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마우스 80주년, 미키 마우스를 회고하다.
2008. 11. 21. 01:54ㆍAnimation/Ani-Review
디즈니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구피, 도날드 덕과 같은 귀여운 캐릭터들이 금새 머리속을 가득 채울리라 생각되는데요, 어제부로 디즈니의 대부격인 미키 마우스가 80세 생일을 맞이하였다는 소식입니다. 인간의 나이로 80세라고 하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며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결코 나이를 먹지않는 미키 마우스는 오늘도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본 고장 미국에서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먼 극동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미키 마우스이지만 미키가 처음부터 환영을 받으며 축복속에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키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인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계에서 풋내기에 불과했던 월트 디즈니는 검은 토끼 오스왈드의 성공으로 들뜬 기분이었고 후속작 제작이 결정되면서 조만간 자신도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월트는 영화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영화 배급자인 마가렛 윙클러부터 받고 있었는데, 윙클러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넘겨받은 그녀의 남편 찰스는 영악하게도 월트에게는 만화 제작권만을 주고 만화 캐릭터에 대한 판매권은 자신의 소유로 해 놓았습니다. 이로인해 월트는 후속편 제작을 위한 선수금 협상을 위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오히려 '오스왈드'시리즈의 제작권을 넘기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월트는 큰 좌절에 빠지게되고, 그의 회사 역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새 캐릭터를 구상하게 됩니다. 새로운 캐릭터는 쥐를 모티브로 하여 이미지를 그려나갔는데, 불행하게도 월트는 이를 제대로 표현할만한 재능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을만하고 실력있는 동업자를 가지고 있었고, 새 아이디어는 곧 그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그가 바로 미키 마우스의 창시자로 알려진 어브 아이웍스입니다.
쥐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월트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냈다는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미키 마우스는 철저하게 어브의 손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그는 월트가 구상한 생쥐 그림이 너무 월트의 얼굴과 닮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저었고, 이어 자신이 전에 그렸던 오스왈드의 스케치에 변형을 가하여 오늘날 미키 마우스라 불리는 캐릭터를 완성하게 됩니다. 월트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모티어'라는 이름을 생각하였으나 후에 그의 아내인 릴리언의 충고로 '미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렇게 미키 마우스는 고된 산고 끝에 마침내 태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희망을 담으며 태어난 미키이지만, 처음부터 미키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첫 데뷔는 1928년 3월,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을 각색한 '정신나간 비행기'를 통해서 였는데, 작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배급사들은 그의 작품을 거부하였습니다. 반응은 두 번째 작품인 '질주하는 남부 카우보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마침내 디즈니는 작품 하나를 제작할 비용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디즈니가 승부를 건 작품은 '증기선 윌리'. 작품은 버스터 키튼의 영화 '항해자'를 각색한 스토리에 불과하였으나 월트는 이 작품에 소리를 넣음으로서 애니메이션사에 또다른 기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가 작품에 소리를 집어넣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세계 첫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를 보고나서 였습니다. 당시 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나는 우리 앞에 행운이 기다린다고 확신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 기회를 잡아야 해'라는 문구가 있는데 다소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그의 결심은 첫 장면에 휘파람을 부는 미키에 환호하는 관객들로 보답을 받게 됩니다.
이후로도 미키의 성공은 계속 되었습니다. 미키의 모티브가 되었던 오스왈드가 1928년 8월, 'Hot Dog'를 끝으로 2년간의 인기를 마감했던 것과는 달리 미키는 관객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면서 그 인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초창기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과격한 성격은 학부모들의 항의로 인하여 온순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검정 콩알과 같은 눈은 1930년대 들어 파이를 먹은듯한 귀여운 눈으로 변하였습니다. 또 어떤 작품에서는 꼬리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고 경우에 따라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미키는 80년의 세월동안 관객들의 요구에 충실히 부흥하며, 오늘날 어느 영화 주인공들도 누리지 못한 찬사와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키는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전달해주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또 한 편으로는 디즈니의 독점에 대항하는 저항의 상징으로 각기 서로 다른 영역에서 주요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나누어지듯이 미키의 일생 또한 그러한 것이겠지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의 미키가 선보일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세월 친구가 되어준 미키의 80주년을 축하해 봅니다.
