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열녀극, '님은 먼곳에'

2008. 7. 28. 00:26Issue/Movies

이 포스트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보게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였다. '왕의 남자'를 통해 독특하면서도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그린 이준익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도 또다시 그 환희를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그리고 작품을 본 지금의 나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하는지 고민중이다. 과연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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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이자 키워드중에 하나인 월남은 주인공들의 도피처이다. 3대 독자 상길은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떠나 군대로 갔다가 애인의 헤어지자는 편지에 다시 월남으로 향한다.

상길의 아내 수애는 이혼에 대한 두려움과 시어머니의 히스테리에 떠밀려 월남행을 강요받고, 그 와중에 만난 밴드 매니저 정만 역시 사체업자들을 피해 월남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그들은 삶의 도피처이자 새로운 출발의 시작지로 월남에 향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애인과의 헤어짐을 잊기위해 월남에 찾은 상길은 곧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갈리는 치열한 전투를 겪게되고, 그를 찾아 월남에 도착한 수애와 정만도 짐을 빼앗기고 청소부로 전락하는 위기를 맡는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선택한 도피처 역시 삶의 한 연장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야기는 빠르게 흐르며 자신의 삶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그들은 전우를 얻고, 부를 얻었으며,  한 때 남편이 주둔한 곳을 불과 20km 앞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운명은 또다시 그들에게 고난을 주었고,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채 방황하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도피처에서 다시 헤어나올수 있을까?

작품은 무척이나 난해하고 산만한 코드들이 난무한다. 뜬금없이 순이가 마음을 다잡는데 등장하는 베트남 소녀나 인위적인 처형장면들은 작위적이고 아무런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2~3분마다 바뀌는 이미지들과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은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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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60년대 열녀상이 그 핵심이다.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채하고, 남편 간수 잘못했다고 떠나라는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월남까지 묵묵히 떠나는 순애의 모습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군한테 순결을 파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분명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눈물 흘리며 본 우리 윗세대들에겐 순이의 모습이 마음씨 착한 며느리감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저 '남편을 만나러 왔어요'만을 외치며 순응할 줄 밖에 모르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인형극의 꼭두각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폭력에도 무관심에도 그저 묵묵히 순응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여성상일까. 차라리 '터미네이터'의 사라코너나 '에어리언'의 리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어떨까? 스토리가 엉망이 되더라도 분명 만족했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작품을 통해 '여성의 눈으로 본 남성들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엔 '폭력으로 가득찬' 마초리즘과 '순응만을 강조하는 그릇된 여성관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순이는 남편을 용서하는 것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것만으론 그녀가 걸어왔던 상처와 앞으로의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커 보인다.

Point : 순애보가 짙은 고전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면 추천. 그러나 여성들이 보기엔 좀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