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일기/2006 Diary

한총련, 그 타협할 수 없는 추악함

8월 15일을 맞아 한총련이 또다시 그 추악한 광기를 내보이고 있다. 연대항쟁 10주년이라는 이름아래 연세대에서 또다시 통일축전 대회를 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광기는 아직도 여전한 것같다.

10년전 이맘때의 일이다. 8월 13일 한총련은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을 강행한다. 이들은 치밀한 계획아래 건국대와 고려대등 서울시내 6개 대학에 모여 있다가 오후 7시쯤 한자리에 모여 연세대 진입을 시도하였다.


당시 시위는 화염병과 투석전이 밤늦게까지 지속되는 유래없이 격렬한 시위였다. 이후 경찰들의 저지속에 학교 건물을 점거한 이들은 근8일간에 걸쳐 폭력시위를 계속한다. 이 과정에서 단과 건물 한채가 전소되고 진압을 위해 진입하던 의경 한분이 학총련 소속 시위대의 벽돌에 맞아 사망하였다.


5천여명이 넘게 연행되어 460여명이 구속된 이 시위는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대학가에 한총련 탈퇴붐을 일으킨 그 해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한총련이 연대사태 10주년을 맞이하여 또다시 연세대에서 행사를 치룬단다. 희생자는 아랑곳하지않고 살인자가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어 희생자의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그야말로 추악함만이 남은 미치광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96년 한총련사태 당시 동영상 - 영상출처 : 다음 전의경 부모의 삶 카페]

그들은 그 시위를 통해 단지 하나의 기념사진을 남겼을 뿐이다. 10년후에도 써 먹을수 있는..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학교는 수천여명의 의경과 시위대에 둘러쌓여 신음하다가 폐해뿐인 건물밖에 안남았다. 건물을 신축해야 되었기때문에, 다음학기 수업에 차질이 많았다고 한다. 또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함이 가중되었다. 내가 입학하던 99년에도 주변지역에서의 불시검문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학생회와 동연은 모든 한총련 관련 행사에 보이콧을 했으며, 학생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총련은 일종의 금기단어였고, 그 누구도 그들을 존중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한총련과 연세대의 전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채, 이번에도 불법점거로 시위의 포문을 연 한총련은 그들만의 아집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닭아야 된다. 그들이 '전국대학생총연합회'라는 타이틀을 건 이상, 가장 중시해야 될 것은 학생들의 의사이고, 학생들의 거부의사가 명확한 명분없은 행사에 더이상 집착하는 것은 무리라고.

제발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태그

  • ... 2006.08.14 12:47

    겪어보지 않은 분이 너무 단정적이시군요. 99학번이면 당시 연대 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실텐데.. 씁쓸하군요.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3:09

      당시 상황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입학후 동아리연합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회장님이 한총련 사태를 직접 경험하신 94학번이라서 그 사태를 좀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었지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회장님이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그 어떠한 행사도 참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셨기 때문에 그때 그 분노가 얼마나 큰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 BlogIcon THIRDTYPE 2006.08.14 13:10

    한총련이 그리 잘한 것도 없지만, 관련성이 부족한 사진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것 같네요. 희생자가 누구였는지도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할것 같구요.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22

      언론사 사진이 모두 삭제되어 구할수 없었는데, 의경카페에서 관련 영상을 구할수 있어 업로드합니다. 96년 시위 당시의 영상인데, 누가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리고 희생된 분은 고 김종희 의경으로 당시 나이 20세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kornuri 2006.08.14 13:14

    한총련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저랑은 좀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보다 그들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뭐 운동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운동이라 칭하겠습니다. 저도 대학생이지만 요즘 대학생들 운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이리저리 휩쓸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끌려다닙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관심? 글쎄요. 사회의 지성인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돈과 취업에 목 매고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은 전무합니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그들의 의사를 묻는 것은 아프리카의 "지부티" 나라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묻는 거랑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군대에서 사상교육을 철저하게 받았기 때문에 한총련이 방북해서 참관하고 이런 것 보기 싫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합법적이고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탄압보다는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합니다.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40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에서 하루종일 락음악을 틀어준다면 그것은 고역이겠지요. 좀 웃긴 말이지만, 시위를 탄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그들 스스로라고 생각합니다.

      실상 95년 통일축전까지 아무 문제없이 행해졌거든요.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전과 같은 관심이나 호응이 없으니까, 폭력시위로 관심을 끌려고 하고, 그 와중에 정부가 개입하고 시민들의 관심은 멀어져가고 그러면 더 큰 효과를 노리기위해 더 강력한 폭력시위를 일으키고...

