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의 어린시절과 조우하다.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2008. 11. 16. 19:13ㆍIssue/Book
상상에 잠겼던 앤은 돌연 기차가 속도를 내며 역을 빠져나가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바퀴는 쿠궁쿠궁대며 속도에 박차를 가하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침묵을 깨고 스펜서 부인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건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해요. 저에게 예전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신 것에요. 그리고 릴리, 네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나만큼 말이야. 우리 행복해지도록 하자꾸나."
앤 은 기차가 다음역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앤은 더 이상 초원이나 정돈된 집들이나 꽃이 만발한 과일 나무등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앞길에 놓여 있을 것들에 대한 상상에 빠져 있었다. 앤의 침묵은 초조한 긴장과 두려움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곤경과 불안정이 거의 끝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 앤은 곧 멋진 일들을 경험하게 되리라.
기차가 속도를 늦추자, 차장은 "브라이트 리버!" 라고 외쳤다. 앤은 아무 말도 뒤를 돌아 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가방을 꼭 잡고 통로를 통해 걸어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기차 아래로 걸음을 내딯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해요. 저에게 예전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신 것에요. 그리고 릴리, 네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나만큼 말이야. 우리 행복해지도록 하자꾸나."
앤 은 기차가 다음역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앤은 더 이상 초원이나 정돈된 집들이나 꽃이 만발한 과일 나무등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앞길에 놓여 있을 것들에 대한 상상에 빠져 있었다. 앤의 침묵은 초조한 긴장과 두려움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곤경과 불안정이 거의 끝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 앤은 곧 멋진 일들을 경험하게 되리라.
기차가 속도를 늦추자, 차장은 "브라이트 리버!" 라고 외쳤다. 앤은 아무 말도 뒤를 돌아 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가방을 꼭 잡고 통로를 통해 걸어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기차 아래로 걸음을 내딯었다.
- 제 71장, 그린 게이블즈로 가는 길, <그린 게이블즈로 오기까지>
가슴이 뭉클해질만큼 사랑스러운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그저 깨끗하게 닥여진 머그잔안에 달콤한 카라멜 마끼야또를 부으며, 이름의 끝에 'e'가 붙여진 이 작고 귀여운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음미하였을 뿐이다.
100년에 걸쳐 여전히 사랑을 받고있는 몽고메리 여사는 평생에 걸쳐 앤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앤이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도착하여 매슈와 마릴라 아주머니를 만난 일, 영원한 친구 다이애나와 우정의 언약을 맺고 길버트와 다투었던 일. 그리고 그녀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가지고 두 아이만 낳겠다고 말했던 어린시절의 약속과는 달리 많은 아이들과 함께 여생을 보낸 일. 마치 마법과도 같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감미로운 여사의 손에 이끌려 우리의 손에 전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100여년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이야기중에 앤이 그린게이블즈에 오기 전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무척이나 요원한 일이었다. 어쩌면 몽고메리 여사는 그 이야기들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와 길을 가며 나눈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반짝이는 호수'나 '하얀 환희의 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 분들은 저에게 잘해주려고 했어요. 가능하면 잘해주고 친절하려고 애썼다는 걸 알아요."
마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듯한 앤의 슬픈 독백에 마침내 한 작가가 답변을 해 주었다. 앤의 어린시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힘든 삶이었지만, 그 곳에도 여전히 희망과 사랑이 존재하였다고. 작가 버지 윌슨의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는 앤이 태어나기 이전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녀가 미처 말하지 못한 어린시절의 만남속에 얼마나 많은 감추어진 이야기가 있었는지,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셜리 부인을 동경하여 앤을 맡았지만 고된 일거리와 술주정을 부리는 남편으로 인해 앤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 토머스 부인은 작은 선물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곁에 다가온다. 동화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계모의 모습이 아닌, 폭언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작은 친절에 감사의 말을 전하는 부인의 모습은 원작소설만을 보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무심코 나쁘게 대했던 나에게 자성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술주정뱅이 토마스씨에게도 우리가 알지못하는 인생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지만 가족을 위해 늘 봉사하던 그에게 친구의 배신으로 일자리를 잃게된 사건은 정말 큰 충격이었고, 금주를 결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다가오는 불행의 손길은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어린 소녀의 조언마저 무시하지 않고 노력하였던 인생의 개척자였다.
앤의 어린시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삶도 토머스와 토머스 부인의 삶과 비슷하다. 상처를 입고 오랜세월 방황하기도 하지만, 작은 관심에 환희를 느끼고 더 나은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앤은 그러한 이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추억과 삶의 환희를 일깨워주는 한 줌의 청량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따스함, 사랑스러움, 슬픔, 어려움. 삶 그리고 죽음. 순수함으로 가득찬 앤이 하나둘 인생의 색깔을 배워나가는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앤의 밝은 미소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앤도 토머스 부인도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도.. 어렵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노력가였노라고. 앤은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은 앤에게 삶의 희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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