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가 해적판을?! FSS를 둘러싼 공방.

2007. 5. 15. 15:13Animation/Ani-News

마전 도라에몽 동인지가 너무 많이 팔려 원저작권자에게 고소를 당한 사건을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사건이 국내에서도 발생하여 팬들간의 공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나가노 마모루씨의 원작 파이브스타 스토리(이하 FSS)의 국내판 번역자인 김모님(이글루 닉네임 천조제)이 얼마전 FSS의 설정집인 '해체신서'(원제 : F.S.S. DESIGNS 1 EASTER;A.K.D)를 무단으로 번역하여 판매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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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포함된 일부 내용은 실루엣으로 처리되었지만, 주요 내용이나 세밀한 디테일은 원본 책의 소스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랜덤으로 들어간 카드에는 '2권이 제작되면 드린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어 역자는 지속적으로 불법 라이센스판을 제조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사건은 국내 정식번역자가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 라이센스판을 만들어 판매하였다는 사실부터가 다소 충격적입니다. 이전에 소설 '개미'의 번역자인 이세옥씨의 인터뷰를 보고 번역자가 자신이 번역한 작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는가를 알게되었는데, 자신이 번역한 작품을 해적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도의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부분인 듯합니다.

한 이번 불법 라이센스판을 제작하면서 약 720만원 상당의 이윤을 추구하였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되고있습니다. 제작된 불법 라이센스판은 권당 2만원에 약 380부가 제작되어 이글루를 중심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그간 동인계에서 기존의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동인지들이 제작되어왔고 일본 현지에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예비주자들이다라는 인식하에 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도라에몽 동인지 사건에서 보이듯이 과도한 상업적 이윤의 취득은 언제든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역자로 일하셨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블로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번역자가 만화책을 한 권 번역하면 약 20에서 30여만원정도의 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작된 불법 라이센스판의 경우, 자재비등을 제외하더라도 순이익으로만 3~400만원 정도의 수익이 예상된다고 하네요. 일반적인 번역자 한달 월급의 약 3~4배 수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제작된 책이 단순한 팬으로서의 동인지가 아닌 불법적인 이윤획득을 위한 해적판이다는 사실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습니다.

재 사건 당사자인 천조제님의 블로그는 임시 폐점한 상태이며 나가노씨의 답변 이후에 추가 공지를 내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그러나 나가노씨가 입장을 표명한다 하더라도 일본내 라이센스 업체나 국내에 번역판을 출간하고 있는 서울문화사를 비롯한 국내 라이센스 업체간의 협상이 아직 남아있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듯합니다.

다만 사건을 두고, 팬들사이에서는 원본 그림이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새로 레이아웃을 구성하는등 해적판이 아닌 동인지로 보아야된다는 입장과 허가없이 원작자의 그림을 무단 인용한 것이므로 불법 해적판으로 보아야된다는 팬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사건을 단순한 동인지가 아닌 불법 라이센스판으로 역자가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벌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저작권을 가진 나가노씨에게 달려있지만, 최근 발전하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추세를 볼때, 동인계에도 적절한 룰이 시급히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번 사건을 통해 책을 접한 많은 국내 FSS팬들이 좋은 시간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일부 서점에서는 일본판 해체신서의 판매량이 늘어나는등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수입국인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다소 특별한 상황이고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을시 대다수의 원작자는 손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손해를 창작의욕을 떨어트리고 국내 문화산업을 황폐화시키는 역활을 합니다. 지금 국내 웹하드 업체들을 통해 불법적으로 스캔, 배포되는 만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추후 사건의 귀추에 이목을 모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