      이게 지금 한총련이 겪고 있는 모순이지요. 만약 한총련이 그 어떠한 폭력시위도 하지않겠다고 발표한다면, 적어도 탄압받을 일은 확 줄어든다고 생각되네요.

  • ^^ 2006.08.14 13:28

    96년 연대사태는 김영삼정부가 정국타개국면으로 선택했죠...
    95년까지 8.15 통일대축전이 아무런 사고없이 잘 치뤄졌습니다...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18

      김영상 정부의 정국타개국면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한총련의 정국타개용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요. 이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로 이어지던 독재정부와는 달리 문민정부였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명분은 찾기 힘들었거든요.

      그렇기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과격한 시위를 행하였고요. 96년 당시 보도된 동아일보를 보니까, 화염병 수천개에 쇠파이프도 3천여개나 미리 준비해놓았다고 하더군요.

    • ^^ 2006.08.14 16:17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여서 명분을 못찾지 않았죠..
      같은당에 들어가서 야합을 해서 스스로 민주성을 부정했죠..
      한총련 정국타개용은 무엇을 타개한다는 것인지...
      연대사태는 정권이 수세에 몰렸던 시기에 의도적인 공안정국 조성이었습니다. 비슷한예로 80년대 건대사태가 있습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때는 자다가도 대학생 간첩으로 잡혀갔습니다..그리고 그게 불과 10년전이구요...

  • BlogIcon 2006.08.14 13:36

    한총련은 저도 싫어합니다. 하지만 연대 사태, 혹은 항쟁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실 듯 하네요. 몇몇 선배 말만 듣고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몇몇 선배 말만 듣고 이건 이렇구나 저건 저렇구나 하는 건 운동권/비운동권을 가리지 않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자세입니다. 김영삼 정권은 시위중에 대학생을 죽였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박종철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되었던 것은 잘 알고 계시겠죠. 시위에 나온 대학생을 죽인 정권과 그 정권에 맞서 싸운 학생들, 진정 누가 더 추악하단 말입니까. http://fruitsmilk.egloos.com/2502528 연대 사태를 직접 겪은 제 블로그 이웃의 글입니다. 참조하시길.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02

      정권이 죽었기 때문에 항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반대로 시위대때문에 투쟁하는 학생과 학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인정할수가 없네요.

      자신의 의사를 알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타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총련의 통일축전에 대해, 연세대와 연대 학생들 모두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축전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졸렬한 생각으로 밖에 안들리는 군요.

  • BlogIcon dissolve 2006.08.14 14:16

    그 94학번 선배님의 말만을 잘 듣고 믿으신것이군요. 안타깝습니다.
    노천에서 버즈, 싸이콘서트는 되고 ...여타단체의 통일축전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24

      간단하게 말해볼까요. 싸이콘서트는 공연장을 정식으로 허가받아서 열리는 것이지요. 반면 연세대에서 지금 열리는 통일축전은 연세대의 허가를 맡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학교의 주체인 학생들이 축전행사에 동의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차이이지요.

  • BlogIcon oranje 2006.08.14 14:24

    (평소에 리더에 등록해놓고 눈으로 보고만 가던 사람인데, 오늘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
    저도 오늘 뉴스에서 한총련이 연대에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조금 눈살을 찌푸리긴 했습니다만, 소금이님의 96년 상황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 (한총련 자체에 대해서는 일단 그냥 넘어가고요;;;)
    97학번으로 입학했던 사람이라, 당시 상황을 잘은 모르지만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재수학원에 앉아서 열심히 신문기사를 읽었더랍니다. 온갖 신문들이 학생들의 과격성을 연일 크게 보도하며 '전쟁' 운운해가면서 떠들어댔죠. 그 때 한 선생님이 수업 도중 하셨던 말씀이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학생들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고'요.
    사실 제가 보기에 '학생'들은 이념적으로나 실제 행동에 있어서나 그렇게 절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집회를 하고, 선전전을 하고 해산하려고 했을테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학교를 점거할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최초 점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시간이 흐르면서는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정부가 전원 검거를 목표로 학교 주변을 완전 봉쇄했었거든요.
    그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종합관'을 수리하느라 이후 강의에 차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더 분명한 것은 정부와 학교에서 한동안 일부러 수리를 하지 않은 채로 그 건물을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한총련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박물관'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 그래서 그 건물은 신축한 것도 아니고 수리를 좀 한 것 뿐인데, 거의 1년 반이나 사용을 못했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겠지만, 그 때에는 싸이가 없었습니다. 언제적 사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의도적인 편집이 아닌가 싶네요.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4:33

      저와는 견해가 조금 다르네요. 우선 당시 시위는 준비된 시위였습니다. 현장에서 압수된 수백개의 화염병과 근 3천여개의 쇠파이프는 비록 장기전은 아니더라도 준비된 시위임을 알게하는 하나의 자료라고 봅니다.