- 미키마우스 공식 홈페이지 : http://disney.go.com/mickey/index.html
- 미키마우스 갤러리 : http://www.orlandosentinel.com/travel/attractions/orl-mickey-mouse-photos,0,4798538.photogallery
본 고장 미국에서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먼 극동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미키 마우스이지만 미키가 처음부터 환영을 받으며 축복속에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키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인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계에서 풋내기에 불과했던 월트 디즈니는 검은 토끼 오스왈드의 성공으로 들뜬 기분이었고 후속작 제작이 결정되면서 조만간 자신도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월트는 영화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영화 배급자인 마가렛 윙클러부터 받고 있었는데, 윙클러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넘겨받은 그녀의 남편 찰스는 영악하게도 월트에게는 만화 제작권만을 주고 만화 캐릭터에 대한 판매권은 자신의 소유로 해 놓았습니다. 이로인해 월트는 후속편 제작을 위한 선수금 협상을 위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오히려 '오스왈드'시리즈의 제작권을 넘기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월트는 큰 좌절에 빠지게되고, 그의 회사 역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새 캐릭터를 구상하게 됩니다. 새로운 캐릭터는 쥐를 모티브로 하여 이미지를 그려나갔는데, 불행하게도 월트는 이를 제대로 표현할만한 재능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을만하고 실력있는 동업자를 가지고 있었고, 새 아이디어는 곧 그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그가 바로 미키 마우스의 창시자로 알려진 어브 아이웍스입니다.
쥐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월트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냈다는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미키 마우스는 철저하게 어브의 손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그는 월트가 구상한 생쥐 그림이 너무 월트의 얼굴과 닮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저었고, 이어 자신이 전에 그렸던 오스왈드의 스케치에 변형을 가하여 오늘날 미키 마우스라 불리는 캐릭터를 완성하게 됩니다. 월트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모티어'라는 이름을 생각하였으나 후에 그의 아내인 릴리언의 충고로 '미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렇게 미키 마우스는 고된 산고 끝에 마침내 태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희망을 담으며 태어난 미키이지만, 처음부터 미키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첫 데뷔는 1928년 3월,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을 각색한 '정신나간 비행기'를 통해서 였는데, 작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배급사들은 그의 작품을 거부하였습니다. 반응은 두 번째 작품인 '질주하는 남부 카우보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마침내 디즈니는 작품 하나를 제작할 비용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디즈니가 승부를 건 작품은 '증기선 윌리'. 작품은 버스터 키튼의 영화 '항해자'를 각색한 스토리에 불과하였으나 월트는 이 작품에 소리를 넣음으로서 애니메이션사에 또다른 기적을 일으키게 합니다.
[ Plane Crazy(1928) / Steamboat Willie (1928) ]
그가 작품에 소리를 집어넣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세계 첫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를 보고나서 였습니다. 당시 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나는 우리 앞에 행운이 기다린다고 확신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 기회를 잡아야 해'라는 문구가 있는데 다소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그의 결심은 첫 장면에 휘파람을 부는 미키에 환호하는 관객들로 보답을 받게 됩니다.
이후로도 미키의 성공은 계속 되었습니다. 미키의 모티브가 되었던 오스왈드가 1928년 8월, 'Hot Dog'를 끝으로 2년간의 인기를 마감했던 것과는 달리 미키는 관객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면서 그 인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초창기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과격한 성격은 학부모들의 항의로 인하여 온순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검정 콩알과 같은 눈은 1930년대 들어 파이를 먹은듯한 귀여운 눈으로 변하였습니다. 또 어떤 작품에서는 꼬리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고 경우에 따라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미키는 80년의 세월동안 관객들의 요구에 충실히 부흥하며, 오늘날 어느 영화 주인공들도 누리지 못한 찬사와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키는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전달해주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또 한 편으로는 디즈니의 독점에 대항하는 저항의 상징으로 각기 서로 다른 영역에서 주요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나누어지듯이 미키의 일생 또한 그러한 것이겠지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의 미키가 선보일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세월 친구가 되어준 미키의 80주년을 축하해 봅니다.
- 미키마우스 공식 홈페이지 : http://disney.go.com/mickey/index.html
- 미키마우스 갤러리 : http://www.orlandosentinel.com/travel/attractions/orl-mickey-mouse-photos,0,4798538.photo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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