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발전없는 아쉬움에 그리움을 느끼다.

2008. 12. 29. 20:36Issue/Book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판타지소설이라하면 NT노벨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지만 불과 10여년전만 하여도 '영웅문', '은하영웅전설' 그리고 '드래곤라자'가 최고의 작품이었음을 부인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단순한 RPG식 영웅담에서 벗어나 생각을 던져주는 화두로 주목을 받던 드래곤 라자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와 같은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중에 하나입니다.

팬들의 사랑덕분인지 얼마전 이영도씨는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판으로 '그림자 자국'을 출간하였습니다. 드래곤 라자와는 또다른 그 뒷 이야기, 과연 그림자 자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작품은 후치의 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마법이 잊혀지고 과학이 번성하기 시작한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무척 독특한 사상을 가진, 모든지 볼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보고싶지 않아하는 예언가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줄거리는 이 홀로 살고 싶어하는 예언가에게 권력이라는 귀찮은 날파리가 꼬이면서 시작됩니다. 전쟁에서 패한 바이서스 왕국이 승리를 위해 예언가를 납치하고, 드래곤은 자기 종족의 번영을 위해 예언가를 또다시 납치합니다. 심지어 왕비는 화가로 변장하여 예언가를 유혹하기도 하지요. 거듭되는 탐욕과 절망속에 예언가는 화를 내보기도 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점차 지쳐가는 것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이 불쌍한 예언가에겐 두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왕거미와 이루릴. 독특한 이름을 가진 왕거미는 흔히 도둑이라 불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저 유명한 아프나이델의 마탑을 등반하기도 한 실력있는 트레저 헌터입니다. 그녀는 아무런 조건없이 예언가를 도와주는데 힘을 아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가 위험에 처해 있을때도 말이죠. 일천여 년이 넘게 살아온 이루릴은 어느덧 왕국의 주요인사가 되었습니다. 드래곤과 친분이 있으면서도 왕국에 인연이 있는 그녀는 세상의 조율자로서 불쌍한 예언가에게 친절을 베풀어 줍니다.

작품은 '그림자 지우개'로 불리는 아티팩트가 등장하며 절정을 이릅니다. 그림자를 지우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지울수 있는 이 기적과도 같은 아이템은 왕비의 손을 통해 예언을 실행시키는 절대적인 무기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가의 예언은 완결무결하게 이루어지지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취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릴 것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절반의 완성'이라는 평을 내리고 싶네요.작품 후반부에는 드래곤 라자의 시대가 다시 열림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지만, 반대로 10여년이 지난 지금 작품이 독자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여년전 이영도씨가 드래곤 라자를 완간하였을 때, 그는 서양식 세계관과 그로인한 언어상의 한계를 극복해 내지 못하였다고 자평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한때 국내 판타지계에서는 구미호, 도깨비와 같은 한국의 전통 설화를 기본으로한 한국식 판타지가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림자 자국에서 그의 발언을 극복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무런 배경없이 '바이크', '비행기'와 같이 단어들이 사용된 점이나 절대적인 예언이라는 중세시대 서양의 세계관은 드래곤 라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원했던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의 숲(드래곤 라자)과 죽은 자의 부활(퓨처워커)로 이어지는  철학적인 화두가 그림자 자국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못내 아쉬운 점중에 하나입니다. 그림자 지우개를 통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아이템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왜 존재가 부정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존재 부정의 부정이 긍정인지에 대한 생각을 너무 단순하게 처리한 점은 작품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리는 요인중 하나입니다.

반면 팬으로서 샌슨, 후치등의 옛이름이 등장하는 체스판이나 아무르타르와 같은 고룡들의 등장은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10여년전 드래곤 라자에 대해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평이 엊갈릴 것같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실 건가요. 소설 '그림자 자국'에 대한 평을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그림자 자국 -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신작  이영도 지음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의 작가 이영도가 3년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인간과 드래곤을 잇는 '라자'를 소재로 다룬 전작 <드래곤 라자>의 시대로부터 천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마법과 전설이 잊혀진 시대. 한 예언자와 1000년 전 아프나이델이 만들어낸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