더운 날씨가 아이들은 빨리 연설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죠.
그런데 강단에 올라선 구청장이 갑자기 ‘잠신 고등학교 왜 이렇게 떠드냐’라고 말하며 저희 학교를 트집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줄이 삐뚤어졌다는등 지금 들으면 무척 유치한 말이지만, 당시엔 어린 가슴에 분노의 불길이 뭉클뭉클 솟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저희 학교의 위치는 연단의 맨 끝부분이라 상식적으로 도저히 강단위에 있는 사람이 볼만한 위치가 아닌데, 연설 내내 저희 학교에 대해 트집을 잡으니 그 때의 기분이란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혼란스러웠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다 모으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분한 마음에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예!’라고 대답하였는데, 선생님께선 약하게 한 숨을 쉬시더니 끝까지 행사를 마무리 짓고 아이들에게 활동증명서를 안겨주셨습니다. 당시 전 그런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 행사는 환경오염 업체로 낙인찍힌 ‘암웨이’에서 주관한 행사였으며, 저희 학교 선생님들께선 암웨이가 준 사은품들을 거부해서 구청장에게 미움을 샀다고 하네요. 타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사은품을 받았지만, 환경정화 행사에 환경 오염의 주범인 회사의 제품은 받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고 끝까지 거부하신 우리 선생님들.
즘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귀를 잡아끌며 경찰에게로 학생들을 데려가는 일부 몰지각한 선생님들을 보면, 그 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새삼 뿌듯해 집니다. 그 때, 그 시절 비록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저희들은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인생에 있어 학창시절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결코 돌아오지 않는 그 때 그 시절, 추억 속 스승님을 그리며 오늘 하루, 스승의 날을 보내어 봅니다. 스승님, 건강하세요.
내가 만난 스승님들
억속 가장 기억이 남는 스승님이 계시다면 중학교 2학년 시절 만난 김미현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엄숙한 분위기가 몸에 배인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학생들과 어울리며 늘 곁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셨던 선생님.
등산을 좋아하셔서 주말이면 함께 관악산에 놀러가기도 하고, 방학 중에는 지리산 등정을 하며 친구들과 계곡에서 놀았던 기억도 생각납니다. 선생님이기보다는 자상한 누나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반에서 논다하는 학생들도 선생님 앞에선 아기 고양이처럼 온순해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들어서도 멋진 선생님들의 모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수업시작 종과 함께 들어오셔서 숙제로 내준 한자를 다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를 드셨던 한자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버벅거리며 연극을 한다고 연극표 살 사람 없냐고 물었을 때에는 모두 다 웃음을 터트렸답니다. 그 때 제가 제일 먼저 손을 들어 표를 사 갔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 외에도 이상하게 수입시간이면 눈이 또랑또랑하게 집중이 잘 되는데 정작 시험만 보면 죽을 써서 얼굴 볼 낯이 없었던 화학 선생님, 공군 소령으로 전역하여 교단에 오른 박영철 수학 선생님등..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련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암웨이 사건은 스승님을 더욱 존경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처음으로 봉사활동 점수제가 도입되어 저희도 점수를 받기위해 구청에서 주관하는 한강 환경정화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해당 구에 있는 모든 중고등학교가 모인 자리였는데, 마지막으로 구청장의 연설만이 남아있었습니다. 한낮에 다소 무더운 날씨가 아이들은 빨리 연설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죠.
그런데 강단에 올라선 구청장이 갑자기 ‘잠신 고등학교 왜 이렇게 떠드냐’라고 말하며 저희 학교를 트집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줄이 삐뚤어졌다는등 지금 들으면 무척 유치한 말이지만, 당시엔 어린 가슴에 분노의 불길이 뭉클뭉클 솟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저희 학교의 위치는 연단의 맨 끝부분이라 상식적으로 도저히 강단위에 있는 사람이 볼만한 위치가 아닌데, 연설 내내 저희 학교에 대해 트집을 잡으니 그 때의 기분이란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혼란스러웠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다 모으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아, 우리 그냥 집에 갈까?"
분한 마음에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예!’라고 대답하였는데, 선생님께선 약하게 한 숨을 쉬시더니 끝까지 행사를 마무리 짓고 아이들에게 활동증명서를 안겨주셨습니다. 당시 전 그런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 행사는 환경오염 업체로 낙인찍힌 ‘암웨이’에서 주관한 행사였으며, 저희 학교 선생님들께선 암웨이가 준 사은품들을 거부해서 구청장에게 미움을 샀다고 하네요. 타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사은품을 받았지만, 환경정화 행사에 환경 오염의 주범인 회사의 제품은 받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고 끝까지 거부하신 우리 선생님들.
즘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귀를 잡아끌며 경찰에게로 학생들을 데려가는 일부 몰지각한 선생님들을 보면, 그 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새삼 뿌듯해 집니다. 그 때, 그 시절 비록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저희들은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인생에 있어 학창시절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결코 돌아오지 않는 그 때 그 시절, 추억 속 스승님을 그리며 오늘 하루, 스승의 날을 보내어 봅니다. 스승님, 건강하세요.
'하루 일기 > 2008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중한 벗에 대한 추억 보고서. (0) | 2008.05.20 |
---|---|
실망스러웠던 명함 케이스 구입기. (2) | 2008.05.15 |
촛불 집회를 기약하며.. (4) | 2008.05.06 |
봄날의 개구리. 백운산에서 만나다. (4) | 2008.04.26 |
이 기사, 조금만 더 일찍 전해졌더라면.. (2) | 200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