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검문에 반대표를 보낸다.

2012. 9. 2. 13:59Issue/Society

오래 전, 대학교에 처음 입학하였을 때, 불심검문을 받은 적이 있다.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표를 끊고 차를 기다리던 차에, 한 경찰관이 와서 모자를 벗어보라고 요구하고,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건네는 말조차 반말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 때에는 아무런 말없이 따르긴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당시의 불쾌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에는 불심검문을 자제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와 안심하고 있는데, 경찰이 불심검문을 다시금 하겠다고 한다. 정말 불쾌한 일이다.



1. 불심검문이 강력범죄에 효과적일까?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는 이유는 최근에 발생한 칼부림 사건이나 아동 성폭행 등의 강력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타당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효과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언급한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직장해고에 불만을 가진 범인이 전 직장동료를 살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벌인 범행이었고,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경우, 마찬가지로 계획범죄에 범인은 옆집 아저씨였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를 수행하는 범인을 거동수상자로 판단하여 불심검문을 수행하고, 이를 차단한다는 논리인데, 아무런 제보도 없이 불심검문을 통해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를 사전에 차단한 예는 전무하다. 불심검문으로 악명 높았던 일제강점기나 독재시절에서도 말이다.



2. 불심검문의 당사자는 당신이다.

서울경찰청 공개 자료에 따르면 2008-2009년도 불심검문 횟수는 1억 건이 넘으며, 수치상 서울시민은 해마다 10명 중 6명이 불심검문을 당했다고 한다. 또 사례를 보면, 이동 중인 버스를 세우고 불심검문을 진행하거나, 불심검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한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경찰이 지목한 거동 수상자로 2,30대에 직장을 해고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옆집에 아이가 살고 있는 남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불심검문 장면 / 출처 : 연합뉴스]



3. 불심검문이 더욱더 우려되는 이유.

이번 불심검문의 부활을 두고, "이참에 통금도 부활하고 유신헌법도 부활하지 그러냐",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와 박정희의 긴급조치가 다시 부활할 수도…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그냥 잡혀갈 수도 있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너무 앞서간 말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2년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추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에 시행된다면 이 말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 법안은 일부 내용이 변경되어, 지난달 다시 추진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불심검문을 할 때, 경찰관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신분증이 없는 경우에는 지문채취나 연고자 연락 등의 방법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신원확인이 교통에 방해가 된다든가 현장에서 신원확인이 어려운 경우에는 동행요구도 가능하다. 차량검색, 가택수사가 임의로 가능함은 물론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 아닌가? ‘모래시계’같은 7,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자주 나오던 바로 그 장면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새로 바뀐 내용들]



4. 불심검문 이전에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최근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불안정과 같은 사회적 갈등양상이 악화된 영향이 크지, 선량한 시민들이 어느 순간 악인이 되어서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울러 강력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불심검문 강화가 아니라, 신고 및 수사 시스템을 개선하고, 허위보고 및 언론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먼저 자제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고, 이 글을 보는 당신 또한 범죄자가 아니다. 왜 우리가 밖에 나가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