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을 보고 왔습니다.

2014. 12. 3. 04:22Issue/Movies

 

조금 늦은 뒷이야기. 일전에 원주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된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린바 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합니다. 그 날은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일에 쫓겨 출발이 늦은 까닭에 뒤늦게 택시를 타고 달려갔던 상영관은 한 층을 절반 가까이 메운 사람들의 호응에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원주에 10여년간 살면서, 극장 안에 관객들이 이렇게 가득찬 적은 처음입니다. 요즘 뜨는 인터스텔라 조차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자리에 앉고 상영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보입니다. 어머니 또래의 아주머니들, 감자칩을 먹으며 세월호를 이야기하던 두 남학생들, 손녀와 함께 오신 할머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세 여학생들... 그외 자리가 없어 서서 보신 수많은 관객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조금 늦은 7시 10분. 사회자분의 짦은 멘트가 끝나고 드디어 다이빙벨이 시작됩니다.

다큐 다이빙벨은 BBC같은 전문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날 것의 느낌이 납니다. 사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잘 짜여진 스토리를 원하신 분들에겐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에 다리를 쭉 펴고 뒤로 누워 영화를 보던 제가 고개를 바짝 앞으로 내밀며 집중하여 보게하는 힘, 영화가 끝났음에도 관중들을 침묵시키는 힘. 다이빙벨의 진실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빙벨은 묻습니다.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여기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저는 처음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식이든 도움을 주고자 할 것입니다.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무척이나 용기있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돕기 위해, 국가를 세우고, 전문 기관과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많은 돈을 들여 전문가도 고용하였습니다. 또 사람들은 언론사도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부패하였을 때 이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죠. 세월호 이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만든 사회에서 우리가 안전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을 믿고 기다려라"

아버지가 떠나보낸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은 확고했지만, 이번만은 아니었습니다. 희생자가 생기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과 촛불을 키며 기다리는 이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또 이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이빙벨은 말합니다. 비록 이 사회가 부패하였지만, 아직도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기에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Remember 0416"

기억합니다. 당일 새벽, 수미터 단위로 로프를 설치하면 여러 명이서 입수 가능하다며 오늘 이걸 하기 위해 밤새워 달려왔다는 이름모를 아저씨, 조명탄 대신에 고등어 잡을 때 쓰는 방수조명을 쓰면 밤에도 수십미터 앞이 보인다며 당장 제공할 수 있으니 요청만 해달라는 모 조합원 아저씨. 그리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수색을 위해 몸바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다이빙벨은 종영되고, 언젠가 세월호가 잊혀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잊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또다시 이러한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누군가는 기억해야만 하는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이롭게 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자 행복이 아닐까요? 언젠가 저도 다이빙벨의 노 선장처럼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오늘의 나를 다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