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느 學徒兵의 편지..

2006. 5. 1. 12:27Issue/Society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래해서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래해서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래해서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壽衣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1950년 8월 포항 전투 당시 어느 학도병의 수첩에서....-


이 수첩의 주인은 아쉽게도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戰鬪終結 後, 현장을 수습하러 갔던 어느 女軍 政訓要員의 손에 의해

이 수첩이 발견되었을 때는 시신은 이미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고

수첩도 피범벅이 되어 글을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그 여군의 비통한 手技에서 전해 내려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