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그 타협할 수 없는 추악함

2006. 8. 14. 12:39하루 일기/2006 Diary

8월 15일을 맞아 한총련이 또다시 그 추악한 광기를 내보이고 있다. 연대항쟁 10주년이라는 이름아래 연세대에서 또다시 통일축전 대회를 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광기는 아직도 여전한 것같다.

10년전 이맘때의 일이다. 8월 13일 한총련은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을 강행한다. 이들은 치밀한 계획아래 건국대와 고려대등 서울시내 6개 대학에 모여 있다가 오후 7시쯤 한자리에 모여 연세대 진입을 시도하였다.


당시 시위는 화염병과 투석전이 밤늦게까지 지속되는 유래없이 격렬한 시위였다. 이후 경찰들의 저지속에 학교 건물을 점거한 이들은 근8일간에 걸쳐 폭력시위를 계속한다. 이 과정에서 단과 건물 한채가 전소되고 진압을 위해 진입하던 의경 한분이 학총련 소속 시위대의 벽돌에 맞아 사망하였다.


5천여명이 넘게 연행되어 460여명이 구속된 이 시위는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대학가에 한총련 탈퇴붐을 일으킨 그 해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한총련이 연대사태 10주년을 맞이하여 또다시 연세대에서 행사를 치룬단다. 희생자는 아랑곳하지않고 살인자가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어 희생자의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그야말로 추악함만이 남은 미치광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96년 한총련사태 당시 동영상 - 영상출처 : 다음 전의경 부모의 삶 카페]

그들은 그 시위를 통해 단지 하나의 기념사진을 남겼을 뿐이다. 10년후에도 써 먹을수 있는..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학교는 수천여명의 의경과 시위대에 둘러쌓여 신음하다가 폐해뿐인 건물밖에 안남았다. 건물을 신축해야 되었기때문에, 다음학기 수업에 차질이 많았다고 한다. 또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함이 가중되었다. 내가 입학하던 99년에도 주변지역에서의 불시검문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학생회와 동연은 모든 한총련 관련 행사에 보이콧을 했으며, 학생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총련은 일종의 금기단어였고, 그 누구도 그들을 존중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한총련과 연세대의 전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채, 이번에도 불법점거로 시위의 포문을 연 한총련은 그들만의 아집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닭아야 된다. 그들이 '전국대학생총연합회'라는 타이틀을 건 이상, 가장 중시해야 될 것은 학생들의 의사이고, 학생들의 거부의사가 명확한 명분없은 행사에 더이상 집착하는 것은 무리라고.

제발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