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교수, 10년전 그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2007. 1. 18. 02:54Issue/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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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 발생한 김교수의 석궁 발사사건으로 사법계가 일파만파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사건을 담당하였던 이정렬 판사는 "이번 판결의 기본 구도는 학자적 양심이 있으나 교육자적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의 재임용 탈락에 대한 적법성 여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17일자 쿠키뉴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즉 사법부는 김교수가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므로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수 없었다. 96년 해고이후, 김교수는 학점에는 포함되지 않는 무료강의를 수차례에 걸쳐 열었으며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해당 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있다. 과연 김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면 그러한 교수의 수업을 듣기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든 학생은 과연 무엇일까. 10년전 김교수는 과연 어떤 수업을 하였는지 알아보았다.

  아래 영상은 1995년 6월 29일, 당시 과대표였던 유구영씨와의 대화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녹음 상태가 다소 불량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 필자는 김명호 교수가 기존 교육방책과는 다른 여러 방안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화내용과 당시 문제가 되었던 사안들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졸업생들은 김교수가 F학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반응은 과대표와의 면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김교수의 교육방침은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1996년 2월, 김교수의 해임이후 졸업생들은 '
김 명호 교수의 징계를 반대하는 학생들 일동'이라는 제목으로 탄원서를 작성한다. 졸업생 70여명중 30여명이 참여한 이 탄원서에는 '학생들이 요행으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제일 경계했으며, 학생들의 비난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주 퀴즈를 보고 그것을 성적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라고 말하며 김교수의 성적평가및 교육방침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96년 3월 11일자 성대교수협의회 소식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소식지에 의하면 김교수는 정규 시험외에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퀴즈와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수업방식은 최근 대학에서 행해지는 전형적인 수업방식이다. 그런데 김명호 교수는 이미 5년전에 이같은 수업방식을 먼저 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성균관대에선 아무도 시행하지 않았던 방식이라고하여, 그의 교육적 능력을 폄훼하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미 수천개의 전국 대학들이 그의 수업방식을 따라하고 있다.


백지사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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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의 자질 부족으로 제기되는 문제중에는 백지사건과 체육특기생 학점 거부사건이 있다. '체육특기생 학점 거부사건'은 지난 95년 12월, 출석일수가 모자란 체육 특기생 30여명에게 학교측이 학점을 주라고 공문을 보냈으나 출석일수 미달인 학생에게 점수를 줄 수 없다고 김교수측이 거부한 사건이다.

그리고 백지사건은 4학년이라도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에게는 F학점을 줄 수 있다는 김교수의 발언에 대해 졸업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일부 학생들이 단체로 시험지를 백지로 낸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에 대해 1월 17일자 쿠키뉴스는 이정렬 판사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판사는 "교육자적 자질을 따지는 심리과정에서 원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보복을 당하였다는 점뿐이었다. 당시 학과장이나 학생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할 때 원고는 반대 신문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은 `전문지식을 가르칠 뿐이지 가정교육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는 진술까지 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체육특기생 사건의 경우, 학칙 제35조에 의거한 정당한 사유였으며, 학점의 경우 교수의 고유권한으로서 학생들은 이에 관여할 권리가 없는 사안이다. 그것이 설사 졸업생이라고해도 말이다. 게다가 김교수는 학생들이 백지를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위해 재시험을 치루는등 여러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2006년 10월 31일 진행된 공판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박홍우 판사 : "30명 정도가 학기말 시험에서 백지를 냈는데, 증인은 당시의 학과장으로서 문제해결을 위하여 $2"

정봉화 교수 : "5명 F를 준다고 공언하고 학생들이 싫어해서...(원고를 불러서 물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김명호 교수  : "반면에 저는 그에 대한 노력을 했습니다. 원칙을 지켜야 했지만, 29명의 4학년 학생들이 졸업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더욱이 (내용을 잘모르는)학생들이 교수들간의 불화에 휘쓸리는 것이 우려되어 무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먼저 아까 정봉화 교수님이 당시의 과대표가 김성욱이라고 했는데. 당시의 과대표는 유구영이었습니다. 그 유구영 과대표를 포함한 학생들과 면담(위 영상 참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시험 기회를 2번 주었고, 그 증거로 전에 백지 답안지들과 함께 제출한 답안지 중 2명의 재시험 답안지가 있습니다. 그래도 시험을 안 본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성적을 기초로 하여 C, D로 주었으나 학생들이 거부하여 F를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증거는 피고 측이 제출한 성적기록표에(을 제11호증의 9) 보면, C, D로 주었다가 F로 고친 흔적이 있습니다." (이 때, 이정렬 판사가 박홍우 재판장에게 C, D로 주었다가 F로 고친 흔적이 있는 성적기록표를 보여준다.)

박: "원고는 5명 F를 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김: "없습니다. 단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4학년이라고 무조건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만 했습니다."

박: "원고는 학생들을 잘못 교육시킨 것라고 생각이 없나요?

김: "대학은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 가정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저의 죄라면 원칙을 지킨 죄 밖에 없습니다." - 김명호 교수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같은 공판 내용에 비추어 볼때, 김교수의 교육자적 능력은 충분하며 동시에 학생들을 배려하는 교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바로 학생들이 인정하고 있다. 아래는 96년 사건당시 학생들의 징계 반대 서한중 일부이다. 탄원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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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평가는 교수의 고유권한입니다. 공부를 하는만큼 받아야 하는 것이 성적입니다. 성실히 노력한 사람은 좋은 성적을, 게으른 사람은 낮은 성적을 얻는 것이오 그 정도가 과히 못미친 사람은 낙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확실한 기준에 근거하여 엄정하게 성적을 평가한다면 누구든지 그것을 수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명호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했던 저희들로서는 선생님의 성적 평가 방식이 타당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반대 서한을 보면 백지사건 당시 위상수학 I을 들은 학생들도(주: 남동오, 김남식, 임상아 등)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역시 김교수의 방식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교육자적 자질은 학생들도 인정하는 매우 선진적인 방식이었으며, 권위에는 의존하지 않으나 학칙에는 부합하는 성실한 교육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같은 김교수의 능력을 단순히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김명호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그분이 지난 10년간 고군분투하며 투쟁을 벌였던 역사(링크 삭제됨)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록중에는 박홍주 판사의 부당함을 성토하는 내용또한 포함되어 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법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법일뿐 법관이나 사법부가 아니다.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더이상 애꿏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법원의 각성을 촉구한다.

p.s]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김명호 교수의 제자이자,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중에 한 분이신 김남식씨의 관련글이 등재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페이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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