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죽인 대통령, 이명박 정부도 따라할까?

2008. 9. 29. 23:41Issue/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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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대통령을 죽였다? 종부세 논란으로 민감한 요즘, 이같은 발언은 다소 위험한 발언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해 드릴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과연 30여년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76년 제정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법률'(VAT)'을 전격적으로 시행합니다. 정부 수입이 증대하고 재정이 풍부해 진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해 종전의 영업세법, 물품세법, 통행세법, 입장세법등에 부과하던 세목(稅目)을 폐지하고 새로 시행된 부가가치세법은 물품 가치의 약 10%을 세금으로 내도록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속에서 간접세를 신설하는 방안은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는데,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만섭씨의 회고록에 의하면 부산 및 마산 지역을 필두로 '부가가치세 철폐' 구호가 점차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부가가치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은 과세특례자를 제외한 법인 사업자 2만명과 중소상공업자 약 14만명으로, 이들은 후에 부마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정권 저항운동 또한 자연스럽게 학생 중심의 운동에서 시민 중심의 저항운동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중소상공업자들이 저항하게 된 계기를 두고,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직을 맡기도 한 김정렴씨는 '기존에 해 오던  탈세의 길이 막히게 되었기 때문에' 저항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기고하였으나, 당시 물가상승률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체감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진 점, 그리고 중소상공업자들이 체계적인 세무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마다 세무서에 부가가치세 계산서를 제출하고 세금을 제출하도록 강요한 점이 오늘날 이들이 정권저항 운동에 참여한 주요 계기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시점에서 수탈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간접세는 대규모 정권 저항 운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횃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79년 10월, 부산에서 학생들과 시민에 의한 대규모 저항 운동이 일어났고, 이어 KCIA소속의 그의 부하가 박정희를 암살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간접서에 대한 정권 저항운동은 옆나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하는 법안을 시행시켰다가 그로부터 1년뒤인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여 총리직을 사직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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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가치세는 세율을 간략화시키고,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소득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조세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점에서 함부로 손대어서는 안되는 법안중 하나입니다.

예를들어, 만원짜리 제품을 사고 천원을 세금으로 낸다고 했을 때, 수억을 가진 부자가 내는 천원과, 하루 2,3만원의 일당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의 천원은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간접세는 이들의 돈을 모두 동일한 천원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정부 소득의 극대화와 정권 저항이라는 양면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은 종부세를 비롯한 직접세를 내리고, 간접세를 대폭 향상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부가가치세는 9.5% 증가할 예정이며, 법인세가 실질적으로 감소한 것과는 달리 종합소득세와 근로소득세는 각각 13.7%, 7.5%로 오를 전망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증가한 간접세는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과 같아 또다시 대국민 저항운동이 시작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이명박 대통령은 진정 자기 스스로의 과오를 모르는 것일까요. 역사가 또다시 재현될 것인지 기대를 가져 봅니다.

참고 : 시게무라 도시미츠(마이니치 신문 논설의원)의 "한국만큼 중요한 나라는 없다"(1999)에서 일부 인용