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3 사용 18주년, 내가 V3를 버릴수 없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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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태터앤미디어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안철수연구소에서 V3 클리닉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내용의 편지였지만 무척 고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 20여년간 안철수 연구소의 V3는 내 컴퓨터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파트너였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과연 내가 V3가 가진 매력을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네티즌중 상당수가 수년전 자료를 근거로 V3를 저질백신이라고 폄하하는 상황속에서 내가 쓴 글 하나가 자칫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도 있기에 더욱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쓴다. 부족하지만, 지난 20여년간 내가 V3를 애용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첫 백신, V3

우리집에 컴퓨터가 처음으로 들어온 때는 내 나이 10살, 국민학교 4학년때였다. 요즘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 XT 컴퓨터였지만, 당시만 해도 서너집에 한 집만 가지고 있을 정도로 무척 고가품이었던 컴퓨터. 처음 신기한 마음에 버튼을 눌렀다가 '웅~'라고 울리는 파워소리에 깜짝 놀라 건너방으로 도망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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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V3 백신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였다. 나의 보물목록 1호였던 보글보글, 남북전쟁이 먹통이 되고, 부모님께 사정사정하여 기사 아저씨를 불렀는데, 그 때 아저씨로부터 받은 플로피 디스켓에 내가 처음으로 사용하게된 DOS용 V3가 담겨있다.

시간이 흘러 코흘리개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중학생이 되고, 다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V3는 V3 98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파란색 로고가 멋지게 빛나던 V3. 버스비를 아껴가며 석달만에 산 것을 하루만에 도둑맞아 좌절하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기숙사에 깔린 V3를 통해 나의 백신 인생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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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자취생활때에는 부모님의 컴퓨터를 관리하기 위해 V3가 필수였다. 이제 막 초보를 탈출하여 포털 사이트를 겨우 이용하실수 있게된 부모님에게 외산 백신은 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어려운 프로그램이었고, 간편하면서도 능력에 충실한 V3가 여전히 우리집의 보안관 역활을 하게 되었다.

가끔 집에 돌아가면 알 수 없는 버그를 고치느라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바이러스에 의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은 V3를 18년간 이용해 온 애독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다.

최근 하나포스에서 제공하는 V3 2007 버전을 거쳐 처음 사용하게 된 V3 365 클리닉은 모든 면에서 '원더풀!'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원격 제어와 보안용 임시 웹하드는 그동안 V3가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얼만큼 노력해왔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V3가 세계 최고의 백신이라고는 아직 말할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V3는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기대에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기에 나는 오늘도 V3를 애용한다. 18년전 처음 만난 이 작은 친구는 어느새 우리집을 든든한 가족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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