      해당영상을 구할수 있어 업로드해놓았는데, 당시 영상을 보면 최루탄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시위였지요. 한총련이 일방적으로 폭력에 희생당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상입니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시위대와는 달리 수뇌부쪽은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92년부터 안기부가 수뇌부쪽 인물들이 북한의 사상에 협조하는 친북 좌경세력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게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과 같이 독재정권에 대항한다는 명분은 내세울수 가 없었거든요. 그렇기때문에 과격시위는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이라고 봅니다. 그 촉매가 김영상 정부에 의해 일어나긴 하였지만..

      그리고 끝으로 종합관이 수리되지 못한 것은 아이니컬하게도 돈이 없어서입니다. 시위대가 불질러서 훼손된 것인데, 정작 그 피해에 대해 보상받을수 있는 곳이 없었거든요. 그렇기때문에 그 보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간이 든 것으로 앎니다. 그 과정에서 박물관 이야기도 나왔고..

      학총련이 당시 피해입은 건물이나 학교에 대해 단 한푼도 배상하지 않았으면서 다시금 그 학교에 들어와 허가받지 않은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학교의 학생으로서 정말이지 참을수 없는 모욕입니다. 이건 아무리 보아도, 예의가 아니지요.

  • BlogIcon 미고자라드 2006.08.14 14:52

    한총련이 믿고 실행하는 이념이 옳든 바르든 그건 상관없고,
    폭력시위를 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 BlogIcon kms 2006.08.14 15:05

    폭력진압을 하는 경찰과 의견교환 통로가 없는 현실이죠. 지금은...
    그리고 연대사태는 조금 다른거 같습니다만...
    지금은 김영삼정부의 정국타개용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죠...
    과도한 진압을 했고 학생들은 연대에 몰아넣고 밖으로 나오는것마저 막았으니까요.
    의경이 죽은것은 김영삼정부에서 이미 예견했을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가둬놓는데 그런불상사가 발생할수도 있는거죠.

    • BlogIcon 소금이 2006.08.14 15:24

      물론 당시 연대사태에 있어서 김영삼 정부의 의도가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한총련도 그다지 좋았다고는 볼 수가 없네요.

      극단적인 폭력시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했으면서도 시위를 강행하였다는 것은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간에 충분히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95년때와 같은 수준이었어도 별문제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당시 사태의 피해자는 아마도 연세대와 연대 학생들이라고 생각되네요. 정부와 한총련은 각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지만, 그와는 별도로 연세대는 원치않는 폭력과 시위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겼으니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시 강제점거라니.. 정말이지 분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 BlogIcon 2006.08.14 16:03

    어떤 사건엔 다 그 사건 나름의 맥락이 있습니다. 연대 사태는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사건이고 그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염병이 있었느니 쇠파이프가 있었느니 폭력이었느니 폭도였느니 하는 것들에 너무 천착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상대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일반 주민입니까? 연대 학생들입니까? 아닙니다. 거대한 공권력, 즉 국가입니다. 합법적 폭력의 유일한 담지자인 국가 앞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극악무도하고 위협적인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를 너무 우습게 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다음 대선이 코앞에 와 있고 공안정국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던 96년의 상황 앞에서 '95년 수준으로'라는 가정은 어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95년과 같이 해도 정부에선 공안정국을 만들었음이 분명할테니까요.

    요점은 저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학우들이 그렇게 반발하는데 통일축전 행사 허가를 내준 것은 엄연히 잘못했다는 것. (저도 연대 학생이며 이번 통일 축전에 참가하는 민주노동당 연세대 학생위원회의 당원입니다. 당원의 입장에서도 이번 행사를 벌이고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6년 연대 사태는 이번의 한총련의 행동과는 다른 견지에서 평가받고 이해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 BlogIcon 소금이 2006.08.15 00:46

    논점이 다소 흔들리는 것같기에 정리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96년 연대사태때 한총련의 시위원인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부와 한총련 내부의 복합적인 문제가 작용하였기때문에 본 포스트에서 그것을 주장하기란 조금 모자란 감이 있어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따로 포스트를 세우겠습니다.

