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14시간의 사투

2008. 6. 1. 23:19Issue/Society

토요일 밤부터 시작되었던 시위를 마치고 조금전 돌아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뉴스란을 보니, 어제밤부터 시작된 밤샘 시위에 대해 여러 기사들이 올라와있어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존 언론사들, 심지어 경향이나 한겨례같은 신문사들도 현장의 분위기를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읽어내기엔 무리가 있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밤 7시부터 진압 시각인 다음날 8시까지 왜 시민들이 그 자리에 있었나, 한 번쯤 같이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31일 오후 8시 : 행진은 무척 평화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행사 참여자가 모두 지나가는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도로위에 있는 그 어떤 차량도 클랙션을 울리지 않았고, 일부 차량 운전자들은 광우병 수입 쇠고기 반대 피켓을 들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지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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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10시 :  안국 사거리를 향해 행진하던 참가자들은 전경들의 버스로 바리게이트가 쳐진 첫번째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전경들이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두고 깃발을 든 단체 참가자들이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응원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전경 버스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지붕위에 올라간 시민들은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안국 사거리까지 도착한 모습을 보고, 참가자들의 행진을 독촉하였으며 시민들은 환호성을 부르며 안국사거리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후에 그 자리에서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전경들에게 방패로 찍히며 진압된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부 통신을 통해 최류탄이 발포되었다는 소식이 나돌면서(다음 뉴스에는 사과탄으로 보도) 오늘 시위는 강경진압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분위기가 시작전부터 돌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분말 소화기 진압]

31일 오후 11시 :
약 50여명의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참가자 한 분이 전경버스위에 올라가 참가자들의 사기를 붓돋아 주었습니다. 이에 방송사 기자를 비롯한 참가자 수여명이 지붕위에 올라갔고,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말을 비롯한 다양한 구호가 선창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향한 것에 대해 배후 세력의 음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저희가 한나라당이 말하는 배후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고작 50여명의 전경을 두고 행진을 멈추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저도 1선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했는데 뒤에서 천여명에 가까운 분들이 밀어주니까 전경들이 맥을 못쓰고 밀려났습니다. 오히려 전경들 보호를 위해 뒤에서 밀지 말라고 요청해야 할 정도로 초반 참가자들의 사기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11시 10분경에 분말 소화기를 이용한 경찰들의 첫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말 소화기는 처음 맞아보는데, 분말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선두에 있던 많은 시민들이 '폭력경찰 물러나라'를 외쳤고, 약 3분간의 분말 소화기 진압은 일단 일단락되었습니다. 후방에서는 자비로 구입한 음료수와 식수가 보급되어 분말가루를 마신 시민들을 달래주었으며, 경찰의 진압에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광장에 있는 한나라당 사무소를 향해 달걀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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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12시 :
자정이 지났으나 주말이라 그런지 7,8세 가량의 아이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고 뒤편 광장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부 아기 엄마들도 뒤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위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의 살수차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의 살수차 진압 장면]

경찰들은 살수차 공격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입니다.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당시 저는 2선 중앙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약 1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살수차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한 여자분의 귀걸이는 스치기만 하였는데도 날아가버렸고, 살수차 공격이 끝난 자리에는 안경을 줍는 참가자를 비롯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10미터 거리에서도 그런데 바로 앞에서 맞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살수차 사격 장면 / 출처 : 우리예리님 블로그]

1일 오전 1시 :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시민이 전경버스 지붕위에 올라 살수펌프를 깃발로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살수차는 지붕위에 있는 시민을 조준하기 시작하였고, 아래에 있던 많은 참가자들이 '쏘지마'를 외쳤으나, 결국 그 시민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뒤에 기자분이 순간적으로 잡아주어서 버스에서 추락하는 것은 면했으나, 실신한 그 시민은 긴급히 후송되고 말았습니다.

