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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History

조선이 그렇게 무능한 국가였을까?

이 글은 프로메테우스님의 '황실복원 장난하냐'에 대한 반박글입니다. 글을 읽기전에 먼저 원문을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얼마전 황실복원에 대한 뉴스가 나가면서 이에 대한 여러 토론이 있었다. 찬성하는 쪽도 있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던지는 곳도 있었다. 찬성이든 반성이든 서로간의 차이를 알고 피드백을 나눌수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일이다. 허나 이런 토론중에는 '황실복원'이라는 문제와 상관없이 조선왕조에 대해 맹목적인 부정만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글을 적는다. 과연 조선왕조는 멸망해야 마땅한 무능한 국가였을까?

조선왕조를 부정하는 이들은 먼저 일본제국에 의해 나라가 침략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조는 좋지못한 나라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분명 일본제국에 의해 35년간 나라가 침탈당한 것은 분노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는 수많은 나라가 생겨났고, 또 멸망해갔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고구려도 결국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무너졌고, 위로는 발해에서부터 아래는 탐라국까지 수많은 나라가 멸망과 탄생을 반복한 끝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 나라중 대다수는 바로 타국의 침략에 의한 멸망이었다. 그럼 이 나라들도 비난해야 하는가?

조선왕조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안밖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흐림없는 냉정한 눈으로 살펴보아야지 분노에 찬 시선만으로 역사를 이야기해보았자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조선이 멸망 이전까지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조선의 근대화 노력에 대해.
고종이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개명한뒤, 대한제국은 다양한 면에서 근대화된 제도를 도입, 근대화 국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근대화적 문물은 지엽적인 일부분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군사, 경제, 사회, 문화등 사회 전반야에 걸쳐 이루어진 대대적인 개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종이 있었다.

고종은 평소 자신의 선대왕중 가장 훌륭한 분은 정조라고 칭하면서, 18세기 조선이 보여주었던 조선 중화주의를 계승하고자 노력하였다. 당시 아시아는 청나라를 중심으로하여, 베트남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부터 저 멀리 티벳까지 중화주의를 통해 세계가 운용되고 있었다. 특히 조선은 청나라와의 지리적인 근접성으로 인해 '동이'라고 불릴만큼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존의 중화주의 사상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근대화 노력을 기울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비록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임오군란으로 인해 왕권붕괴로 인해 개혁이 완성되지는 못하였지만 이전까지 고종은 수많은 근대화적인 업적을 이루었고, 특히 청일전쟁이 종료된 1896년을 기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다.

위 사진은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의 종로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신작로가 들어서고, 전신주가 생기는등 근대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1898년 전철이 개통되는등 수도 한양은 아시아에서 근대화된 몇 안되는 선진도시중 하나였다.(일본은 한국보다 3개월 늦게 전철이 도입되었다.)


사진을 하나 더 보도록 하자. 위 사진은 경부철도주식회사가 제작발행한 1903년 경성지도이다. 녹색은 궁궐, 붉은 색은 신설도로 그리고 파랑은 확장도로를 의미한다. 이 지도를 보면 미국이 백악관과 의회를 중심으로 방사선 도로를 건설한 것과 같이 경운궁을 중심으로 이미 도로체계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차의 경우, 경성철도정거장과 연결되어 서울에서 전국으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이미 대한제국 시대에 철도망의 기간이 완성되었다.

이밖에도 전신기(1885), 전화(1893), 기차(1899)등 당시 서양에서도 최신의 현대화된 문물이 잇달아 대한제국에 유입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몇몇개라고 치부될만큼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개방의 물결이었다. 특히 서양식 화폐제도 도입을 위한 전환국과 만국우편협정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개설된 우정국은 빠트릴수 없는 부분이다.

군사력 부분에 있어서는 1981년 일본의 조사시찰단 파견을 계기로, 무라다 소총 2만정이 구입되어 신식군대 창설에 사용되었으며 이듬해 1982년 5월에는 중국 상하이로부터 12마력짜리 발전기를 구입해 기기국(무기 제작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비록 실패로 끊나기는 하였지만 군함등을 구매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군사부분의 제외한 근대화의 척도를 본다면, 청보다는 앞서고 일본과는 조금 뒤쳐지거나 동급수준이라고 본다.  