    다만 그 원인과는 별도로 결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연대사태로 인해 연세대의 학생과 학교 모두 피해를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총련으로부터 그에 대한 사과나 피해 건물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태때의 유일한 사과는 김의경의 사망소식후 이에대한 한총련의 애도의 뜻이 전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학교도 학생도 모두 그때의 사건을 복구하고, 자신의 생활에 정착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총련이 또다시 연대에 불법으로 난입하여 그때와 같은 일을 또다시 벌이려고 합니다. 그럼 이것을 비난해야 될까요, 말아야 될까요.

    학생이 등록금을 지불하여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누릴수 있는 권리를 학교측으로부터 양도를 받은 상태에서, 그러한 권리를 양도받지 못한 불법적인 일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에 대한 정당한 표출입니다.

    또한 그렇기에 그들을 폭도라고 감히 말할수 있는 것이고요.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과는 별도로, 그들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권리가 부당하게 훼손되고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면 그것은 엄연한 폭력이며, 그 당사자는 폭도입니다.

    시위대가 시위를 한다고 자신의 집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위대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해 집주인은 침묵해야 됩니까?

    한총련이 연대안에서 불법적인 점거를 멈추지 않는한, 정부-한총련과의 관계와는 별도로 연대-한총련의 관계는 폭도와 피해자, 이 둘의 관계로 밖에 이어질수가 없는 것같군요.

    그렇기때문에 저는 한총련을 비난합니다. 그들이 저의 정당한 권리를 아무런 동의없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제한하였기 때문입니다.

  • BlogIcon 티에프 2006.08.19 14:12

    아... 일단 연대 건은 논란의 여지도 많고, 고작 10년전인데. 삼풍백화점 이야기보다 더 알수없는 상황으로 되어버린 현실이니. 참 조심해야 할 부분이긴 합니다.

    뭐랄까. 제가 예전에 의경 대원관리 행정업무를 보면서 알게 된건데 96년 당시 진압에 투입되었다가 다치고, 그게 쉬 낫지 않아서 국가유공자로 오를 정도로 심하게 다친 의경들이 제법 되신다고 합니다.

    요즘 한총련의 시위는 아무튼 싫어요...

  • 연세졸 2008.07.12 04:03

    후배님이신것 같으니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원하지 않던 연세인이 있었지만, 직접 전선에 참여한 연세인도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자식놈중에 한놈이 (못된?)친구들과 집에 들어온겁니다.

    제 사촌동생은 전경복무중이었고 그날 투입되어 들어 왔습니다.
    사망전경도 벽돌에 맞은 것...사실 그들내부에서도 말들이 있었다고 동생에게 직접들었습니다.
    어쨋든 학생들로 인해서 사망한것은 맞습니다만, 벽돌이아닌 약간은 사고적인.

    또한 답글중 언급된 정보수집경로에 동아일보를 말씀하시는데, 신뢰성에 문제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발표, 신문발표, 간접적 들은 이야기......가 다는 아닙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행간을 좀더 보셨으면 합니다.

    좀 급하게 쓰다보니깐....좀 오래전에 작성된 글이군요... 굳이 지우진 않겠습니다만, 지금도 생각이 여전하신지 궁금하네요..?

    • 소금이 2008.07.12 12:10

      예,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96년 연세대 사태에 대해 연세대 투쟁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투쟁이 아닌 사태에 불과합니다.

      연세대 사태당시 한총련 집행부는 경찰 봉쇄를 뚫고 각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연세대에 남아 투쟁 함으로서 전국민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연대 사태이후 한총련의 규모가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판단착오를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경찰들의 폭력진압, 분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진압외에 한총련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범밀련 주도의 통일운동은 이미 내부에서도 이의가 제기된 부분이고, 정치적 구호외에 학생들의 생활에 무관심한 점은 학총련이 더이상 학생들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제가 동아리연합회에서 활동하면서 한총련에 대한 행사를 모두 불참한 까닭도 이와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조금 지난 자료이지만 지난 2006년 연세춘추 기사를 링크해 드립니다. 2년전 자료이긴 하지만, 글을 읽으시면 학생들이 왜 한총련에게 등을 돌렸는지 조금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329

  • 연대항쟁 참가자 2008.09.02 03:38

    우연히 여기저기 다니다 들어왔는데 제목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요
    님 그때 그자리에 있었습니까? 학생과 전경이 싸우는 모습만을 보고 모든것을 판단하지 마세요
    제발 여기저기서 줏어들은거 가지고 판단하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 소금이 2008.09.02 10:29

      그 때 그자리에 없으면 말하지 말라는 사고가 한총련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자기들만이 특별하고 자기들만이 통일을 이룰수 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일반학생들이 왜 당신들을 무시하는지 먼저 생각하시죠.

