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톤 세상속의 '제스퍼 모렐로의 이상한 여행'

2006. 11. 9. 05:06Animation/Ani-Review


'나침반의 1도 차이는 그리 큰 거리가 아니지만,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엔 충분한 거리이다'

안소니 루카스(Anthony LUCAS)감독의 '제스퍼 모렐로의 이상한 여행(The Mysterious Geographic Explorations of Jasper Morello)'은 28분이라는 짦은 시간동안에도 얼마든지 관객들에게 재미와 흥미거리를 선사할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지난해 2005 안시 단편부문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여받았으며 작년 SICAF때 한국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한 이 작품은 총4부작으로 기획된 장편 스토리입니다. 그중 이 이야기의 두번째 스토리이자, 첫 공개작인 "Jasper Morello and the Return of Claude Belgon"가 이번 애니충격전을 통해 다시 한번 소개되었는데 운좋게 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되어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어느 알 수없는 시대, 비행선이 날아다니고 스팀에 의해 유지되는 한 도시의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도시는 알수 없는 점염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죠. 지도제작자이자 항해사인 제스퍼 모렐로는 과거 사고의 휴유증으로 항해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지만, 정부의 명령에 의해 다시금 배에 올라타게 됩니다. 그의 임무는 새로운 무역항로에 부표를 개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닥터 클라우드 박사. 그는 아카데미에서 인정한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기상학자로 최근 급속히 퍼지고 있는 점염병에 대응하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이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는 선원들의 점염병 발생률이 낮다는 사실에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지요.

순조롭기만 하였던 항해는 몇일뒤 불어다친 폭풍우로 인하여 엉망이 되고 맙니다. 배는 난파되고, 알수없는 표류선에 겨우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져 들려오는 아내의 감염소식.. 제스퍼는 배를 돌리려고 하지만 박사에 의해 이 배의 목적지였던 신비의 섬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마침내 병을 치료할 백신을 우연히 구하게 됩니다. 이제 돌아가는 아내를 살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만이 남은 줄 알았던 여행.. 그러나 진짜 모험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그 백신을 가지고 있는 생물은 사람의 피에 의해 살아가는 식인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제스퍼, 대의를 위해 폐기를 거부하는 박사, 하나둘 영문없이 사라져가는 선원들, 그리고 감염으로 괴로워하는 아내.. 과연 그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제스퍼 모렐로의 이상한 여행은 여러모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흐릿한 하늘과 모노톤으로 이루어진 세상, 초기 산업혁명시기를 묘사하는 듯한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공간, 표정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인물들. 그리고 그 무표정한 얼굴로 감염자를 구덩이에 밀어넣는 절망적인 세계.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속에서 제스퍼는 임무와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하게 하는 모험을 강요받게 됩니다. 끊임없는 고민과 선택, 그것은 이 작품의 현실감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자 관객들에게 '너의 결정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려진 마지막 결정. 제스퍼는 두가지 모두를 가지고 대신 또다른 한가지를 희생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 세계속에서 어찌보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결정이었기에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군요.

감독인 안소니 루카스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등에서 수많은 호평을 이끌어낸 호주 출신의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지금까지 15편의 단편애니를 제작하였고 3D 필름스(3D FILMS PTY. LTD.) 설립후에는 더욱더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내고 있습니다.

2001년 Holding Your Breath, Bad Baby Amy등 주목할만한 작품을 내기도 하였으며, 차후작은 제스퍼 모렐로의 이상한 여행의 첫번째 스토리인 Jasper Morello and the Lost Airship라고 하니 이 작품을 재미있게 감상하셨다면 루카스 감독의 차후작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 보도록 합시다.

흔히 단편영화다라고 하면 예술성이라든가 아는 사람만 보는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이렇게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작품들도 매년 끊임없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색감과 질감, 독창적인 연출과 파격적인 스토리. 기존 일본식의 눈크고 귀여운 그림체들도 좋지만 볼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런 단편작품들에도 가끔씩 귀를 귀울여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작품들은 런닝타임이 무척이나 짦은 편이기때문에 이야기가 완결될때까지 몇달이나 기다려야하는 시리즈 작품보다 매우 강렬한 느낌을 받으실수 있습니다.

현재 12일까지 서울 중앙시네마에서 애니충격전이라는 영화제를 통해 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지방으로도 확대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월례행사로 매달 열리고 있으니 단편애니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번쯤 가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아, 그리고 이런 작품이 부담되신다면 이번 12월에 개봉되는 팀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 3D'를 통해 이런 작품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이 작품도 기대되는 작품중에 하나이지요.

시간적 혹은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신다면 네이버 단편영화관을 이용하시길 권장드리고요. 단편 애니및 영화들을 매달 선정해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단편애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사이트를 통해 미리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하네요. 아무튼 최근 각 기업이나 영화제에서 단편영화들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이에대해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으니, 이제 쪽방에 둘러앉아 단편영화를 관람하던 매니아들의 시대는 잊혀질듯합니다. 이젠 누구나 즐길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 좀더 다양한 작품들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