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함정에 빠져버린 캐스피언 왕자, 나니아 연대기
2008. 5. 18. 18:02ㆍIssue/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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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나니아 연대기’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실망이 아직도 떠오른다. 원작을 무시한 채, 화려한 볼거리만으로 안주하던 작품은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 않는 괴작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마침내 그들이 돌아왔다. 과연 그들은 이번에도 실망을 안겨줄 것인가?
금기에 대한 도전, 그리고 디즈니 패러독스
할리우드 영화에는 아동에 관련된 몇 가지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다. 아동은 결코 살해되거나 살인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각종 폭행으로부터 안전해야 된다는 이 룰은 헐리우드가 시작된 이래, 철옹성처럼 지켜져 왔던 금기중에 금기였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금기에 대한 도전이 발생하고 있는데, ‘캐리비안의 해적 3’에서 소년이 교수형을 당한다고 암시하는 장면이나, ‘판의 미로’에서 소녀가 총격을 당해 사망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가종영화로 유명한 디즈니 역시 이번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에서 이러한 금기에 도전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루시.
C. S. 루이스의 원작, 캐스피언 왕자에서 루시는 어느 아이보다 순수하면서도 사려 깊은 소녀로 등장한다. 어린아이야 말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루이스의 세계관에서 검과 활은 어른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것은 결코 루시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물품들이다.
영화 ‘캐스피언 왕자’의 감독 앤드류 아담슨은 그녀를 폭력과 살의에 넘치는 전쟁터에 밀어 넣고 칼을 들기를 강요한다.
왕을 환영하는 장면에 등장한 칼을 든 어린 캔타루우스 소녀를 비롯하여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나니아를 위하여’라는 이름아래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
광기에 휩싸인 전쟁터는 비장미를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잘 짜여진 슬픔을 유도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하며 지루함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것이 디즈니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한계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있다. 영화는 PG-13등급을 받은 반지원정대와 비슷하게 대규모 전투 씬으로 이루어졌지만 PG등급답게 피 한 방울 안흘리며 칼만 대면 쓰러지는 적들로 넘쳐난다. 이미 우리는 지난해 ‘디워’에서 이런 영화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성인의 시각에서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다소 부족한 영화로, 그리고 아동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폭력적인 요소가 넘쳐나는 부적절한 영화로 디즈니의 영화는 주체성을 잃고 말았다. 차라리 이 영화가 PG-13(15세 이상 관람가)로 제작되었다면 어땠을까?
정의롭지 못한 피터대왕과 폭력으로 가득찬 나니아 연대기, 가족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운 영화이다.
PS] 작품 초반 나니아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아담슨 감독은 사소하지만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과연 연대기 마지막인 ‘마지막 전투’에서 이 설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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