  • 97학번 2009.08.06 22:59

    저도 검색하다가 들어왔어요 이미지 파일 좀 구해보려구요. 자료를 하나 만들려구요.. 2006년에 올린 글인데 2009년에 이렇게 ㅋ 저도 저 자리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96년 초에 노수석이라는 연세대 학생이 시위를 하다 토끼몰이식 진압에 목숨을 잃죠. 정부는 전혀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학생들의 정권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김영삼 정권의 부정부패비리에 대한 컴플렉스가 학생들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생각해요. 최근 책에서 본건데 저 당시, 일반 참가자들이 다 빠져나간 뒤부터 물리적 탄압이 시작됐다고 하더군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과 전의경의 폭력. 그 원인이 무엇이었나 말이죠. 모두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득을 본건 학생들을 폭력세력으로 몰아 정권의 지지기반을 다시 확보했던 김영삼 정부였죠.

  • 96학번 2010.06.06 04:13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왔는데 참 안타깝네요. 지금의 관점으로 그때를 재단하는 건가요.. 그 당시 학생운동이라는게 경찰하고 무작정 대립만 한게 아니에요. 이렇게 큰 행사는 서로 대충 봐주면서 큰 충돌없이 치르도록 하고 있었으니까요. 앞에서는 싸우고 뒤로는 경찰과 협의하면서 수위를 조절해오던게 90년대 후반의 학생시위였습니다. 당시 한총련은 통상적으로 해오던 데로 행사를 진행했는데, 김영삼 정부가 정국 돌파를 위해 한총련을 택한거죠. 학생들이 퇴각하거나 물러설 여지를 전혀 주지 않고 토끼몰이식으로 일망타진한 겁니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은 큰 행사에서 당시 늘 준비하던것에 불과해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면서 몇명에게 들은것 만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 소금이 2010.06.06 19:45

      과거의 사람만이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좀 에러이고요, 이 글을 썼을때는 당시 제가 연세대에 다니던 시점이니, 한총련사태에 대해 말할 권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 시기에는 어떠하였을지 모르지만, 제가 다니던 시기의 한총련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만을 강조하던 시기였고, 특히 10주년 행사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한총련측에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전형적인 예입니다. 학교의 주체인 학생으로서 이를 지적하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군요.

  • 지나가던고대생 2011.10.22 02:40

    20대 초반의 학생입니다.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들리게 되었는데요

    물론 95년 지방 선거 참패 등 민심의 이반을 겪은 김영삼 정권이 보수 세력의 결집과 난국 타개를 위해 이전보다 한총련에 강경 대응한 것, 단전, 단수, 최루액 살포, 체포된 피의자에 대한 분풀이식 구타, 성폭력 등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가 있었던 것 모두 사실이지만

    한총련이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던 것, 반독재를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조직을 매우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반성의 기색이 없었던 것이 참 안타깝네요.

  • BlogIcon ajsjahs 2015.10.11 23:49

    연대생은 아니었지만 인근주민이었습니다

  • BlogIcon ajsjahs 2015.10.12 00:16

    연대생은 아니었지만 인근주민이었고 그 시대를 아주 가까이서 살았고 이래저래 공부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친척 중에도 연대생이 있었죠 뭐 어쨌든 어쩌다 우연히 들어오게 됐는데 당시 그때 동네 사람들 중 한총련 지지하는 사람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인근 초중고교가 많죠 학생들도 맨날 최루가스 냄새 맡으면서 학교 다니고 체격이 있는 아이들은 대학생으로 오해받아 검문당하고 거의 대부분이 반대하고 싫어했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안 말립니다 단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 이겁니다 일단 지역주민들이 그렇게 욕하고 싫어했고학우들도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다던데 자신의 주장이 존중받으려면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을 해야죠 처음 시작은 뭐 그렇다쳐도 일단 행사 자체가 통일축전?? 행사 이름은 통일.. 근데 행사 성격은.. 당시 시위 참가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 딱 한마디만 더 적을게요 자랑스러운 과거 아닙니다

  • BlogIcon ajsjahs 2015.10.12 00:23

    내용 좀 고치려고 댓글 삭제하려니까 오히려 똑같은 글이 계속 게시가 되고 삭제가 안되네요 죄송해요 어쨌든 글쓰신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