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구 위의 사람, 상식 아니면 무상식?

2014. 10. 18. 15:22하루 일기/2014 Diary

언제부터인가, 판교 사고에 '상식'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배기구 위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상식, 그리고 그걸 어긴 안전불감증 시민들의 사고,' 대체로 이런 구도가 완성되는 듯하다.

상식이란 사회구성원 모두가 알고있는 보편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지식이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간에 교육과 합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불은 뜨겁다'와 같은 자연적 법칙들은 교육을 통해 전수할 수 있으나,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 요컨데 '친한 사람이 아니면 카톡대신 문자를 보내야 한다'거나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많이 내야한다' 등의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지식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합의인 상식을 깨트린 사람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윗집에서 너무 쿵쾅거리네요'라는 글이 올라왔을 때, '윗집 사람들이 참 상식이 없네요'라는 댓글이 달리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도덕적 제재에 참여하는 한 예라 볼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배기구 위에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라는 이 말이 과연 적절한 말인가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해, 혹은 좋은 학교나 부모님에 의해, 그래서는 안된다라고 알고있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구성원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오늘 정대리를 보았는데, 인도 옆에 있는 배기구로 걷더라. 정말 무개념 아니니?' 혹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배기구에 올라가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시민운동이나 자원봉사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사고 이전에 인터넷 기록을 찾아보아도, 배기구에 대한 그 어떠한 사회적 공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말해 보편성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의 지식은 될 수 있어도 상식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에게 배기구는 '길을 가다 사람들이 많으면 올라가서 걷는, 좀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길' 정도가 아닐까. 배기구 밑에 구조가 어떠한지, 지하철용 배기구와 일반 배기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건축법상 배기구는 하중설계가 어떠한지... 이 모든 것들은 전혀 관심없을 것이다. 그저 조금 불편한 길이기에, 그동안  합의도 교육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이 중요한 지식이 보편적 상식으로 바뀌고, 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법률이 개정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상식이라고 피해자를 비난하지는 말자. 모두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