살수차의 공격에 시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살인경찰 물러나라', '살인무기 꺼저라'를 외치며 강경한 분위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경 차량은 유리창이 깨지고, 타이어가 펑크났으며 전경버스에는 곧 살인경찰이라는 낙서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부 물병이 전경들쪽으로 날라갔고, 전경들은 건전지등을 투척하며 반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직 이성을 가지고 있었고 곧 '비폭력' 구호를 외치며 참가자들 스스로 흥분을 진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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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3시 :
전경들의 추가 투입과 시위대간의 막연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계획을 두고 격론이 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4.19 혁명도 결국 폭력으로 이루어질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전경버스를 전복시키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하였으며, 20대 청년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위를 보고있다. 조중동이 왜곡하고 있는 가운데 불필요한 무력은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현상황을 유지시키기를 원하였습니다. 경찰들을 잡아 인질로 삼자는 과격한 논의까지 진행되었지만, 그 어떠한 것도 결정되지 못하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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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4시 :
4차례의 살수차 공격으로 인해 시민들은 흠뻑 젖은 상태였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광장 뒤 편에선 모닥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반에는 나무 장작을 구하여 젖은 옷을 말릴수 있었으나 곧 모닥불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 피켓, 촛농등 태울수 있는 모든 것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현장에선 디시인사이드, 다음아고라등 인터넷을 통해 참가하게된 시민들이 즉석에서 돈을 차출하여 김밥, 우비, 수건등 다양한 물품을 배포하기 시작하였고, 시민들은 비록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으나 아침이면 지금 소식을 듣고 많은 시민들이 더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위안하며 더 크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BBC 방송을 통해 시위현장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소식과 상암 운동장 및 다음 아고라에서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소식은 참석자들의 사기를 더욱 북돋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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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4시 44분 :
새벽녘이 밝아오고 있는 가운데 해화동 방면에서 시위를 하던 참여자들에 대한 진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오토바이 참가자를 통해 긴급 보고된 이번 사안을 두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다소 논란이 일었지만, 혜화동 방면에는 이 곳보다 더 많은 참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고, 이 곳을 두고 혜화동쪽으로 지원을 갔다가 자칫 포위될 수도 있기에 이곳에서 혜화동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시위를 계속한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아침에 한 차례 더 살수가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아침밥은 청와대'등 위트넘치는 구호를 외치며 하루빨리 아침이 오기를 고대하였습니다.

1일 오전 6시 : 살수차가 전진하며 혜화동 방면 참가자들을 몰아내어 결국 안국사거리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전경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오갔으며 새벽까지 버틴 시민들과 하루밤을 푹쉬고 진압에 들어간 전경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때, 살수차를 포위하며 시민들이 우세에 서기도 하였지만, 곧 시민들은 숫자에서 밀리며 뒤로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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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8시 : 사거리를 앞두고 마지막 대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을 비롯하여 인도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인권위단체가 항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위 마지막까지 경찰은 인도를 장악하였으며 이는 인권위에 모두 촬영되었습니다. 또한 방패를 끌며 가는 장면 역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기껏해야 1,2Kg정도의 플라스틱 방패를 무거워서 끌고다닌다고 합니다. 밑에 고무패킹은 다 벗겨진 것을 촬영할려고 하니 거부하기에 인권위 사람을 데려와 따로 찍어두었습니다.

오전 8시를 기점으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은 다리가 부러진 모양인지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었고, 한 아저씨는 가슴을 맞아 숨을 쉬지못한 상태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앰블런스를 부르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물에 젖은 신발을 벗기는데 전경들이 실실 웃으며 환자의 다리를 툭툭 치고 지나가더군요. 그 넒은 광장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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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곳에선 전경이 여성들을 향해 '이 씨발 호로년아, 밑구멍을 찢어버리기 전에 아가리 닥쳐'라고 욕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개새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어떠한 의료지원도 없었기에 참석자들은 자체 구성된 의료 지원팀을 통해 치료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나마 치료를 받을수 있는 자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었고, 상당수의 참석자들은 그 어떠한 치료도 지원받지 못하였습니다.

방패에 찍혀 머리에 피를 흘리던 학생은 손으로 피를 닦다가 곧 괜찮다며 사라져버렸고, 팔이 골절된 시민 한 분은 붕대를 구하지못해 비닐봉투를 말아 팔을 고정시켜야만 되었습니다.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던 경찰특공대는 부상당한 시민들에게 눈길하나 주지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곧 자리를 떳고, 안국역까지 시민들을 추격하던 전경들 역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과 10여분 사이에 그 날의 모습은 그 어떠한 흔적도 찾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운좋게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오늘 시위를 통해 더이상의 평화시위는 그 어떠한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경찰들의 강경진압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들 역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계천 광장으로 다시 시위를 하기위해 떠나는 우리들. 그러나 발걸음만은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얼굴이 참 무서우시네요.'

인도에서 홀로 대치중에 어느 중대장으로부터 들은 소리입니다. 친구에게 말 한마디 실수한 것을 가지고 몇시간을 끙끙거리던 이 소심한 남자가 무서운 얼굴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웃으면서 '내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건드리면 한 놈 때려죽이고 간다고 생각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 한 번, 딱 5분만이라고 이 날의 거리에 서 있으신 분이라면 결코 오늘의 일을 잊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또다시 더 큰 피를 흘려야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