광무개혁에 대해.
광무개혁에 대한 글을 보니까, '집권층과 입헌군주제를 거부하고 개혁을 한답시며 왕권의 전제성을 더욱 강화한'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이는 광무개혁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오해라고 본다.

광무개혁이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여간 러시아의 보호를 받으면서 군주권을 회복시킨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 이후 고종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한등급 상승시켜 대한 제국이라는 칭호로 광무개혁을 실시한다. 당시 조선은 영토가 작을뿐더러, 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때문에 제국이라는 칭호는 가질수 없는 칭호였지만 고종은 제국이라는 칭호를 끝까지 고집한다.

그 이유는 직위당시 고종이 한 말에서 찾을수 있다. 당시 말을 요약해보면, '이것은 내가 황제로 높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의 일본이나 중국이 모두 황제국인데 우리만 군주국으로 남아 우리 국민이 중국이나 일본의 국민에 비해 한 등급 낮게 간주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모두가 중국이나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는 계기를 만들어 재출발하자'라고 말한바 단순히 제국이라는 칭호를 전제주의의 상징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광무개혁은 단순히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공업 분야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져, 보부상들의 단체인 혜상공국을 창설하는가 하면, 신식 화폐제도와 중앙은행의 설립을 위한 기초 계획도 수립하게 된다. 이처럼 고종의 광무개혁은 단순히 전제주의의 옹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 대항하여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광대한 개혁의 시발점이었다.

또 만민공동회 해산에 대한 이야기도 있던데, 황국협회와 독립협회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오해라고 본다. 분명 초창기 독립협회가 근대적인 시민단체로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에 황제가 근대화 사업을 주도하면 아래로는 독립협회가 민중을 계몽하여 사업을 이어나간다가 바로 초창기 독립협회의 성격이었다. 그런데 초창기 이러한 합작관계와는 달리, 독립협회와 황제사이의 관계는 대신 임명권을 두고 서로 갈라서게 된다.  그리하여 독립협회는 이 문제에 대해 성토하는 만민공동회를 열게 되었다.

이에 고종은 '민권이 중요한 것은 나도 알고있다. 허나 지금 민권을 우선시하다보면 국권이 약해지고, 국권이 사라지면 민권역시 찾을수 없다. 그러니 지금은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나를 중심으로 국권을 지키기위해 노력하자'는 뜻을 전하지만, 독립협회는 이러한 제안을 끝까지 거부하였고, 결국 고종이 황국협회를 통해 집회를 해산시키게 된다.

어느쪽이 옳은지는 영원히 미지수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종의 행동을 비난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국가부흥의 위해 국민의 권리를 제한 하는 것. 분명 비난받을 일이지만, 고종이 이 권리를 전제주의 강화에 사사로이 이용하였다는 말은 틀린 말일뿐더러, 이 권력을 국가부흥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동학만이 살 길인가?
또 글을 보면 민중의 고통이 심해져서 동학이 일어났고, 동학의 당시 일어난 러시아나 프랑스 혁명과 비교하여 설명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 또한 동학의 성격을 잘못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동학이 외척과 세도정치에 반대하기위한 봉기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서양의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애초에 동학의 목적은 왕정붕괴가 아니라, 기존 양반권들이 가지고 있는 유교사상을 일반 백성들도 누리게 해 달라는 요청에서 출발한다. 즉 유교윤리의 실행주체가 양반사대부뿐만 아니라 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성향은 당시 유행하였던 춘향전이나 심청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춘향전을 보면, 출신차로 인해 기생과 양반은 결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결국 이몽룡과 결혼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서민도 유교윤리를 충실히 수행하면 사회적, 혹은 국가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다는 주장이며, 이것이 바로 동학의 논리이다. 따라서 동학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왕정정치가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동학이 성공하였다면 왕정정치가 더 오래 존속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이라는 국가는 국왕이 무능해서 망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유능한 성격으로 인해 미리 싹이 잘라졌다는 표현이 옳을듯하다. 실제 현존하는 데이터를 보아도, 국가재정이 풍부하고 단기간내에 근대화 국가로 급성장하고 있는 국가가 내부적으로 망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또 앞서 일본에 의해 침략당했으니 무능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국가가 군사력의 향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요즘이야 핵탄두같이 일발몰살의 무기가 등장하였지만 당시는 총과 대포의 시기였고, 일본이 이미 수차례의 전쟁을 통해 정예화된 것에 비해 조선은 이제 막 발걸음을 띈 상태였다. 시작이 늦었기때문에 불만을 가지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되지만, 이 문제를 따질려면 중화사상에 편입된 시기부터 논해야되고 어쩌면 하왕조나 은왕조시기까지 가야될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일본이 근대시기에 승승장구할수 있었던것은 문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변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상과 같이 해당글에 대한 오류에 대해 몇가지 반박문을 적어보았습니다. 더 적고 싶긴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어야 겠군요.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그에 대한 의견역시 트랙백으로 걸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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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a 2006.10.03 12:49

