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1950년 6월의 일이다. 북한은 25일 새벽부터 기갑부대를 포함한 전면적인 공세를 진행하였다. 6.25 전쟁의 발발이었다. 새벽 4시, 육본 정보국 연락장교였던 김종필 중위는 전면전 소식을 전방부대로부터 연락받고 당직사령에게 전군 비상을 걸 것을 건의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자신에게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권한을 가진, 당시 육해공 전군을 지휘하는 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은 클럽에서 새벽 2시까지 놀다 집에 들어와 급보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다시 잠을 잤으며, 국방부 장관 신성모도 "신사는 주말에 근무하지 않습니다."라며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전군 비상이 걸린 시간은 새벽 4시를 훌쩍 넘긴 오전 7시 였다.

한국군의 무능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강방어선을 시찰하던 맥아더 장군은 채병덕에게 "이제부터 방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참모총장의 계획은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채병덕은 '200만 남한 청년들을 모조리 징집해서 훈련시키면 침략을 알아서 격퇴해준다'는 발언을 하여 맥아더 장군의 비웃음을 샀다. 이 발언 이후 채병덕은 보직해임되었다. 국방부 장관이었던 신성모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초기에 북진을 주장하던 그는 27일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면서 한강교 폭파를 지시하였고, 이로인해 서부전선 한국사단들이 대부분 와해되고 말았다.

결국 미군은 한국군이 자체적인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승만의 요청하에 전작권을 위임받았다. 대한민국이 마땅히 국가로서 누려야 할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한다. 이에 대해 수구단체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아래는 당시 연설 장면 중 한 장면이다. 이 연설 이후, 대한민국은 전작권 환수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았다. 만약 이번에 박근혜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60년 전 치욕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라. 이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자기나라, 자기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남의 나라 사람에게 대신 피를 흘려달라고 말한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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