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체임버, 그 영혼과 울림의 경계면에서..

2008. 5. 14. 14:41Issu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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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전쟁사에 있어 가장 큰 혁명은 총의 등장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인류 문명에 있어 가장 큰 혁명은 무엇일까? 각기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단연코 사진의 등장이라 말하고 싶다. 글 솜씨가 없어 좌절하는 이들도,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이들도 간단한 조작만으로 무언가 그럴듯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혁명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 그 인상이 달라지니, 사진의 진정한 매력이란 바로 이러한 의외성을 들 수 있다.

박노아씨의 포토 에세이집, ‘에코 체임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사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2년간의 여정이라 불리는 이 흑백의 단조로운 일상은 선명한 칼라톤으로 찌든 나의 눈을 분명 만족시킬 수 없었으리라.

두 번째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의 사진이 빛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진속 세상은 단순히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세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지하게 빛과 어둠의 경계면에서 고민하며 나아가려 하는 방랑가의 흔적을 그의 사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커피

시간은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린다.
특히 열은 더욱 그러하다.

커피를 아주 팔팔 끓여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커피가 얼마나 빨리 식어 버리는지 아는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식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찬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

열을 잃은 커피는 버려지거나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 뜨거워진다.

차가운 커피를 볼 때마다 당신의 식어 버린 심장을 기억하라.


단순한 커피 한 잔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과 번뇌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새 사진속 인물들의 삶속으로 투영되어 들어간다. 영혼의 울림이 있는 상자, 에코 체임버. 그 속에 그려진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다양한 울림은 작가에게 전해서 이윽고 작가의 울림이 된다. 작가는 그들 한 명 한 명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영혼의 울림속에 담긴 타인의 삶에 주목한다.

삶은 항상 끝없는 행복의 연장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매우 빈곤하고 어두우며, 다소 절망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사진속 모습이 슬퍼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둠에 순응하면서도 감내할 줄 아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한 컷의 사진처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지는 영원의 지평선이며 언젠가 그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영혼의 울림을 느낀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울림이 있는 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에코 체임버, 그와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에코 체임버 - 당신이 있는 방, 박노아의 포토에세이 11  박노아 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