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당하게 기권표를 행사하고 싶다.

5월 31일은 지방선거의 날이다. 오늘도 하루도 빠짐없이 유세차가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틀고있고, 노란색 띠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기호 O번 000입니다"를 외치고 있다.

글쎄.. 이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돈쓰고 욕먹는다"

이거 한마디로 요약할수 있을듯하다. 평소엔 보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친한척 머리를 굽신거리며 명함을 나누어주는 것, 뭐 여기까진 OK. 평소에 전단지 돌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러나 낮에 쉴려고 집에 들어왔는데, 소음공해수준으로 노래를 틀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유세차를 보면 짜증나기 시작하고, 더 짜증나는건 그들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니들 공약이 뭔데?

속칭 껌딱지라 부르는 명함을 보면 앞에는 뽀샵질한 사진에 뒤에는 백이면 백, 어디어디 위원장, OO산악회 회장.. 이런 말만 주주장창 써 놓고있다.

7~80년대 유신시절이야 공무원 신분증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로 위력이 있었지만, 요즘 같은 시절, 어디 위원장을 나오고 전직 00구청장이라는 명함은 말그대로 껌딱지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정치인들에 대해 짜증만 나는 시대에, 그깟 나눠먹기로 얻은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문짝만하게 줄줄 써놓았는지..

아무튼 유세차나 껌딱지 나누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보아도, 모두 기호 몇번만 외칠줄 알지, 어떤 공약을 내놓고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말은 아무것도 없다.

좋아. 그럼, 선관위는 어떨까. 선관위에 가면, 각 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필이 나온다. 여기에는 재산납부 현황이나, 군복무 경력등 자잘한 경력들이 모두 다 나온다. 어느정도 참고는 할 수 있을 것같지만, 여기에도 공약은 없다.

기껏해야 '정견/공약'란을 보면 간단한 인사말정도가 쓰여있을뿐이다. 이쯤되면 왠만한 사람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좋아, 가는데까지 가보자. 이번엔 후보자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 보자.

후보자 홈페이지에 가보면 그나마 공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가령 00씨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을 서울"이라든가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서울"라는 제목아래 몇가지 공약들이 올려져있다.

그러나 그들 공약을 보면 대부분 국민학교 시절 반장선거때나 써먹을법한 아주 기본적인 공약이 대부분이다.

이전 선거후 대략 5년정도 시간이 있었을터인데, 고작 이정도 공약으로 무얼 어찌하겠다고?

예를 들어 아래는 어느 후보자의 공약중 하나이다.

동사무소를 ‘복지문화센터’로 전환하는 등 민관협력 체제 구축
자원봉사 시스템 통합을 통한 서울공동체 형성
서울복지재단의 전문성과 운영 합리화
사회복지시설의 운영 합리화 및 종사자 처우 개선

우선 동사무소를 복지문화센터로 전환하겠다는데, 그럼 현재 해당지역내의 복지센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 실태는 어떠한지에 대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복지센터로 전환한다면 예산이 들텐데, 그 예산은 어디서 어떤방법으로 조달하고 몇년안에 몇퍼센트를 완료하겠다는지등의 로드맵정도는 제시해야되는 것이 기본아닐까.

실태가 어떤지, 해결책으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그리고 이 일이 얼마만큼의 중요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공약 한 줄 달랑 내놓고 끝?

복지재단의 전문성이나 운영합리화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이 공약이라고 써놓은 것도 있고, 종사자 처우 개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건데.. 두리몽실하게 표현한 말로 내 표를 얻을수 있을것같아?

아무래도 올해 역시 기권표를 내야될 것같다. 옛날에 스승이 제자를 고를때는 '비인부전'이라, 기준에 못미치면 아예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듯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표를 주고, '나 민주시민으로서 역활을 다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어째 아닌듯싶다.

한마디 더 하자면 개인적으로 투표지에 '기권'란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국회의사당에서 법안 통과 시킬때 기권을 내는 경우도 많던데, 왜 꼭 선거에서는 기권표가 없는지. 이중에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증거로서 즉 불신임의 증거로서 기권표를 만드는 것도 좋지않을까?

나는 당당하게 기권표를 행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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