    동학을 프랑스혁명과 비교하는 건 확실히 난감하더군요.

    조선을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본에 먹혀서 더욱더 무가치해지는 거죠. 그래서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서 - 식민지근대화론자들에 대한 반동으로 자본주의맹아론까지 나오게 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결국 철저한 자기부정 이외에는 상실된 자존심과 자긍심을 되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일제시대 학자들이 철저한 자학사관을 심어 놓은 영향도 있겠지만요.

    '왜 일본은 했는데 우리는 못 했냐'

    라는 질문 속에는 '우리보다 찌질했던 일본'이라는 속뜻이 담겨있습니다. 일본의 역량을 인정할 수 없으니 일본보다 더 찬란했던 과거를 찬양하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역사는 부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려는 비록 사대했어도 조선보다는 자주적이었다가 나오는 거고 외세의 힘을 빌린 신라는 역적이고 제국주의침략을 비난하면서 반대로 침략전쟁을 한 고구려는 위대한 겁니다.(고구려는 침략 그 자체가 생존의 방식이니 인정해야죠.)

    '일본도 한 걸 조선이 못한 건 무능해서다.' 라는 말 속에 담긴 폭력성은 전혀 고려해보지 않습니다. 그말은 즉, 근대화에 성공한 소수의 서구를 제외하고 다른 민족들은 열등하다는 말과 등치됩니다. 그 논리는 그대로 우월한 우리가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로 이어지죠. 역사를 실패와 성공 두 관점으로밖에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폭력성도 무능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18~19세기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량이 결코 녹록치 않은 수준이었다는 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조선이 열등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조선은 뭘 해도 안 돼. 시작부터 잘못이야. 니들이 일본에게 먹힌 건 열등해서야' 이렇게 말해버리면 쉬워집니다. 우리의 역사는 반만년이니 그 중에서 고작 500년을 때어내면 되니까요. 그렇게되면 일본에게 당한 굴욕과 치욕의 30여년은 잊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일본의 우위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비난과 비판은 다른 겁니다. 비난은 감정적 배설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지만 비판은 써도 약이 될 수 있습니다.

    • BlogIcon 소금이 2006.10.03 16:48

      예, 충분히 그 말에 공감합니다. 단순히 역사를 결과만으로 평가하자면 그냥 나라가 생겼고 망했다. 이 두마디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허나 이 두 단어 사이에는 생존을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수많은 문화적 유산들이 집결되어 있습니다.

      조선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 어떤한 노력을 하였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에 대해 인지하지 않고, 단지 조선은 나쁜나라야라고만 못 밖은다면 그것은 없으니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쓰디쓴 역사라도 배울점은 있고, 그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죠.

