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보면 성범죄자되는 이상한 이야기.

검찰이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올해 발생한 몇 건의 아동 성범죄에 대해, 그 원인으로 아동 포르노물을 지적하였으며 아동과의 성적 관계를 연상하는 콘텐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수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아동 성범죄가 줄어드는 일은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검찰의 무리한 단속은 예상치 못한 피해자들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9일, 네이버 카페 ‘파일공유(웹하드,P2P)음란물, 저작권 단속관련 네티즌 대책토론’에서는 아청법으로 고소당한 쪼리쪼리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애니메이션 R15를 공유하였다가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고 왔다는 내용입니다.

 

 

애니메이션 R15는 '에로 소설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사립 히라메키 학원에 입학한 아쿠타카와 타케토(주인공)와 여학생들과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입니다. 코믹 애로계, 혹은 할렘물로 불리는 작품이죠. 일본에서는 15금 판정을 받은 작품으로, 노골적인 성관계는 없지만, 노출 씬이 존재하는 작품이며, 국내에서는 방영되지는 않았지만 애니플러스가 방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은 ‘성적 유추가 가능해도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동과의 성관계를 직접 묘사하지 않아도, 교복 등을 입고 노출이 존재한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정도 수긍은 가지만, 과연 경찰이 그 기준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예를 들어, 도라에몽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매년 극장판을 개봉해주는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초등학생인 이슬이의 목욕장면이 매년 빠짐없이 나오죠. 종종 진구가 도라에몽과 함께 이슬이가 목욕하는 욕실에 들어오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것은 아청물일까요?

 

[애니메이션 TV판 도라에몽]

얼마 전 작고하신 우시이님의 ‘짱구는 못말려’는 어떨까요? 매회 어린아이의 엉덩이나 성기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한데, 부인할 수는 없지요. 아청물일까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14기 (2006)]

노출로 판단하기 힘들다면 심리적인 작품은 어떨까요? 오래된 작품이지만, 수차례 공중파 방송을 탄 세일러문은 미니스커트라는 노출씬에 고등학생이 자기 딸(미래에서 왔지만)을 키운다는 설정이었고, 명탐정 코난에서는 초등학생(겉으로는)인 코난이 고등학교 여학생을 사랑하는 스토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떠나 다른 문화 콘텐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도가니’같은 영화는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 꽃잎(1996)에서는 충격을 받아 넋을 잃은 소녀를 수차례 강간하는 장면이 나오고, 최신작 은교(2012)에서도 소녀와 성인남성을 성관계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은교(2012) 티저 영상]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경찰 조사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분명 똑같은 위법인데, 한 쪽은 극장에 상영되어도 별다른 제재가 없고, 또 다른 한 쪽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소를 당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검찰과 경찰이 이 문제에 대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실적 올리기 식의 수사보다 명확한 기준에 맞춘 현명한 조사가 필요한 때입니다. 아울러 법은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한 아동 포르노물이라면 모를까, 아동 포르노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에 의해 법을 집행하고자 한다면 그 누가 법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명확한 위법이 아닌, ‘그러할 것이다’라는 예측에 맞춘 지금의 아청법 수사에도 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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