  • BlogIcon 현이 2006.10.03 14: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소금이 2006.10.03 16:48

      현이님, 오늘부터 추석인데 잘 보내고 계신가 모르겠네요. ^^ 어제밤에 밤을 새는바람에 지금 일어났다는.. 킁;

    • BlogIcon 현이 2006.10.03 17:23

      하하! 저도 아침에 자서 점심에 일어났어요. 연휴가 다 그렇죠. ㅋㅋ

  • 프로메테우스 2006.10.03 17:39

    제가 얘기한 프랑스 혁명부분과 동학 얘기는 소금이 님께서 쓰신것과는 뉘앙스가 약간 다릅니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모두 정치체제의 변화를 꾀한 혁명이지만 그 기저에는 당시 민중들의 비참한 삶이 깔려있습니다. 동학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의 혁명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있었기에 서양의 혁명과 비교를 한것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동학 혁명은 러시아 혁명전야의 빵을 요구하는 민중앞에 총알을 선사한 러시아 제정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느낌입니다.

    조선에 대한 저의 평가는 맹목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칭찬할 부분에 있어서는 주저하지 않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비판할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 점에서 제가 보기에 임진왜란과 호란시의 대처, 조선말기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가해야 할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판을 가하는 것입니다. 제가 조선의 부정적인 모습을 끌어오는것과 마찬가지로, 소금이님께서는 긍정적인 모습만을 끌어오고 계십니다. 저 역시 그러한 긍정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알고 있으며 소금이님께서도 제가 말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인지하고 계시겠죠. 그러나 서로 다른 내용의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부분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금이님께서는 조선말의 개혁이 당시 상황속에서는 충분한 정도의 개혁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전 부족했다. 왜 나아가야 할 시기에 주저하고 후퇴했나라고 생각을 하는것이지요. 아마 이런 논쟁을 주고 받다보면 끝이 나지 않을것입니다. 때문에 논쟁은 이쯤에서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 저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본문에서도 나와있지만 조선은 잠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배층은 국가운영에서 많은 삽질을 했으며 그 책임을 져야한다. 덧붙여 왕실 복원은 말도 안된다. 는 것입니다.
    소금이님께서는 당대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신데, 물론 많은 점에서 공감하고 저 역시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당대의 입장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그것은 결국 변명만을 되풀이하게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상으로 논쟁을 마치고 물러나려합니다. 뭐 기본적인 시각은 여전히 비판적이겠지만 소금이님의 글과 제공하신 자료를 보며 여러가지 더 생각해볼거리가 생겼고, 전보다는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수 있는 계기가 될수 있을것같습니다. 그럼 건필하시길~^^

  • 신의의지 2006.10.04 17:21

    '근대화'란 말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인정하지 않으려니까 문제가 생기죠. 이에 대해 제가 쓴 글이 있습니다.

    맥아더와의 물밑썸씽으로 철저하게 왜곡됐지만, 1945년까지 천황은 의회 해산권, 국군 통수권, 조선 총독 임명권, 내각 해산·임명권 등 그야말로 일본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대 일본은 청나라, 그리고 동학이 꿈꿨던 유교국가보다도 '덜 근대화'되어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국가간의 관계를 실패, 성공의 두가지 잣대로만 평가해선 안 되듯이, 당대 조선 내부의 다양한 사회적 움직임에 대해서도 '근대화'의 미명아래 단칼베듯이 단정해서는 안 되겠지요.

  • BlogIcon 노랑티코 2006.10.05 09:46

    글이며 댓글이 대단하시군요..

    이거야 원.. 머릿속에는 뭔가 생각이 나는데..

    풀어서 글을 쓴다는게 어렵습니다... ^^

  • ㅇㅇㅇ 2013.05.14 10:51

    조선이 무능한건 맞죠 역대 왕조 중에서 다른 세력에 망한 국가는 무눙했다고 표현해야되요

    • BlogIcon 소금이 2013.05.14 17:03 신고

      다른 세력에 의해 망한 국가를 무능한 국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어떤 국가도 유능한 국가로 선정되지 못할 것입니다.

  • BlogIcon 2014.05.19 03:13

    조선왕조 무능 부패 사실이지 안쏘? 먼 되도 않는 뭔복원 ..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